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이야기

펜보이 2010. 6. 22. 11:28

 

 

 

엄숙한 의식, LP 듣기

 

 

전자문명이 지배하는 이 시대 음악애호가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나 다름없다. 전기를 매개로 하는 전자문명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음악을 듣는 방법은 연주자를 상대로 하는 실연뿐이었다. 그리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계층은 권력을 가지거나 경제적인 여유를 가진 상류사회 사람들의 전유물일 정도로 극히 제한적이었다. 물론 포괄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규칙적인 리듬을 가진 소리는 모두 음악이라고 할 수 있으니, 반드시 소수의 전유물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지 모른다.

하지만 작곡가라는 특정 직업이 등장함으로써 리듬, 멜로디, 화성이라는 구성요소로 이루어지는 악곡이 만들어지게 되고, 고상한 예술적인 가치를 추구하게 된 이후의 음악은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했다. 지금도 고도로 훈련된 연주자의 실연을 듣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금전을 지불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오디오가 대중화된 이후 음악은 이제 그야말로 대중 속으로 깊숙이 들어섰다. 누구나 아름다운 음악의 향기에 취함으로써 정서적인 안정을 도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은 인간의 정서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추상적인 가치로서의 음악은 인간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 그 어떤 예술양식보다도 인간의 내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외부적인 자극에 의해 반응하는 인간의 감정 가운데 음악은 그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음악에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담겨 있기에 그렇다. 따라서 음악을 듣는 행위는 감정의 안정, 즉 정서적인 안정을 도모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쁠 때는 그 기쁨을 배가시키고, 분노할 때는 그 감정을 억제하며, 슬플 때는 마음을 다독여주는가 하면, 즐거울 때는 춤을 추게 만드는 것이 음악이다. 그러기에 음악이 인간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하게 된 것이리라.

집에서 오디오를 통해 음악을 듣는 행위는 음악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탐미, 즉 심미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연주하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오직 음악 그 자체에만 몰입함으로써 음악이 내포한 미적이고 철학적인 깊은 의미까지 탐색할 수 있는 까닭이다. 실연을 통해 음악을 듣는 것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각적인 즐거움, 즉 실연을 직접 눈으로 보는 상황으로 인해 음악에 대한 집중력은 오히려 떨어지게 된다. 달리 말해 귀로 듣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듣게 되는 까닭이다.

이에 반해 오디오 음악은 연주하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악곡이 풀어내는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청각기능이 극도로 예민한 상태가 되고, 미적 감각은 악곡에 따르는 음악의 흐름에 기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한마디로 음악과 신체감각이 일체가 되어 소리가 만들어내는 희로애락의 감정세계는 물론이요, 심오한 철학적인 세계에까지 진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 즉 음악과 1대1의 상황에서 몰입하게 되면 음악이 담고 있는 심층적인 세계로의 진입이 보다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음악을 들으며 감정의 해방 및 정서적인 안정, 그리고 지적인 이해의 쾌감을 맛보게 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이로써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탐미적인 태도로 음악을 듣다보면 감정의 움직임을 포함하여 지적인 이해의 눈이 열리는 까닭이다. 이는 정신 및 신체가 악곡이 요구하는 바, 그 심층적인 세계에 이르고자 하는 향한 욕망의 결과이다. 그리고 감정을 움직이는 그 이상의 무엇과 조우하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마침내 심미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이다.

음악을 감상하는 태도에 따라 음악이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한 이해 또한 달라진다. 바꾸어 말해 LP로 듣는 것과 CD로 듣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음악을 듣기 위한 어프로치, 즉 준비단계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존재한다. CD는 디지털기술로 녹음된 음원을 이용하여 음악을 재생한다. 이에 비해 LP는 아날로그 기술에 의해 녹음된 음원으로 재생한다. 어떻게 보면 이는 기술적인 문제의 차이일 뿐, 녹음된 음악을 재생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자 간에는 녹음기술은 물론 재생기술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음악을 듣는 방식을 포함하여 재생음악 자체에서도 적지 않은 차이가 느껴진다. CD가 출현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아날로그를 상징하는 LP는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단언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처럼 비관적이던 LP는 여전히 그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소수 오디오마니아들은 오히려 LP의 기술적인 진보를 부추기며 아날로그 재생음악의 우월성을 부단히 찬미해왔다. 실제로 이들 LP 마니아들의 수요에 따라 LP 재생기술은 CD 출현 이전보다 현저히 발전하고 있다. 특히 턴테이블의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으로 LP가 담고 있는 음악정보를 남김없이 끄집어내는 단계에 이르렀을 정도이다.

