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길

펜보이 2010. 8. 6. 08:40

 

 

 

김혜진초대전 - 월간미술 리뷰

 

달을 동반한 박꽃의 서정적인 공간여행

 

신항섭(미술평론가)

 

지난 7월1일부터 14일까지 서울 갤러리정 신사동점과 광화문점에서 동시에 열린 “김혜진초대전”은 여러 면에서 회화의 진정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였다. 심미적인 관점에서의 회화적인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는가를 웅변하고 있기에 그렇다. 현대회화는 방법론이나 기법 또는 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예술적인 가치로서의 회화성이 간과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칫 고루하고 진부하고 보일 수도 있다는 강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취향이 변한다고 할지라도 감동을 주는 그림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주 여리면서도 섬세하고 세련된 조형언어를 조합하여 시적인 회화를 전개하는 그의 미적 감수성은 남다른 것이다.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서정시와 같은 문학적인 정취가 흥건하다. 서정적인 정취를 탐하는 눈에 비치는 회화적인 아름다움은 심미적인 세계관의 소산이다. 심미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응시하면서 만들어낸 자연미에 필적하는 인위적인 아름다움은 때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그는 오랜 동안 ‘박꽃’을 소재로 한 일련의 연작을 계속해오고 있다. 초기에는 박꽃의 형태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형식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형태가 단순화되거나 간결하게 압축되면서 사실적인 공간을 이탈하게 된다. 그 시기부터 박꽃이라는 소재는 심상으로 변환하게 되고, 시적인 농축을 통해 주관성이 강한 비구상적인 이미지가 화면을 장악하게 된다. 물론 형태가 해체되거나 파기되고 재해석되는 가운데서도 작품을 주도하는 정서는 여전히 박꽃이다. 작품을 전반을 지배하는 시각적인 이미지로서의 박꽃은 시적인 함축이라는 일관된 정서를 유지한다.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이미지의 하나로 자리하는 달은 박꽃의 정서를 공유한다. 둥근 형태의 보름달은 기묘하게도 초가지붕 위에 두둥실 떠있는 듯싶은 잘 익은 박을 연상시킨다. 어쩌면 박꽃을 소재로 하면서도 정작 박의 형태는 보이지 않는 것은 달이 박의 이미지와 겹쳐지기 때문인지 모른다. 만일 달과 박을 분리시켜 이미지화한다면 두 개의 둥근 이미지가 공존하는 형국이 되는데, 그럴 경우 유사한 두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상충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달의 이미지는 박의 이미지를 대체하거나 공유할 수 있음을 착안, 둥근 이미지는 하나로 요약된다. 여기에서 달과 박을 공유하는 둥근 이미지는 그가 찾아낸 오묘한 조형적인 마술이다.

 

 

아무튼 이번 전시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오랜 동안 박꽃이라는 하나의 소재에 천착하면서도 소재주의의 함정에 빠지기는커녕 매번 자기진화를 거듭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자기복제를 당연시하는 현대회화의 시각에서 볼 때 그의 경우는 번다하다고 할 정도로 작품마다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부여한다. 작품마다 정해진 몇 개의 이미지, 즉 달과 박꽃과 이파리와 줄기 따위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나타나지만 그 조합과 구성 그리고 색채를 달리함으로써 결코 지루하지 않다. 더구나 이들 이미지는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그의 작업은 형태해석으로 보아서는 반추상 또는 비구상에 속한다. 형태가 있으나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을뿐더러 비현실적인 공간처리방식을 따르기에 그렇다. 일단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구가할 수 있는 조형공간이 열려있다. 즉 자기복제의 함정에 빠질 이유가 없는 셈이다. 다만 하나의 소재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함으로써 무한한 조형의 변주가 가능할 따름이다. 이러한 조형의 전개방식은 개별적인 형식미를 수립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의 경우 작품마다 화판의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 즉, 변형 사이즈를 선호하는 경향인데, 이는 작품의 내용이나 이미지와 관련이 있다. 가령 박꽃을 횡렬로 배치하는 작품에서는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기다란 화판을 사용한다. 그리고 달과 박꽃 한 줄기만으로 구성하는 작품에서는 세로로 긴 화판을 이용하는 식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소재의 배치 및 구성에 따라 최적의 화판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화판의 크기를 달리 하는 것은 화판이라는 평면 공간 역시 조형과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간파한 결과이리라. 이 또한 간과하기 쉬운 조형의 묘미인 것이다.

