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현장

펜보이 2010. 3. 26. 11:50

 

 

 

 

박필현의 작품세계

 

의식 및 감정의 해방을 유인하는 큐빅

 

신항섭(미술평론가)

 

예술가에게는 무엇보다 사고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바꾸어 말해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야만 창의적인 작업이 가능하다. 창작이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조형적인 해석을 전제로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조형작업에서 새로운 시각적인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각의 변화, 발상의 전환은 새로운 조형언어 및 어법의 디딤돌이 된다.

박필현의 최근 작업은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평면회화의 입체화라는 새로운 시각적인 질서를 모색하고 있다. 어차피 그림이란 현실공간을 빙자한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실상을 재현하는 경우에도 명암이나 원근에 의한 착시현상을 통해 실제처럼 느끼게 하는데 있을 뿐이다. 이때 명암 및 원근 표현은 실제의 형상, 즉 입체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조형의 기법이다. 적어도 재현적인 작업에서 입체적인 표현은 이와 같은 방법에 국한해 왔다. 하지만 그의 최근 작업에서 볼 수 있듯이 입체적인 이미지와는 또 다른 공간적인 해석을 통해 새로운 조형세계와 조우하고 있다.

 

 

최근 작업은 꽃이나 자연풍경을 배경으로 하여 그 위에 큐빅, 즉 입방체를 배치하는 특이한 구성이다. 여기에서 큐빅은 마치 공중을 부유하는 형태가 된다. 작품에 따라서는 우주의 별들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듯싶은 상황을 연상케 한다. 평면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루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공간감이 선명하다. 더구나 그 스케일은 우주적인 시야로 확장될 정도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공간의 크기는 어이없게도 일상적인 시야에 들어오는 주변 풍경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장면이라는 사실을 알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현실풍경이라는 실상과 우주적인 스케일이 공존하는 기묘한 조형공간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우리의 현실상황에 조형적인 해석을 개입시켜, 우주적인 공간에 대한 연상을 유도하는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한 송이 꽃을 배경으로 설정한 작품의 경우, 실제로 감지되는 공간의 크기는 확대된 꽃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주적인 크기로 연상되는 것은 현실적인 감각을 무색하게 만드는 기묘한 공간구성에서 비롯된다. 이는 공간적인 심도의 문제로서, 어쩌면 이미지의 선명도에 따른 차이에 의해 만들어지는 원근감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이미지의 선명도와 더불어 큐빅의 크기에 따른 차이 또한 공간감을 유도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선명한 큐빅과 희미하게 처리되는 배경의 이미지 사이에는 먼 거리감이 존재한다. 꽃이나 풍경의 이미지가 희미하게 처리됨으로써 시각적으로 후퇴하는 양상이다. 큐빅은 근경에 자리하고 배경은 원경이 되는 것이다. 기껏해야 100호 크기의 화면에서 수 킬로미터의 거리 및 공간감을 압축해낼 수 있음은 조형의 신비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기에 그의 작품을 보면서 현실감각을 상실하는 대신 우주적인 상상의 날개를 펴게 된다.

이처럼 큐빅을 제재로 하는 일련의 작업은 꽃이나 풍경은 배경이 되고 여러 개의 큐빅이 화면을 장악하는 형국이다. 무한공간을 부유하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질량을 갖지 않는 듯싶은 큐빅의 존재는 현실적인 공간을 가볍게 이탈한다. 중력의 법칙을 벗어나 무중력의 상태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큐빅의 존재방식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보다 풍요로운 조형공간을 열어놓는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큐빅은 정방형이 아니라 비정형의 형태로 묘사되고 있어 변화의 폭이 크다. 즉, 입방체를 이루는 면과 변의 크기가 저마다 다르고 모양 또한 서로 달라 왜곡되어 보인다. 이처럼 비정형의 큐빅은 시각적인 변화, 또는 조형적인 변주를 유인하면서 동적인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정방형의 큐빅은 상투적이어서 시각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은 반면, 비정형의 큐빅은 형태의 변주로 인한 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가 가능하다.

