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펜보이 2010. 9. 5. 17:22

 

박필현 작 

 

 

예술성과 창의성

 

신항섭(미술평론가)

 

 

미술이라는 용어는 시각예술 및 조형예술에 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눈, 즉 시각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시각예술이요, 형태를 만드는 것은 조형예술이다. 다시 말해 종이나 캔버스에 형태를 묘사하는 회화와 흙이나 나무 돌 따위로 형태를 만드는 조각은 시각예술이자 조형예술이다. 이 두 가지 형태의 미술을 전통미술이라고 한다. 인간의 역사와 거의 때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리거나 만든다는 행위의 결과물로서의 회화 및 조각은 인간의 표현 욕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신 또는 감정의 활동이 왕성한 인간은 어떤 연유에서건 그리거나 만드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밖으로 드러내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 말이나 행동 이외의 방법으로 생각이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려는 욕구는 본능적인지 모른다. 미술이라는 표현양식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인간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내재된 욕망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해왔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동굴벽화나 흙으로 만든 인물상 등 원시미술에서 볼 수 있듯이 무엇을 그리거나 만드는 행위는 인간으로서의 존재확인이자 자기표현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도구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거나 흙이나 나무 돌 동물 뼈 등의 재료를 이용해 인물 또는 동물의 형태를 만드는 행위는 사고 및 감정을 간접적인 방법으로 드러내는 인간만의 고등한 기술이다.

이렇듯이 인간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본능적인 표현 욕구를 해소하는 것은 물론, 양식화한 것이 미술이고 예술이다. 원시미술은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일종의 기원 및 주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내면의 욕구를 손이나 도구를 이용해 표현하는 방법을 강구해 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로부터 시작된 그리기나 만들기는 점차 그 형태적인 아름다움을 강구하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무엇을 만드는 행위가 반복되면서 그 형태적인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처럼 심미에 대한 감각이 갖추어지는 단계에서 예술의 싹이 트게 된 것이다. 단순한 실용성, 즉 기원이나 주술적인 측면에 한정했다면 그 형태미에 대한 다양한 모색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거나 만드는 행위의 과정에서 인간은 점차 형태적인 아름다움에 관한 감각, 즉 미적 감각을 터득하게 된다. 초기에는 대체로 단순하게 묘사하거나 만들었으나, 점차 심미적인 감각을 지니게 되면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다. 또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형태감각을 익힌 이후에는 거꾸로 단순화하는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부호나 도상과 같은 형태로 압축되기에 이르고 마침내 추상적인 미의 세계와 조우하게 된다.

이처럼 형태의 단순화에는 사실적인 형태의 압축에 그치지 않는 보다 세련된 미적 감각이 요구된다. 사실적인 형태에서 세부를 생략하거나 왜곡하는 방법은 미추를 분별할 수 있는 심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기이한 형태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집트 미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물은 물론이려니와 다양한 동물의 형상은 극도로 단순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준다. 이집트 장인(예술가)들은 형태를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조형적인 규칙성을 강구해냈던 것이다. 이 조형적인 규칙성이야말로 표현형식 및 표현양식을 위한 기본적인 약속이다.

이렇게 해서 이집트 고유의 미술양식이 성립될 수 있었다. 이런 예는 세계 곳곳의 고대문명의 흔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술이라는 용어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인간은 지적인 사고력과 풍부한 감정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부단히 강구해왔음을 알 수 있는 예이다. 인간의 미적 활동은 과학의 발달과는 상관없이 독자적인 방법으로 그 표현영역을 확장해왔다. 그림과 조각 이외에도 언어나 신체를 이용해 내면을 드러내는 한편 아름다움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탐색해온 것이다. 문학을 비롯해 노래와 연극, 글씨쓰기 그리고 춤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다가 과학의 발달과 함께 사진과 영화 그리고 건축 등 새로운 표현방법이 등장하게 됨으로써 미적인 표현영역은 크게 확장된다.

 

                             엄의숙 작

 

그러기에 예술에 대한 관심은 의식주 문제 이외에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인간은 타고날 때부터 예술적인 동물인지도 모른다. 인간 삶과 관련된 모든 조형은 미적인 문제와 결부되고 있는 까닭이다. 잠자리로서의 집, 즉 주생활에 필요한 공간을 만드는 데도 단순한 실용성만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보기 좋은, 즉 아름다움에 대한 문제가 함께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예술역사 가운데 20세기야말로 가장 눈부신 창조적인 역량을 보여준 시대였다. 적어도 미술 또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수많은 새로운 형태의 창작활동을 통해 인간의 창조적이 역량은 극에 이르렀다고도 할 수 있다. 실험적이라는 미명 아래 다양하고 다채로운 새로운 표현형식 및 표현양식을 쏟아냈다. 도대체 어디까지 미술이고 예술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형태의 현대미술은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러고 보면 20세기 미술 및 예술의 역사는 오직 창의적인 시대였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른다.