최고의 디지털 기술이 집약된 SACD 플레이어로 재생하는 경우와 역시 최고의 기술이 담긴 턴테이블로 재생하는 경우를 비교해 보면 그 음악적인 뉘앙스가 다르다. 한마디로 음악적인 표현력을 놓고 보면 아날로그 쪽이 더 풍부하다고 할 수 있다. LP를 선호하는 이유가 단순히 복고적인 취향 때문이라고 볼 수 없는 명백한 증거인 셈이다. 잡음이 없는 깨끗한 음악적인 신호와 음악적인 아름다움의 표현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시사한다.

LP로 음악을 듣기 위한 과정은 다소 번거롭다고 할 수 있으나, 오히려 음악적인 몰입에는 더욱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LP로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우선 턴테이블에 대한 기계적인 조작, 즉 음악을 재생하는 데 따른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주는 일이 필요하다. 아무리 기계적인 완성도가 높은 턴테이블이라고 할지라도 최상의 컨디션을 갖추어주지 않으면 그 가치를 충분히 끄집어낼 수 없다. 턴테이블은 모터에 의해 구동되는 다이렉트방식의 경우에도 톤암과 카트리지를 장착하여 트래킹을 위한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는 일은 손으로 해야 한다. 즉 카트리지 자체가 아주 민감하여 사용자의 세심한 세팅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턴테이블을 운용하는 데는 경험과 감각이 필요하다.

턴테이블은 레코드를 얹는 회전판과 레코드의 소리골에 저장된 음악신호를 읽어내는 바늘이 달린 톤암으로 크게 나뉜다. SP시대의 턴테이블은 이 두 가지만으로 구성된 지극히 간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LP로 바뀌면서 바늘의 무게를 조정하는 기능과 바늘이 레코드의 소리골을 따라갈 때 미끄러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진행하도록 하는 제어기능이 추가되었다. 그런가 하면 회전판(플래터)이 정확한 시간으로 돌아갈 수 이 있도록 회전수를 조절하는 기술도 개발되었다. 뿐만 아니라 회전판을 돌리는 모터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져 조용하고도 위아래로 흔들림이 없는 평탄한 회전기술을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이러한 대책은 기계적인 운동에 따른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모아진다. 여기에다가 외부적인 진동이나 충격을 차단하는 기술이 적용되는 등 턴테이블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개선해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최근에 시판되는 초고가 턴테이블들은 기계적으로도 이미 CD의 영역을 넘어섰다고 평가될 정도이다.

이러한 세심하고도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기능들이 추가되고 또 개선됨으로써 LP 는 CD에 필적하는 깨끗한 재생음악을 들려주게 되었다. 실제로 최근 초고가의 턴테이블이 재생하는 음악을 들어보면 레코드 자체 문제로 인한 잡음 이외에는 자체 진동이나 외부적인 잡음을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 과연 LP 소리가 맞는가싶을 만큼 섬세하고 정교하며 깨끗한 소리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안정적인 턴테이블의 작동을 위해 베이스를 금속이나 돌 등의 소재를 사용, 무게만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기계적인 안정성을 확보하여 잡음이 없는 깨끗한 소리를 재생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LP는 무엇보다도 음악적인 표현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그 효용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CD나 SACD는 왜곡이 적고 깨끗하며 선명한 음질을 들려준다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으나 미묘한 음악적인 뉘앙스에서는 어딘가 차갑고 건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CD의 경우에는 주파수 20,000Hz에서 커트되었다는 선입견 탓인지 왠지 메마르다는 기분이다. 이는 선입견이 아니라 굳이 LP가 아니라 SACD와 비교해보더라도 CD의 음질은 확실히 거칠게 느껴진다.

