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펜보이 2007. 8. 20. 08:39
 

  비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다. 열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소년 거지 혼자서 숲길을 가고 있었다. 손에는 방금 전에 길옆에서 꺾은 빨간색의 이름 모를 들꽃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소년 거지에게는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소년 거지는 들꽃을 가슴에 안은 채 아주 빠른 걸음으로 숲길을 가고 있었다.

  소년 거지는 약간 긴장한 듯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긴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인지 소년 거지는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랫소리는 너무 작아 들릴 듯 말 듯했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걸음을 재촉하는 소년 거지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땀방울은 이마에서 눈썹을 타고 내리다가 그만 아래로 떨어졌다. 땀방울 하나가 빨간색 들꽃 꽃잎을 적셨다. 소년 거지는 손등으로 꽃잎에 떨어진 땀방울을 훔쳐내었다. 그러자 빨간색 들꽃은 땟물로 얼룩졌다.

  그 같은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 거지의 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고 얼굴은 조금 전보다 한층 더 붉어지는 것이었다. 소년 거지는 마침내 숲을 벗어나 눈앞에 보이는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잠시 뒤 소년 거지는 마을 초입에 있는 작은 초가집 앞에 발길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길 쪽으로 난 조그만 들창 밑에 서서 잠시 방안의 기척을 엿듣는 것이었다. 잠시 후 소년 거지는 들창 밑에 빨간색 들꽃을 살며시 놓고는 누구에게라도 들킬까 싶었던지 냅다 달려 숲길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초가집 방안에서는 마음씨 고와 보이는 소녀가 구름모양의 수를 놓고 있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며 수를 놓던 소녀는 갑자기 재채기를 해댔다. 그 때 별안간 바람이 일더니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초가집 지붕을 적신 뒤 추녀를 타고 흘러내렸다. 추녀 밑에 놓여 있던 빨간색 들꽃은 그만 빗물에 흠뻑 젖고 말았다.

  하지만 빗물은 빨간색 들꽃에 남겨진 소년 거지의 땟물자국을 말끔히 씻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