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이야기

펜보이 2009. 2. 4. 06:05

꼬마 하이엔드 “줌”

 

신항섭(미술평론가)

 

‘가격과 소리는 비례한다.’는 얘기는 오디오계에서 통하는 일반적인 인식이다. 이는 오디오 가격이 곧 소리의 질을 의미한다는 말일 수 있다. 달리 말해 가격이 높은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아무리 가격 대비 소리가 뛰어나다는 평이 자자한 오디오일지라도 그보다 높은 가격의 오디오와 비교하면 어딘가 미치지 못하는 구석이 있다. 물론 가격에 거품이 있는 메이커의 오디오는 그보다 낮은 가격의 오디오보다 더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수준에 오른 하이엔드의 경우에는 가격 차이가 곧 소리의 질적인 차이를 의미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이엔드 메이커가 가격을 책정할 때는 누가 들어도 납득할 수 있는 어떤 소리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소리의 질은 떨어지는데 터무니없는 가격표를 붙였다고 해서 속아 넘어 갈 마니아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가격에 따른 선택에는 큰 고민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수 천 만원이 드는 하이엔드를 운용하면서도 그만한 값어치의 소리를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마니아의 경험 부족이거나, 또는 하이엔드 소리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경우일 것이다. 실제로 놀랄만한 가격의 하이엔드 시스템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그보다 한참 아래의 가격 차이를 보이는 미드파이 소리만도 못한 경우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하이엔드 시스템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하이엔드 소리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서야 한다는 전제가 요구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고가의 하이엔드일지라도 바꿈질이라는 고난의 행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기에 하이엔드 시스템에 대한 꿈을 갖기 전에 하이엔드의 소리 성향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또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자신이 직접 하이엔드 시스템을 운용하지 않은 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귀동냥해봤자 하이엔드 음질에 대한 이해 및 개념정립은 쉽지 않은 까닭이다.

