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현장

펜보이 2009. 4. 25. 10:00

 

 

장현재의 신산수화


점선으로 표현되는 사의의 현현


신항섭(미술평론가)


전통회화를 전공한 작가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심각하다. 대학에서 전통회화 학과가 폐지되거나 통합되는 사례쯤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현대미술전을 표방하는 대형 아트페어에서 수묵화 및 채색화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사실이야말로 위기의식의 진원이다. 전통회화가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미술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데 있다. 이러한 현실은 미술시장의 문제 이전에 시대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작가들 자신에게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변하는 시대감각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건만, 전통의 습속에만 갇혀 안주하고 있을 뿐이기에 그렇다.

장현재의 최근 작업을 마주하면서 전통회화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현대적인 조형성을 양립시키는 일이 어떤 고통을 수반하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전통미를 지키는 가운데 현대적인 미적 감각을 반영해야 한다는 시대적인 요구에 대한 고민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전통미는 어쩌면 시제로 보아서는 지나간 시간의 미적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통미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변환하거나 재해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경우처럼 때로는 기존의 조형개념을 타파하는 전혀 엉뚱한 발상이야말로 전통을 극복하고 현대적인 미적 감각에 부응하는 방법이다.

 

 

그의 최근 작업은 수묵산수화의 새로운 해석, 또는 현대미학을 적용한 새로운 개념의 산수화라고 할 수 있다. 전통미 자체를 부정하거나 버릴 수는 없는 일이라는 자각 위에서 발단한 새로운 개념의 산수는 전통성과 현대성의 교배에서 얻어진 산물이다. 전통적인 수묵산수의 이미지를 그대로 살리는 가운데 단지 물감을 찍어가는 방식으로 이어지는 선, 즉 점선을 덧붙일 뿐이다. 그럼에도 수묵산수는 뒤쪽으로 물러나고, 점으로 이어지는 생경한 점선만이 시선을 압박한다. 이런 식의 조형적인 해석은 확실히 생경하고 낯설다. 그런데도 결코 충격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장르파괴가 보편화하는 현실에서 볼 때 이종교배 방식의 조형적인 해석은 자연스러운 추세이기 때문이다. 물론 장르 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전통회화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재료는 물론 조형적인 언어 및 사상 자체가 서구회화와는 완전히 다르기에 그 경계선상에 선다는 일조차도 힘겨운 선택이다. 하지만 그는 일찍이 전통회화도 달라져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기에 10여 년 전부터 시각을 바꾸어 전통적인 소재를 탈피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현대적인 조형언어 및 어법을 모색해 왔다. 시각적인 이미지로서의 현대성을 추구하되 내용으로서의 회화적인 사상 및 철학은 전통미학에 투철하겠다는 태도이다.

 

 

우선 시각적인 이미지로의 전통성 및 현대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하는데 집중했다. 섬과 같은 간명한 형상의 작업을 시작으로, 물결무늬 혹은 동심원 같은 이미지 위에 꽃잎이 놓이는 작업, 그리고 조약돌을 소재로 하는 일련의 작업이 그러하다. 이들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정서는 자신의 숨소리를 듣고 있는 듯싶은 정적인 세계이다. 붓 자국이 감춰지고 단지 맑고 투명한 수묵담채의 시각적인 효과가 돋보이는 작업들이다. 마치 감상자뿐만 아니라 세상을 모두 맑게 정화시킬 듯싶은 인상이다. 실제로 이런 작품과 마주하면 명상의 세계로 이끌리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이 그의 작업에 일관성 있게 포진하는 정적인 이미지는 동양적인 정서의 발현이다. 여기에서 정적인 이미지는 감정의 과잉을 억제하는 가운데 내면을 직시하도록 유도하는 사유의 그림자를 뜻한다. 정신의 소요 그 흔적으로서의 정적인 이미지는 여백개념과 상통한다. 당연히 서구적인 조형개념에서 말하는 공백, 즉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 상태와는 다르다. 잡다한 형태를 소거한 자리에 깃들이는 청량한 존재감이 정적인 이미지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 한 최소한의 형태묘사에 그쳤다. 추상적인 언어이든 구체적인 형태이든 극단적일 만큼 절제된 조형공간을 추구한 것이다.

 

 

직관 및 정관적인 태도를 중시하는 동양회화의 특성을 견지하는 가운데 미니멀리즘에 합당한 최소한의 이미지로 한정했던 그의 작업은 설득력이 있다. 보이는 것의 의미에 한정하지 않고 보다 넓은 세계를 소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형태를 최소화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더라도 그림이란 조형의 문제임을 전제로 할 때 시각적인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호소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시 말해 형태의 압축 또는 단순화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함으로써 전통적인 수묵산수를 떠올리게 되었는지 모른다. 즉, 수묵산수에다 아크릴 물감을 찍어 연결하는 점선, 즉 현대적인 개념의 새로운 준과 조우하게 된 셈이다.

