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길

펜보이 2008. 11. 26. 07:31

 

엄윤숙의 작품세계

 

독특한 색채배열 및 변형 왜곡의 미

 

신항섭(미술평론가)

 

그림을 그리는 일은 여러 가지 조형적인 요소가 어떻게 조합 배열 구성되는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색채의 경우 다양한 색채를 어떻게 조합 배열하여 조화시키는가 하는 선택은 순전히 화가의 미적 감각의 영역이다. 독특한 색채배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 있을 뿐더러 남과 다른 개별적인 조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독특한 색채배열의 묘수를 찾아내는 일은 일종의 연금술과 같은 것이어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아름답고 조화로운 색채배열에 대한 묘리를 깨우치기만 하면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영위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다.

엄윤숙의 그림에 대한 첫 인상은 강렬한 색채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형태미보다는 색채이미지에 대한 반응이 빠르다. 그도 그럴 것이 시선을 유혹하는 강렬한 원색적인 성향의 색채배열 방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면 분할에 가까운 대범한 평면적인 구성의 색채이미지는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어느 경우에나 마찬가지지만 원색은 감정의 동요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그의 그림에서 원색적인 색채이미지는 전체적인 인상을 좌우할 만큼 존재감이 뚜렷하다.

 

 

시각적인 자극 및 유혹을 지닌 원색적인 색채이미지는 감정을 고조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생체에너지의 활성화에 기여한다. 색채 속에 내포된 에너지는 일종의 생체리듬을 자극하고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감정의 동요를 유도하여 심신을 긴장시키고, 그로 인해 생체리듬이 활성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의 그림과 마주하는 순간, 빠른 감정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원색적인 성향의 그림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써, 색채배열이 독특한 그의 그림은 더욱 빠른 감정의 고조를 유도한다.

그가 구사하는 색채배열 방식은 확실히 일반성에서 벗어나 있다. 어쩌면 그 자신만의 색채감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기존의 색채이론에 부합하는 조합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이전의 화가들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생경한 색채배열을 경험하게 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동일색상 계열만의 조합을 볼 수 있는가 하면, 보색배열도 흔치 않게 마주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유채색과 무채색의 대비도 볼 수 있다. 자칫 불협화음을 일으킬 수 있기 십상이어서 시도하기 쉽지 않은 색채배열 방식인 것이다.

 

 

이렇듯이 그는 기존의 색채이론에 근거하는 조합 및 배열과는 다른 시각에서 출발한다. 그러기에 생경하고 낯선 색채이미지로 인해 때로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색채배열에 대해 ‘파격’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파격이 아니라, 실험이자 모험이라고 해야 적합할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마다 다른 색채배열을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 만큼 자기복제조차 허용할 수 없다는 치열한 작가정신에 투철하다는 얘기다. 물론 동일 색상 계열로 압축되는 색채이미지는 그가 즐기는 색채배열 방식의 하나이다. 도무지 그림이 될 성싶지 않은 데도 거뜬히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색채감각은 확실히 예외적이다. 그의 작품이 뚜렷이 구별되는 것도 이렇듯이 남다른 색채감각에 기인한다.

그는 인물과 풍경 정물에 두루 능하다. 소재 및 대상이 무엇이든지 독자적인 형식미 속에 용해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정물화에 집중한다. 정물화를 통해 한 작가로서의 기반을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형식미를 구현할 수 있었다. 정물화를 집중적으로 탐구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이미지의 색채 포름은 물론 형태의 왜곡 및 변형에 가장 적합하다는 데 있었는지 모른다. 실제로 그의 정물화는 다채로운 색채이미지를 포함하여 소재의 배치와 관련한 구성 및 구도에서도 늘 새로운 조합을 꿈꾼다. 어쩌면 정물화는 그의 예술세계를 부단히 확장시키고 심화시키는데 그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실험적인 공간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정물화는 그의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독특한 색채이미지를 구현하는데 그 중심적인 위치에 놓인다. 정물화는 지적인 조작이 용이한 장르이기에 그렇다. 다시 말해 소재 선택에서부터 구성 및 구도 그리고 색채조합은 물론이려니와 형태묘사에 이르기까지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그의 작품세계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색채이미지만 하더라도 정물화이기에 자의적인 해석의 범위가 넓고 자유롭다. 정물화를 통해 조형의 마술, 즉 무한히 열려 있는 창작의 바다에서 꿈의 유영을 즐기는 것이다.

