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길

펜보이 2009. 8. 12. 22:40

 

 

 

신지원 작품전


채색모시에 반영된 투명한 색채의 순수성


신항섭(미술평론가)


오늘 전통회화 작가들은 전통을 고수하느냐, 현대미학을 받아들이느냐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있다. 시대는 변하고 현대인의 미적 감수성도 변하는데 전통을 계승한다는 일은 한복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기분과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전통회화를 전공한 작가들에게 전통미학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드는 멍에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미학을 수용하는 일만이 능사는 아니라는데 어려움이 있다. 자칫 현대성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전통적인 미적 가치를 상실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기에 그렇다.

신지원의 작품에서도 오늘의 전통회화 작가들이 안고 있는 공통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경우에는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방법을 강구함으로써 이와 같은 고민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전통과 현대의 모색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는데, 화훼를 소재로 하는 채색화임에도 수묵을 도입했던 것은 그 하나의 예이다. 수묵과 채색은 동일한 전통재료임에도 두 가지를 혼용한다는 것은 현대미학의 성과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채색화를 전공했으나 거기에 갇히지 않고 무언가 새로운 조형적인 시도를 거듭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사실적인 형태묘사를 기반으로 하는, 일련의 꽃을 소재로 한 작업을 지금껏 지속하고 있다는 것은 전통을 부단히 의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는 어느 한 가지 형식에 머물지 않고 부단한 실험적인 모색을 통해 채색화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개인전의 경우에는 어김없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그 때마다 새로운 소재 및 방법을 채택했다. 따라서 소재의 선택은 물론이려니와 표현기법 및 조형적인 해석에서 다양한 세계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채색화로서의 기본적인 틀은 벗어나지 않는다는 원칙에 충실했다.

꽃을 소재로 하는 경우에도 수묵을 병용하는가 하면, 조형적인 변주를 통해 사실적인 형태를 벗어난 변형 왜곡의 조형어법을 강구하여 독자적인 형식미학을 수립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기하학적인 이미지의 평면구성의 현대적인 이미지를 도입하기도 했다. 더불어 최근에는 만화방창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꽃을 화면 가득히 채우는가 하면, 그 위에 흰색의 부조형식의 꽃의 형상을 얹기도 한다.

이렇듯이 그는 늘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는데 열정을 바쳤다.

 

 

최근 수년 간 계속되고 있는 천연염료로 물들인 채색모시 조각을 이용하는 작업은 채색화의 또 다른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전통 조각보 형식에 근거하는 기하학적인 구성을 통해 아름다운 추상적인 이미지를 만든 다음 그 위에 꽃이나 인물 또는 도자기 따위의 형태를 얹는다. 다양한 색깔의 선도 높은 천연물감으로 물들인 채색모시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모시가 머금은 천연물감은 시각을 자극하지 않는 가운데 그윽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자연에서 추출해낸 천연물감과 모시가 화합하여 만들어낸 색채의 환상은 한국인의 뛰어난 미적 감각의 산물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재료를 이용하여 조각보의 개념 위에서 다양한 색채배열방식을 구사, 화사하면서도 조화로운 추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단지 색채 구성만으로 작업을 끝낼지라도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도 손색없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한 걸음 진전, 전통회화로서의 연결고리를 마련한다. 즉, 신윤복의 미인도를 비롯하여 전통복식의 옛 여성의 인물과 국보로 지정된 전통도자기 그리고 화훼 따위를 배치함으로써 채색화로서의 전통성을 견지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조형어법은 채색화의 현대화에 부응하는 한편, 보다 선명한 전통회화로서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한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추이해 보면 늘 이런 식이었다. 전통과 현대를 어떻게 조화시키는가에 골몰한 흔적이 역력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 1990년대 초에 일시적으로 장식성이 강한 디자인적인 형태해석, 즉 독자적인 형식미에 대한 갈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는 조형세계와 조우한다. 꽃을 소재로 한 이때의 작품은 사실적인 화조화의 형식을 탈피하여 형태를 변형하고 왜곡시킴으로써 독자적인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준다. 그는 여기에서 꽃 그림으로서의 독자적인 조형성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또 다른 형식을 찾아 나선다.

