우화집

펜보이 2007. 8. 4. 00:08
 


  회오리바람 旋風

 

  수 백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내온 어느 평화로운 농촌마을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한 무리의 요괴들이 마을로 들이닥친 것이었다. 요괴들이 마을에 들어온 이후 마을사람들은 마음 편히 지내는 날이 없었다.

  요괴들은 마을사람들 일이라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들어 골탕을 먹이기 일쑤였다. 특히 병약한 노인들이나 어린아이들을 희롱하거나 놀라게 만드는 일이 많아 밖으로 나다니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그런데도 요괴들의 행패를 어쩔 도리가 없다. 요괴들은 대체로 어둡고 습하거나 땅이 움푹 팬 곳, 그런가 하면 동굴이나 무성한 나무숲 또는 가시덤불 및 돌무더기 등에 숨어 지내다가 밤이면 나타나 행패를 부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을을 지나던 나그네가 무심코 피우던 담배를 길가에 버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그네의 담뱃불이 그만 요괴들이 숨어사는 길가 가시덤불은 물론이려니와 근처 숲마저 몽땅 태우고 말았다. 곤히 낮잠을 즐기던 요괴들은 난데없이 벼락을 맞은 꼴이었다. 아기 요괴는 손을 데이고 또 대장 요괴는 머리를 깡그리 태우고 말았다. 머리카락이 없어진 대장요괴의 모습은 그야말로 꼴불견이었다. 요괴 아이들조차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나그네는 마을을 빠져나가고 말았다. 요괴들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홀딱 태워 대머리가 된 대장 요괴는 화가 치밀어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요괴 대장은 ‘어느 놈이 불을 냈느냐’며 부하요괴들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댔다. 곤히 낮잠 자다가 잠결에 그만 머리를 태우고 몸을 데어 화가 나는 판에 대장 요괴에게 두들겨 맞던 부하요괴들도 분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다가 화풀이할 데 없는 요괴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서로 ‘네 놈이 불낸 것 아니냐’며 주먹으로 치고받는 것이었다.

  싸움은 점점 커졌다. 대장요괴고 부하요괴고 따로 없었다. 얼마나 싸움이 치열했던지 큰바람이 일어나 무르익어 가는 마을의 벼를 쓰러뜨리는가 하면 온갖 과일을 떨어뜨리고 나뭇가지를 통째로 뽑아버렸다. 마을사람들은 겁에 질려 집안에 틀어박힌 채 난리를 치는 바람의 행패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요괴들의 싸움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면서 마침내 하나로 엉켜 돌아가는 것이었다.

  요괴들이 엉켜 돌아가는 힘이 어찌나 세던지 땅에 떨어진 과일이며 나뭇가지 그리고 온갖 풀잎과 나뭇잎을 한꺼번에 하늘로 말아 올리고 있었다. 요괴들이 한꺼번에 뒤엉켜 만들어낸 거센 바람줄기는 기둥을 이루며 마을을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폐허가 되다시피 한 마을에는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요괴들이 마을을 떠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