골기를 강조하는 강고한 준법이 강조되는 산수와는 달리, 이전의 작업에서 중시해온 정적인 이미지를 반영한 산수이다. 채색을 곁들이되 색조는 부드럽고 온화한 담채로 마감함으로써 정적인 분위기가 산수를 지배한다. 그 위에 몇 가지 재료를 혼합한 흰색의 아크릴 물감으로 점선을 만들어간다. 산의 윤곽선 또는 바위의 주름, 즉 준을 만들어가는 흰색의 점선은 일정한 간격과 크기를 유지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이어지는 점선이 산수 전체를 덮는다. 그러고 나면 수묵담채의 산수는 점선에 가려진 채 부분적으로 드러날 따름이다. 점선의 존재감이 워낙 강해 수묵담채의 산수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는 형국이다.

 

         

 

전통적인 수묵담채 기법의 산수경이 자리하고 그 위에는 점선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산수가 겹쳐지는 것이다. 오직 점선으로 이어지는 형상으로 보아서는 ‘골격산수’라고 해야 마땅할 듯싶다. 더구나 그 점선은 뼈를 연상케 하는 흰색이니 ‘골격산수’는 일견 타당성이 있다는 생각이다. 어쨌든지 두 가지 형태의 산수가 겹쳐지는 이중구조는 전혀 다른 개념의 산수화를 가능케 했다. 전통적인 수묵산수의 시각으로는 이해되지 않으나, 현대회화의 범주에서 보면 엉뚱하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기존의 수묵산수 개념을 초월하여 새로운 개념의 산수화라는 차원에서 바라보자면, 일단 고정관념을 깨뜨린 발상의 전환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의미는 적지 않다.

동일한 크기의 연속적인 흰색 점의 연결에 의해 이루어지는 점선의 모양은 얼핏 LED 발광  소자를 연상케 한다. 좁쌀 크기의 LED는 조명기구로는 물론 전광판 따위의 디스플레이에 광범위하게 쓰임으로써 현대인에게 낯설지 않다. 어쩌면 점선이라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윤곽선 또는 준을 떠올리게 되었을 때, LED에 대한 이미지가 부지불식간에 조형적인 사고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그림이란 것도 결과적으로는 보고 느끼고 배운 사실, 즉 경험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만일 흰색의 점선을 LED로 대체한다고 할지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리라 싶다. 오히려 보다 현대적인 새로운 개념의 산수화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그의 새로운 해석의 산수는 시대감각에 부응한다. 전통적인 산수화의 화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조형적인 해석의 결과로 점선의 산수화가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미, 즉 수묵산수화의 전통이 훼손당했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전통에 갇혀 있는 수묵산수를 보다 넓은 조형의 세계로 끌어내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전통적인 수묵산수화에 대한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저하는 현대라는 시대감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통산수화는 끝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미적 감수성을 자극할 만한 새로운 조형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까닭이다.

이에 비해 그의 새로운 개념의 산수화는 그림에 대한 현대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흰색의 점선은 전통적인 산수를 기반으로 성립된다. 다시 말해 수묵담채로 형용하는 전통적인 산수의 형해, 즉 골격을 전면에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면에서 점선은 사의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시각적인 이미지에 의해 감추어진 흉중의 뜻, 또는 골기가 점선의 형상으로 그 존재를 드러낸 것일 수 있다. 점선 또한 궁극적으로 형태를 형용하는데 동의하기 때문이다. 점선이 만들어내는 형태란 개략적인 것일 수밖에 없으나, 전체상으로는 산수의 형사이기에 그렇다.

 

 

전통적인 화법의 수묵산수와 점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이중구조의 산수경은 일테면 정신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군더더기 없는 말끔한 흰색의 점으로 점철하는 산수의 형해를 정신적인 가치 말고는 달리 이해하기 어렵다. 단순히 조형적인 해석의 차원을 뛰어넘는 내재적인 가치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기에 그렇다. 만일 바탕에 존재하는 전통적인 수묵산수화를 제거하면 점선으로 이어지는 산수의 형태만이 남게 된다. 당연히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현대적인 회화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다시 말해 전통과 결부시키기 어려울지언정 산수를 현대적인 조형어법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전통적인 수묵산수에 현대적인 조형어법을 도입한 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그 자신의 미적 감수성을 신뢰하는데 기인한다. 수묵산수의 세계를 진정한 자기 자신만의 감각,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따라서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개념의 산수화는 현대적인 수묵화를 모색하는 이들에게는 닫힌 귀가 확 열리는 구원의 복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장현재 작품전은 2009년 4월22일부터 28일까지 삼청동 아카캘러리(02-739-4311)에서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