그의 조형적인 편력은 적어도 개인전이라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기인한다. 물론 창작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한 곳에 정체되지 않고 부단히 변신을 거듭하는 태도야말로 창의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하는 작가의 참모습이다. 그럼에도 그의 경우에는 새로운 조형적인 형식미를 찾는 일에 자신의 재능을 너무 많이 소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소재를 달리하거나 또는 재료 및 기법이 달라진다고 해서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공통된 미적 감각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색채이미지라든가, 형태해석에서는 이미 그 자신만의 개성을 실현하고 있기에 큰 문제는 없다.  

 

 

어떻든 천연모시를 이용하는 최근의 작업은 색채구성이라는 기본적인 틀 위에서 전통적인 채색화의 윤리성을 도모함으로써 관심을 모은다. 신윤복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이나 꽃 또는 국보로 지정된 옛 도자기를 배치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환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런 형식의 조합은 현대회화에서는 보편적인 것이 됐지만, 그의 작품에서도 기존의 채색기법과 달리 한층 발랄하고 신선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연출한다. 어느 면에서는 색채의 속살을 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는 맑으면서도 청아한 채색모시 특유의 색채이미지가 만들어내는 환상이다.

작품에 따라서는 채색모시 위에 담묵을 덧칠함으로써 발색이 억제되고 순도가 떨어지는 미묘한 색채이미지를 얻기도 한다. 이럴 때 채색모시의 색깔은 담묵과 만나 중후하면서 고상한 색채이미지로 바뀐다. 유채색과 담묵의 유연한 결합인 셈이다. 따라서 채색모시를 이용한 구성작업은 이렇듯이 담묵을 가미한 경우와 순색을 살리는 경우 두 가지로 구분된다. 어느 쪽이나 색채이미지는 아름답다. 전래의 채색재료, 즉 분채가 만들어낼 수 없는 투명한 색감이 심미적인 가치를 높이는 까닭이다.

 

 

최근 작업에서는 채색모시를 통한 구성적인 아름다움에 비중을 높이고 있다. 이전의 작업에서는 채색모시를 이용한 구성은 소재 및 제재의 배경이나 구성적인 이미지로서의 역할에 머물렀다. 크기와 색깔이 다른 채색모시를 이리저리 조합하여 아름다운 색채구성의 화면을 만든 뒤, 바느질 자국을 덧붙이고 소재를 그려 넣는다. 따라서 소재가 중심이 되고 색채모시에 의한 추상적인 구성은 보조적인 이미지가 된다.

그런데 최근 작업에서는 채색모시에 의한 구성, 즉 추상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다시 말해 채색모시의 이미지가 중심이 되고 소재 또는 제재는 부수적인 이미지로 바뀐다. 주객전도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소재 및 제재는 한두 군데 자리를 잡는 것으로 그친다. 그러고 보면 이제 채색모시의 그 맑고 투명한 색채이미지가 전면으로 부각되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따라서 평면적인 색채구성이라는 순수 조형의 길로 들어선 셈이 됐다. 실제로 대작에서 보는 다채로운 채색모시를 이용한 추상적인 구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조형세계를 실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두 군데 꽃과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가 존재함으로써 화면은 돌연 새로운 긴장상태로 돌입한다. 그 긴장감은 세련된 형태미에서 비롯된 시각적인 즐거움을 수반함으로써 조형적인 아름다움은 상승한다. 추상과 구상의 충돌이 아니라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름다운 꽃의 이미지가 등장함으로써 채색모시가 차지하는 추상적인 공간은 비어 있는 듯싶은 상황으로 바뀐다. 화면 전체를 차지하던 채색모시의 아름다운 추상적인 공간은 꽃의 개입으로 인해 별안간 여백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꽃의 존재가 다시 화면의 중심축을 형성하게 되고, 추상적인 공간은 마치 여백의 존재로 가치가 바뀐다.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채색모시 구성에 의한 이미지는 순수한 추상적인 아름다움의 영역에 머물고 꽃을 매개로 하는 형상이 화면을 장악하면서 전면으로 부각된다. 여기에서 꽃의 형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그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평면적인 채색모시의 조각이 연출하는 다채로운 추상적인 이미지는 투명한 색채의 순수성으로 환원한다. 색채의 순수성이 다름 아닌 여백의 개념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이는 그 자신조차도 기대하지 못한 전혀 뜻밖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부단한 창의적인 사고가 마침내 그 자신의 작업을 여기까지 인도한 셈이다. 그의 조형적인 사고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여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전에 만났던 세련된 조형미에 도달한 독자적인 형식으로 회귀할 지도 모른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의 작품세계는 조형적인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