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길

펜보이 2009. 8. 25. 08:37

 

 

 

박일화 작품세계


문학적인 정서를 지향하는 순연한 이미지의 채색화


신항섭(미술평론가)


화가는 자연을 관찰하면서 조형의 묘리를 터득한다. 조형이란 인위적으로 형태를 만드는 일이니, 실제를 재현할 수 있는 손의 기술을 먼저 익히는 것이 순서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은 그림 그리는 과정을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가르치는데 있다. 하지만 일단 손의 기술을 익히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실제를 뛰어넘는 자기만의 조형세계를 모색하게 된다. 그림의 세계란 궁극적으로 독자적인 조형세계, 즉 개별적인 형식미를 통해 완성되는 까닭이다.

박일화는 꽃이라는 소재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유미주의자이다. 다시 말해 그 자신만의 시각으로 관찰한 자연미를 한지에 그대로 옮겨놓는다. 자연미의 상징이기도 한 꽃은 그 종류에 상관없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꽃을 취재하여 실제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하게 묘사하는데 일차적인 목표를 둔다. 가공하지 않은 자연의 상태 그대로의 꽃을 아름다운 채색기법으로 흉내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그의 그림이 실제의 꽃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렇다. 분채와 한지를 이용하여 만들어지는 꽃의 형상은 현실에서 보는 꽃과 다른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작업하는 과정에서 그의 미적 감각이 반영되는 까닭이다. 이는 자연미와는 또 다른 형태의 조형적인 순수미인 것이다. 분채를 사용하는 전통적인 채색화는 발색이 억제되는 재료의 특성상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는 경우일지라도 실제와는 다른 조형미를 발산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분채를 이용하는 채색화는 색채의 발색이 억제됨으로써 화면은 차분한 분위기로 가라앉는다. 한지와 분채라는 재료가 부드러우면서도 정적인 이미지를 지어내는 것이다.

이처럼 발색이 억제되고 침잠하는 분채는 감정을 안으로 다스린다. 원색의 꽃을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결코 화려하다는 느낌이 없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그러기에 실제에서 느끼는 감동과는 또 다른,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과 만나게 된다. 그는 그림이 만들어내는 색채이미지를 통해 재현되는 자연미는 실제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실증하고 있다. 자연의 번안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와는 다른 감동을 맛보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자연미보다 그림이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전제로 부단히 조형적인 미를 탐색한다. 이는 실상과는 다른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음을 뜻한다. 심미적인 태도에 의해 산출되는 미적인 가치는 무상한 자연미보다 한 차원 높은 이성 및 감성의 산물이다. 그는 이 차이를 명백히 증명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화실에 놓인 정물이 아닌, 자연속의 실상을 재현함으로써 자연미와 조형미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려는 것이다.

맨드라미, 창포, 양달귀비, 쑥부쟁이, 나팔꽃, 봉숭아, 망초 등 소재의 대다수가 우리의 주변에 산재해 있는 꽃들이다. 그냥 밖으로 나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꽃들이어서 누구에게나 친숙하다. 그는 이들 꽃을 하얀 한지에다 불러들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자연의 꽃이 그에 의해 선택됨으로써 영속적인 생명을 얻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한시적인 생명체인 자연속의 꽃에서, 우리의 미감을 유혹하는 이상적인 존재로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하면 자연 속에서 보고 느끼는 감동의 깊이를 그림 속에서도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러나 자연 그대로를 흉내서는 결코 자연이 주는 감동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기에 자연의 형상을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자연미를 뛰어넘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한다. 이를 위해 강구해낸 하나의 표현방법은 통일된 색채이미지이다.

즉 다양한 모양 및 색깔을 지닌 들풀을 특정의 동일색상으로 통일하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연초록과 연보라, 담청이란 기조색이 만들어지는 동기가 된다. 다시 말해 풀잎의 형태와 모양이 어떻든지 한 가지 통일된 색채이미지로 통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색채이미지를 통해 순연한 조형적인 질서를 부여한다. 실제로 어느 작품이나 전체적으로 순일하고 순연한 색채이미지가 지배하고 있다는 데서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색채이미지로 인해 순화된 시각적인 이미지가 형성된다. 어느 작품이나 부드럽고 따스하며 정적인 분위기를 지어내는 것도 통일된 색채이미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설령 풀줄기가 바람에 쓸리는 동적인 형태의 작품일지라도 차분하게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소재의 배치 및 구성에서 자연성을 빙자한 인위성을 가미함으로써 미적인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면 거의 같은 간격으로 발처럼 내려뜨린 나팔꽃을 소재로 한 작품의 경우, 자연스러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인위적인 조작의 냄새가 짙다는 인상이다. 한마디로 그 자신의 조형감각이 연출해낸 의도적인 구성이라는 점을 간파하기 어렵지 않다. 봉숭아꽃을 소재로 한 경우에도 이와 같은 조형적인 논리를 적용하고 있다. 곁줄기를 내지 않고 기다랗게 자라는 봉숭아 줄기를 역시 거의 같은 간격으로 배열함으로써 자연스러움 속에 은닉된 조형적인 질서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이다.

자연미란 있는 그대로의 물상의 형태와 색채에 부여된 아름다움이다. 반면에 조형미란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자연적인 질서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새로운 형식의 조형적인 질서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통일된 색채이미지를 구사하는 것이나, 소재의 배열방식에서 자의적인 미적 감각으로 재구성하는 것도 조형미에 해당한다. 인위적인 미적 질서는 자연미보다 한 차원 높은 심미적인 쾌감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그림감상이란 어느 면에서 지적인 훈련 및 이해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심미적인 관점에서 미추를 분별하는 능력이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그의 작업 가운데 또 하나의 의도적인 조형어법은 소재의 형태를 일정한 크기로 통일하고 동시에 어떤 규칙적인 리듬을 부여하는 데 있다. 즉, 창포를 소재로 하는 일련의 작품은 잎줄기를 거의 같은 크기로 묘사하고 있어 금세 의도적인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바람에 쓸리는 모양으로 방향성을 나타내는 과정에서 규칙적인 리듬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창포의 같은 크기 및 모양의 잎줄기가 화면 전체를 덮는 가운데 역시 띄엄띄엄 보라색의 창포 꽃을 배치함으로써 규칙적인 율동미를 느끼도록 한다.

이러한 표현방법은 인위적인 조형의 아름다움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자연미를 훼손하지 않는 가운데 슬며시 인위성을 개입시킴으로써 실제와 다른 조형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자연을 빙자하면서 그 자연미를 뛰어넘는 지적인 해석을 덧붙여 탐미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탐미적인 시각은 어느 특정의 형태 및 색채에 머물지 않고 대자연이 지어내는 생명의 질서 및 조화의 미를 겨냥하고 있다. 그가 시야를 넓혀 들판과 하늘까지 아우르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의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찬미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탐미적인 즐거움과 함께 정신적인 휴지부로서의 서정적인 정취를 간과하지 않는다. 위에서 살펴본 몇 가지 조형적인 특징을 기반으로 하여 전체적인 이미지를 압축하고 간결하게 처리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시 말해 간결한 이미지 속에 서정미를 함축시키고자 한다. 그림은 문학과 상통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가 지향하는 조형세계의 궁극은 문학적인 그림, 즉 서정성으로 물들여진 시적인 회화에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