하이엔드 기기의 가격이 경쟁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서는 하이엔드 소유의 꿈은 더욱 멀어지고 있다. 돈에 구애받지 않는 극소수의 재력가들만이 하이엔드를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하이엔드는 이제 특권층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오디오마니아들은 비애를 느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래의 꿈을 적는 치부장에 또박또박 써넣은 하이엔드 메이커의 이름도 한낱 뜬 구름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러다보니 하이엔드 소리를 귀에 익히기도 힘들어지게 됐다. 하이엔드 수입상의 시청회나 오디오 숍, 그리고 오디오 쇼에서나 들을 수 있을 뿐이지만, 그마저도 시간 및 여러 가지 여건상의 제약이 따르니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동회인의 음악실을 방문할 수도 있으나, 정작 전체적인 대역 밸런스조차 장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자칫 하이엔드 음질에 대한 이해가 왜곡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을까. 사운드포럼은 이와 같은 마니아들의 고민에 대한 명료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하이엔드 음질이 무엇인지 그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이엔드 음질에 대한 개념 제시는 엉뚱하게도 자그마한 인티 앰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해 하반기에 출시를 시작한 50만 원 선의 조그만 인티 앰프 ‘줌’이 하이엔드의 음질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정식 상품으로 올려놓기도 전에 주문이 들어오더니 금년 1월말까지 이미 100대가 넘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사운드포럼 홈페이지에 올린 적지 않은 마니아들의 시청소감이 말해주고 있듯이 일단 가격을 뛰어넘는 완성도 높은 소리임에 틀림없는 모양이다. 소수의 마니아를 제외한 대다수의 호평이 궁금해 필자도 올해 초 사운드포럼을 방문해 잠깐 들어보았다. 길게 들을 필요도 없었다. 투 웨이 스피커 ‘비올라’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이건 하이엔드잖아!’ 라고 속으로 외쳤다. 50만원 정도의 미니 앰프가 만들어내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소스기기로는 330만원 짜리 사운드포럼의 시디플레이어 ‘CD-77’이 연결되었다고는 할지언정, 사전 크기 정도의 인티 앰프와 메주 크기의 북셀프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오랜 오디오생활에서 이런 놀라운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 동안 100만원 전후의 국내외 인티 앰프를 적지 않게 들어온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건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굳이 100만원대의 인티 앰프가 아니라 500만원 전후의 중간급 분리형 앰프에서도 이처럼 밸런스 좋은 명료한 하이엔드 성향의 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다. 그러고 보니 하이엔드를 추구해온 일부 메이커들조차 하이엔드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하이엔드가 요구하는 음질 성향을 충족시키지 못했지 않느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고가의 하이엔드 메이커들의 경우에는 하이엔드가 요구하는 ‘클린 앤 쿨’의 요건을 충족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메이커의 음향철학에 따른 개성을 드러낸다. 이는 생존전략의 차원에서 다른 메이커와는 다른 성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즉, 메이커에 따른 음질 성향은 결국 취향의 문제로 귀결하는 마니아들의 오디오생활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이다. 아무리 뛰어난 음질의 하이엔드 기기라고 할지라도 거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마니아가 있기 마련이라는 전제는 하이엔드도 개성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하이엔드 오디오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음질성향을 요약하여 ‘클린 앤 쿨’이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성이 있다. ‘극도로 깨끗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소리’가 곧 하이엔드 오디오의 공통성인 셈이다. 여기에서 부드럽다거나, 섬세하다거나, 따스하다는 따위의 표현은 하이엔드 기기 메이커에 따른 특이성향 또는 개성을 의미한다. 실제로 지명도 높은 고가의 하이엔드 메이커의 음질성향은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오디오 초심자들이 하이엔드 소리, 즉 음질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것도 이처럼 메이커마다 다른 음질성향 때문이다. 이미 하이엔드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마니아로서는 하이엔드 음질에 대한 이해가 선행하기에 메이커에 따른 성향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다. 반면에 아직 하이엔드 음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마니아는 이를 구분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오디오 초심자들이 하이엔드 음질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또 숙지할 수 있는 기기가 출현한 것이다. ‘줌’은 그 크기 및 가격과는 상관없이 전형적인 하이엔드 음질을 갖추고 있다. 특히 트랜지스터 앰프로서의 음질성향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도대체 조그만 앰프에서 어쩌면 그렇게 산뜻하고 명료한 음이 나오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필자의 집에 배달된 ‘줌’은 하얀색 천으로 만들어진 주머니에다 인쇄된 전용박스 그리고 완충재를 채운 박스로 포장하고 있다. 고가의 하이엔드 제품에서도 간과하고 있는 삼중 포장을 뜯으면서 비록 크기는 작고 가격은 저렴할지언정 하이엔드의 적자로서의 자존심 및 품위를 보여주려는 메이커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 기기의 포장상태에서 범상하지 않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줌’이 바로 하이엔드 기기임을 웅변한다. 메이커에서도 ‘줌’의 가치만큼 대접해주고 있는 것이다.

‘줌’을 ‘아큐페이즈 A50-V’ 파워앰프 위에 올려놓고 관음음향 파워케이블(극저온 및 이온주입)을 연결했다. 이어 ‘소니 SD-1’ 시디플레이어는 ‘LAT-300’으로, 탄호이저 스피커(아큐톤 다이아몬드 D-20 트위터)에는 ‘문도르프 실버골드’ 단심선으로 연결했다. 지난 해 ‘오디오 쇼’ 데모시디로 제공된 <수퍼 테스드 시디>를 차례로 듣는 동안 ‘깨끗함, 산뜻함, 맑음, 깔끔함, 차가움, 빠름, 청명함, 낭랑함’ 따위의 형용사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다. 이건 의심할 여지없이 하이엔드의 적자인 것이다.