그의 작품세계 전체를 조망할 경우에도 정물화는 백모란과 같은 존재로 그의 작품세계가 개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물화의 경우 소재에 따라 색채배열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그의 색채감각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꽃을 소재로 한 작품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강렬한 색채이미지를 지향하는 그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꽃은 저마다 고유의 색채, 즉 화려한 색깔을 가지고 있어 그 색깔을 중심으로 하여 배색이 결정될 수 있다. 전체면적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적을지라도 꽃의 존재감은 그 중심에 있기 마련이다. 향기처럼 발산하는 강렬한 존재성으로 인해 꽃이 중심적인 이미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소재를 보조하는 배경에 대한 해석은 그의 색채감각 및 구성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색채포름과 연관성을 지닌 배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소재를 보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소재를 위협할 정도로 그 존재감이 선명하다. 넓은 면적에다 단색조의 명확한 색채포름은 화면구성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기현시욕이 강한 존재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존재감이 뚜렷한 배경은 대체로 테이블과 같은 단색조의 이미지와 결탁하여 화면을 장악한다. 이로 인해 소재의 이미지가 약화될 지경에 처하기도 한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그의 정물화에서 소재를 에워싸는 배경 및 테이블에 주어지는 색면 구성은 새로운 시각적인 체험을 제공한다. 테이블의 형태는 대체로 부분적인 이미지로 자리한다. 다시 말해 테이블이 화면 밖으로 나감으로써 부분만이 나타나는 형국이다. 그러나 화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주 적은 부분에 간신히 걸쳐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 보면 테이블의 이미지는 테이블로서의 존재성보다는 색채 포름에 우선한다고 할 수 있다. 면 구성의 역할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의 조형세계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형태해석이다. 실재하는 물상의 형태를 교묘히 변형 왜곡함으로써 세련된 감각에 의한 조형의 묘미를 일깨워준다. 꽃병이라든가, 찻잔, 컵, 찻주전자, 차호, 유리컵, 과일 따위의 소재를 재해석하여 실제의 모양에서 살짝 비켜 변형하거나 왜곡시키는 것이다. 가령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우에도 둥근 꽃병의 바닥을 원형이 아닌 직선으로 처리한다. 이는 비현실적인 형태설정이다. 어딘가 한두 군데 정도 형태를 왜곡시켜 인위적인 조작에 의한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이러한 변형 왜곡은 독자적인 비례감각을 반영하고 있다. 자기만의 비례를 찾아내 개별적인 형식미를 산출해내려는 것이다. 지적조작의 냄새가 현저한 이와 같은 형태의 변형 및 왜곡은 순전히 타고난 미적 감각의 소산이다. 자연물이든 인조물이든 주어진 형태를 변형하거나 왜곡했을 때 비례가 맞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다. 따라서 정형에서 벗어나는 비정형의 미를 찾아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세련된 미적 감각이 수반하지 않고는 아름다운 왜곡의 미를 요약해낼 수 없는 것이다.

 

 

변형 왜곡의 미를 탐색하는 그의 미적 감각은 실제를 살짝 벗어난 지점을 상정하고 있다. 구체적인 형태를 유지하는 가운데 부분적인 왜곡을 통해 정형과 비정형의 경계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모색된 기존의 형식미에 저촉되지 않는 묘수를 찾아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럼에도 그는 그러한 위험스러운 조형의 유희를 즐긴다.

그의 조형세계에서 또 하나의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구성이다. 한마디로 그의 정물화는 일반적인 구성의 법칙에서 벗어나 자유롭다. 일반적으로 소재를 화면 중심에 배치한다든가, 화면 하단에 배치하여 전체적인 안정감을 모색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러한 법칙에 순응하기는커녕 불균형의 배치도 마다하지 않는다. 화면의 상단이나 하단으로 소재를 집중시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소재를 화면 밖으로 밀어내 잘리는 현상도 흔히 목격한다. 화면 중심에 소재를 배치하는 경우가 예외적일 정도이다.

 

 

한마디로 그의 조형언어 및 어법은 일반적인 정물화의 상식에도 맞지 않는 파격의 연속이다. 그런데도 크게 탓할 데 없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그렇다. 그는 정물화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몇 가지 그 자신만의 조형적인 특징은 전통적인 개념의 정물화와는 다른 조형개념에서 발단한다. 일단 정물화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함으로써 형태 변형 및 왜곡이라는 어법을 통해 다양한 조형의 변주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조형언어 및 조형어법을 강구해낸 그의 작품세계는 흔치 않은 예에 속한다. 그러기에 화단에서 그를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만큼 그의 작품은 참신한 요소가 적지 않다. 구상회화의 한 영역에서 정물화를 새로운 관심의 대상으로 끌어낸 그의 미적 감각은 항상 새로운 여행을 꿈꾸고 있다. 진화하지 않는 미적 감각은 결과적으로 정체를 가져올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일까.

 

<엄윤숙초대전은 2008년12월6일부터 31일까지 거제도 '갤러리섬달'(011-889-8684)에서 열립니다>

와...선생님. 그림이 참 정겁고 좋습니다. 거제도....가까이 있다면 가보고 싶은데....
가까운 날 지두갤러리에 한 번 가보려고 해요. 제법 오래 전부터 좋아하는 그림이라 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