박꽃이라는 동일 소재임에도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매번 새로운 작품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조형의 변주 때문이다. 몇 개의 이미지만으로도 이리저리 조합하고 배열하면서 구성의 아름다움을 모색하면 끝이 없다. 그의 조형언어는 결코 화려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싱겁지도 않다. 구체적인 묘사를 지양하면서도 소재의 이미지를 드러내는데 인색하지 않다. 형태가 지극히 단순화되거나 구성이 자유로워 박꽃의 이미지를 연상하기 어려운 경우도 없지 않다. 이로써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작품세계는 조형의 변주를 방법론으로 하여 형태의 변형 및 왜곡 그리고 색채이미지 및 구성을 통해 부단히 시각적인 변화를 모색한다. 작품마다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조형어법에 기인한다.

 

 

분채를 재료로 하는 채색화인데도 전통적인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서구의 현대미학을 적극 수용한다. 소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전통회화의 타성에 빠지지 않고 부단히 자기진화를 거듭할 수 있었던 것도 조형적인 변주라는 서구미학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채나 아크릴을 매개로 하는 작품형식과 동질의 미학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재료적인 차이는 시각적인 이미지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적인 가치, 즉 정신적인 영역을 확연히 분리시키는 까닭이다. 즉 그의 채색화가 추구하는 조형공간에는 동양사상에 기반을 둔 심층적인 의식의 층이 자리한다. 그 의식의 층은 작품의 공간적인 깊이, 즉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심도와 관련이 있는데, 유채물감으로는 도달하기 쉽지 않은 표현이다. 물감의 물리적인 차이에 기인하는 심도의 문제는 그의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시각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서구재료로는 쉽사리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색조에 의해 형성되는 공간적인 깊이는 다름 아닌 채색재료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운 분말에다 물과 아교를 섞어 반복해서 칠하는 채색기법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오한 표정을 만들어낸다. 2차색, 3차색으로 갈수록 심도의 변화는 점차 깊어진다. 즉 다색혼합일수록 심도는 깊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색채혼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가령 박꽃을 색채이미지로 형용할 경우에도 흰색의 박꽃이 평면적으로 보이는 일은 없다. 물감이 한지에 스며들며 일체가 됨으로써 심원한 정신의 공간이 열리는 까닭이다. 빛의 변화는 물론이려니와 기온 및 습도의 차이, 심지어는 공기의 기온차이에 의해서도 박꽃의 색깔이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작품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아주 간결한 작품의 경우에도 표정은 변화무쌍하다. 미묘한 색조의 변화가 풍부한 시각적인 인상을 만들어내는 까닭이다. 설령 푸른색과 흰색 두 가지 색채를 중심으로 하는 아주 간결한 색채이미지를 보여주는 작품의 경우에도 결코 단색조로 일관하지 않는다. 설사 단색조라고 할지라도 색채의 번짐이나 누적과 같은 표현기법에 따른 농담 및 심도의 변화가 무수하다. 서구회화의 단색화, 즉 평면성이 강한 색채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공간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그의 작품은 신비주의를 지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적인 상을 비구상 또는 반추상으로 변환하는 데는 심상이 작용하는 바, 그 심상의 공간에서 현실과 비현실이 융화된다. 더구나 심상은 명민한 문학적인 감수성으로 낭만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를 꿈꾸게 된다. 달을 매개로 하여 우주라는 무한공간으로 시야를 확장하는 것도 신비주의와 상통하는 것이다. 어쩌면 달의 이미지는 우주라는 드넓은 신비의 세계로 나가는 전진기지인지인지 모른다. 이렇듯이 그의 조형적인 상상력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이탈하는 달콤한 꿈과 낭만을 제공한다.

특히 소재를 에워싸는 배면에 열리는 심도는 이미 현실공간을 초월한다. 이는 현실공간으로부터 우주를 관통하고 관망하는 동양적인 사유의 세계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즉, 박꽃이 존재하는 대기는 지구에 국한하지 않는, 우주로의 확장을 모의한다. 우주로의 공간적인 확장에는 필연적으로 사유가 동반하기 마련이다. 마치 우주선처럼 또는 UFO처럼 우주라는 무한공간을 유영하면서 작품 속에 그러한 정황을 침투시킨다. 단순한 시각적인 이미지로서의 추상적인 공간이 아니라, 영적인 감화를 전제로 하는 무한공간을 상정하는 것이다. 사유의 형태로 우주를 끌어들이는 셈이다. 심도 깊은 공간표현은 바로 이와 같은 일련의 정신적인 작용을 수반하는 것이다.

 

<"월간미술" 2010년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느낌이 좋은그림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