SACD의 경우 LP와 마찬가지로 원음을 그대로 재생할 수 있도록 주파수특성을 손대지 않아 광대역을 커버하고 있다. 청감상 CD보다 현저히 개선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P와 비교하면 왠지 메마르고 윤택하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이러한 음질적인 차이는 소스인 LP레코드와 SACD의 기술적인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는 바늘과 레이저 픽업이라는 완연히 서로 다른 픽업기술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LP는 소리골에 담긴 음악신호를 카트리지에 물린 바늘을 통해 재생하는 반면에 SACD는 ‘0’과 ‘1’로 이루어지는 이진법에 의해 녹음된 음악신호를 레이저로 읽어내는 방식이다. 따라서 LP는 기계적이고, SACD는 전자식이어서 기술적인 차이가 판이하다. 기계적인 방식에다가 부분적으로 수동조작이 필요한 LP에 비하면 SACD는 모든 게 전자기술에 의한 자동방식이라는 점에서 재생과정에서 소리가 왜곡될 소지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오디오 기기를 통해 재생되는 소리를 들어보면 LP가 한층 풍부한 음악적인 표현을 들려준다. 어쩌면 아주 미묘한 음질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마니아라면 LP를 선호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아름다운 음악에 흠뻑 취하여 황홀경에 빠져드는 데는 그 준비과정도 무시하지 못할 일이다. CD나 SACD는 소스를 플레이어에 넣고 스위치를 누르는 것으로써 곧바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간편하기 이를 데 없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LP는 일단 재생에 필요한 최상의 기계적인 조건을 완비한 이후에도, 레코드에 묻은 먼지를 제거하는 일로부터 스태빌라이저를 얹고 전원스위치를 올려 플래터를 작동시킨 뒤 톤암을 레코드 위에 얹어놓아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바늘을 망가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다소 번잡하게 느껴지는 준비과정이야말로 음악의 열락에 빠져들기 위한 마음의 정화시간인지 모른다. 어찌 보면 엄숙한 의식을 진행하기 위한 심신을 정화시키는 시간과 다를 바 없다. 실제로 CD로 음악을 들을 때와 LP로 음악을 들을 때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 때문인지 마음가짐은 물론이려니와 집중도도 다르다. 일단 레코드를 플래터 위에 올려놓고 나서도 정확히 회전하는지 또는 칩압이 적정한지, 잠시 회전상태를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게 정상적이라고 판단됐을 때 자리에 돌아가 비로소 눈을 감고 음악에 몰입할 수 있다.

이러한 절차와 수고는 음악은 물론 오디오 기기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놓는다. 음악을 간편하게 듣는다는 기분이 아니라, 마치 연주자와 같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일본의 평론가 스가노가 ‘레코드 연주’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와 같은 세심한 배려와 주의력으로 오디오기기를 조작해야만 최상의 조건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뜻이리라. 물론 실제로 연주하는 행위와 오디오를 통해 음악을 재생하는 행위는 직접적으로 비교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진지함과 프로정신이라는 점에서는 오디오를 통해 재생음악을 듣는 마니아도 연주자에 필적하는 정신 및 신체적인 긴장이 필요하다는 뜻이리라.

CD가 등장하기 이전 오디오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모두가 이와 같은 일련의 준비과정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그 준비과정을 통해 음악을 듣는다는 설렘을 즐기곤 했다. 하지만 CD가 출현한 이후 그런 마음의 준비 및 설렘이 없어졌다. 그러기에 음악을 듣는 과정에서도 긴장감이 사라져 그냥 기계적인 태도로 대응하게 된다. 한마디로 음악을 듣는다는 일에 정성이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자, 이제 다시 먼지 묻은 LP를 꺼내들고, 잠자고 있는 턴테이블에 전기를 먹이고, 바늘을 조정하여 아날로그가 만들어내는 풍부한 음악적인 표현에 귀를 기울여보자. 느리고 다소 불편한 아날로그, 그러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울리는 음악적인 감동에 심신을 맡겨보자. (신항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