그의 작품에서 큐빅은 어떤 규칙적인 질서에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배치됨으로써 한층 활성화된 입체적인 공간을 형성하게 된다. 흡사 큐빅 형태의 우주선 또는 유성이 집단을 이루면서 무한한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이미지가 평면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발상의 전환, 조형적인 상상력에 의해 펼쳐지는 조형의 요술이자 신비인 것이다. 입체적인 큐빅을 이용해 입체적이고 실제적인 공간감을 부여, 우주적인 공간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작업은 우리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다.

 

 

현실적인 상황과 큐빅이라는 기하학적인 구조물을 조합하여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인 공간구성은 보이는 사실과 달리 아주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다. 평면공간과 입체공간이 함께 하는가 하면, 기하학적인 비정형의 큐빅은 각 면마다 다른 이미지의 평면적인 이미지로 표현된다. 즉, 거울에 비치는 풍경과 같은 개념의 평면적인 이미지를 조합하여 큐빅의 형태를 만들고 있다.

큐빅이라는 육면체는 각 면마다 독립적인 조형공간을 설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섯 개의 각 면마다(실제로는 3개의 면이 보일뿐이다) 서로 다른 이미지가 담겨 있다. 거울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는 각 면은 저마다 독립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가령 하나의 큐빅에서는 세 개의 면이 보이는데, 각각의 면에 서로 다른 풍경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큐빅의 면은 풍경을 비추는 창이 되는 셈이다. 그 풍경의 창은 큐빅이 존재하는 공간과는 또 다른 독립적인 공간이 된다. 바꾸어 말해 풍경 안의 풍경이 된다. 이처럼 그의 최근 작업은 다층 공간 또는 복합공간이라는 특별한 조형개념을 제시한다.

 

 

꽃이나 풍경은 사실적인 공간감을 만들어내고, 큐빅은 평면을 조합하는 입체물이 되며, 개개의 큐빅의 면은 풍경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리고 큐빅을 떠받치는 배경으로서의 꽃이나 풍경 사이에는 우주적인 스케일의 공간감이 형성된다. 이 모두가 하나의 평면적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공간구성은 현실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비현실적이거나 비실제적인 이미지를 도입하는 것도 아니다. 현실에서 취한 소재 및 이미지임에도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공간구성이 현실감을 차단, 신비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아주 작은 알갱이의 유리구슬을 촘촘히 붙여 한 겹 유리알 층을 만든다. 다시 말해 그림 위에 동일한 크기의 유리 알갱이가 화면 전체를 덮는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유리구슬이 덮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유리구슬을 통해 비치는 이미지, 즉 큐빅과 배경의 이미지는 유리구슬의 굴절현상에 따라 선명도가 약화된다. 유리구슬을 투과한 이미지는 그래서 부드럽고 온화하며 신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인상은 그의 작업 전체를 하나의 관점으로 통합하는 시각적인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그의 최근 작업은 전통적인 채색화와는 달리 캔버스와 아크릴은 물론 그 밖에 다양한 복합재료를 이용한다. 물론 수묵을 포함하여 수간채색도 부분적으로 이용한다. 소재 및 내용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이용함으로써 보다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인상은 결코 난삽하거나 복잡하지 않고 일목요연하다. 중간색조로 일관하는 전체적인 색채이미지와 더불어 유리구슬에 의한 통일된 시각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까닭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일상적인 감각이 무디어진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일상적인 시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조형의 세계를 유영하는 꿈에 사로잡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림 속의 큐빅처럼 중력의 영향을 벗어나 무게감을 상실한 채 자유롭게 유영하는 꿈을 꾸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의식의 확장 및 감정의 해방을 맛보게 되며 낭만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기 십상이다.

 

 

인간에게 우주를 유영하는 것은 영원한 이상인지 모른다. 현실적으로 우주선을 통해 그 꿈을 실현하고 있으나, 거기에는 복잡다단한 과학이 개입되고 있다. 우주에 대한 인간의 오랜 꿈과 환상은 과학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정한 개체의 홀가분한 유영일 따름이다. 이러한 꿈과 환상은 응당 비현실적인 감각으로부터 발생한다. 비현실성은 때로 낭만적인 달콤한 환상을 유도하게 된다. 그가 제시하는 큐빅은 이와 같은 인간의 꿈과 환상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