더욱 놀랄 일은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만 같이 작은 인티 앰프가 11인치 우퍼의 ‘탄호이저’를 울리고 있었다. 대편성 관현악의 총주에서는 힘에 부치는 모습이 역력하지만, 그래도 크게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저역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마도 오디오에 경험이 많지 않은 마니아라면 ‘탄호이저’를 충분히 울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콘트라베이스의 저역도 충분한 양감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다섯 평이 채 안 되는 작은 방에서 ‘탄호이저’는 과도한 저역으로 인해 피로를 느낄 때가 있다. 저역이 과한 재즈 음반은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다. ‘줌’으로 재즈를 들으니 속이 울렁거릴 정도의 저역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환경에 따라 저출력 앰프가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렇듯이 ‘줌’은 어디까지나 자기만의 역할이 있다. 출력이 낮은 것은 기술상의 결함이 아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앰프의 힘, 즉 출력은 크기에 비례한다. 다시 말해 출력트랜스의 용량이 클수록 출력이 높아진다. 물론 아이스파워의 경우에는 스위칭파워 기술을 적용하기에 ‘출력은 트랜스 크기에 비례한다.’는 공식을 깨뜨린 경우에 속하지만 일반적인 출력트랜스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이 공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기에 ‘줌’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출력에 관한 한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줌’은 컴퓨터와 오디오를 결합한다는 목적으로 제작된 앰프이기에 작은 크기로 만들어졌고, 스피커도 북셀프 타입의 소형과의 매칭을 겨냥하고 있다. 한마디로 오디오시스템을 컴퓨터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사용한다는 전제하에서 크기 및 용량이 결정된 것이다. 이러한 애초의 목적에 한정하자면 ‘줌’은 오히려 과도한 출력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줌’은 사용자들의 시청소감에서 밝히고 있듯이 컴퓨터 음악용 앰프로서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컴퓨터를 생활화하는 마니아에게는 컴퓨터 음악을 하이엔드 음질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환상적인 일이다. 컴퓨터 음악을 하이엔드 음질로 듣고 싶다는 욕구는 있었으나, 정작 이를 충족시켜준 소형앰프는 찾아보기 힘들다.

'줌'의 음질성향은 한마디로 중립적이다. 다시 말해 특정대역을 강조하거나, 착색하는 식의 조작이 없다. 해상력은 하이엔드의 기본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임장감도 나무랄 데 없어 공간적인 깊이 즉, 무대를 선명히 그러낸다. 음악신호를 넣지 않은 묵음상태에서 볼륨을 한껏 올려도 노이즈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줌’의 이모저모를 알고 난 이후 50만원 정도의 가격은 터무니없다는 생각이었다. 음질을 떠나서라도 부품과 케이스, 그리고 조립 등 원가계산을 하면 빤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줌’은 사운드포럼으로서는 새로운 수요층을 개척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상품인 셈인데, 그래서 가격책정을 최저로 했다고 한다. 일단, ‘줌’은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이미 100조 이상이 팔렸고, 오디오에 입문하는 초심자들을 오디오 마니아의 길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줌’의 성능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새로운 인티 앰프 ‘렌쯔’의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고급 부품을 채용하고 전체적인 크기도 커졌으니, ‘줌’에서 느끼는 출력 부족의 문제는 ‘렌쯔’에서 충분히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가격이 그 만큼 상승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렌쯔’와 연관지을 필요도 없이 출력에 대한 불만만 없다면 ‘줌’에게 그 이상의 무엇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줌’은 이미 진정한 하이엔드의 음질을 지닌 소형 하이엔드로서의 음질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줌’은 가격에 맞는 그렇고 그런 음질이 아니다. 가격이 주는 선입견을 뛰어넘는 고성능으로 무장, 하이엔드 음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해시키고 인식시킬 수 있는 기념비적인 앰프일 뿐이다. (신항섭)

 

<'줌'은 2009년 3월11일부터 31일까지 3주간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02-734-7555)에서 열리는 "그림과 음악의 유쾌한 동거" -하이엔드 오디오에의 초대- 전시회에 출품, 소리를 들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