미술 또는 예술에서 창의적인 능력은 예술적인 가치와 함께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미술 또는 예술은 창의성에 의한 창조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미술을 끊임없이 제안하고 또 그를 수용해온 20세기는 인간의 미적인 상상력이야말로 그 바닥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적어도 20세기 미술활동에 관한한 금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그를 이용하는 새로운 재료 및 표현방법은 더욱 혼란을 부추겼다. 전통미술 옹호자들은 과학이 미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그들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미술의 표현영역의 확장이라는 논리로 정당화되고 말았다. 예술과 비예술을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만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전통적인 방식과는 완연히 다른 20세기 현대미술은 창의성을 가장 큰 무기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전대미문의 새로운 표현이야말로 창조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예술의 가장 큰 덕목이라는 논리다. 그러기에 전통적인 미학에서 볼 때 전혀 논의의 대상조차 될 수 없었던 과학이 미술이 되고 예술이 될 수 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의성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이는 논리의 비약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옹호하는 쪽으로의 결판을 유도했다.

이로 인해 숭고미나 순수미를 중시해온 서구의 전통미학은 더 이상 기득권을 누릴 수 없게 됐다. 절대적인 가치로 군림해온 전통미학은 시류에 밀려나고만 것이다. 20세기 미술은 현대미학이 장악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온갖 새로운 형태의 실험미술이 등장한다. 오직 과학기술일 뿐이거나 레디메이드처럼 미술과 전혀 상관없던 일들조차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됐다. 현대미학은 그 정확한 얼굴이 없다. 현대미학은 흡사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논리로 무장한 채 기발한 아이디어를 매개로 하는 실험미술을 적극 옹호한다. 그리하여 현대미술은 무한증식의 세포분열처럼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20세기 현대미술은 창의성, 즉 아이디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추상미술의 등장은 현대미학의 가장 큰 공적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집착해온 구상미술에 대응하는 추상미술은 인간의 내면을 표출하는 형태로 그 존재가치를 입증한다. 인간의 의식 또는 무의식 및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데 형상에 의지하는 것은 맞지 않다. 따라서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추상적인 언어가 필요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인지 모른다. 이는 눈에 보이는 현상계에만 한정해온 전통 미술에서 볼 때 가히 혁명적인 변화였다. 추상세계의 등장은 그 자체로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 이후 다양한 현대미술이 등장하는 직접적인 동기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실제로 추상미술을 통해 기존의 구상미술도 전통에서 한 걸음 벗어나 보다 다양한 얼굴로 변신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한다. 다시 말해 재현형식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기술만이 아름다움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실증한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전통미술은 추상미술에 주도권을 넘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추상적인 조형공간의 등장으로 오히려 그 표현영역을 더욱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전통적인 미적 가치를 추구해온 구상미술이 보다 다양한 얼굴로 변신을 모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형태의 변형 및 왜곡 또는 단순화하거나 생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구상미술은 추상미술에 자극받았다고 할 수 있기에 그렇다. 형태를 변형하거나 왜곡하는 일련의 새로운 형태 해석을 통해 구상미술은 오랜 정체상태를 벗어나 보다 광활한 조형세계를 거닐게 된다. 어쩌면 구상미술이 오늘까지도 고유의 존재성을 과시할 수 있는 것은 추상미술의 등장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이환권 작 (입체작업)

 

미술에서 창의성은 예술성과 함께 중요한 미적 가치의 하나이다. 창작의 윤리성은 부단히 새로운 조형세계를 추구하는데 있다. 새로운 조형적인 모색 및 해석에 대한 욕구야말로 창작의 윤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부단히 자기변신을 획책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창작이라고 할 수 있기에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창의성은 미술 또는 예술의 가장 중요한 가치의 하나인 셈이다.

현대미술은 창의성을 부추긴다. 현대미술에서 창의성은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용어로 받아들여진다. 무언가 기발한 발상 그 자체가 현대미술의 동력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표현기법은 물론이려니와 새로운 재료 및 표현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현대미술이다. 동일한 기법 및 재료를 쓰더라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 즉 표현방법의 문제가 중요시되기도 했다. 아무튼 무언가 남과 다른 별난 방식을 포함하여, 미술의 재료로는 전혀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공업생산품을 이용하는 것도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단지 창의적이냐, 즉 새로우냐의 문제만이 관심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현대미술은 이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표현영역을 무한히 확장해왔다. 그런데 한 가지 현대미술이 간과한 점은 예술성, 즉 미적 가치를 등한시해왔다는 사실이다. 창의성만을 부추기다보니 미적인 가치, 즉 기술적인 세련미와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애써 외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지 새로움만이 관심의 대상이었기에 손의 기능 또는 기술적인 완성도에서 비롯되는 세련미라든가, 조형적인 아름다움은 부차적이었다. 아니, 아름다움에 대한 문제는 고려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었다.

미술은 궁극적으로 개별적인 조형성과 예술적인 가치로 평가된다. 물론 현대미술에서 예술적인 가치는 고려의 대상이 아닌 경우도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미적인 감각이 고려되지 않은 미술은 감동이 약하기 마련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의한 놀라움은 있을지언정 심미적인 가치는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형은 아름다움에 관한 문제, 즉 미와 추를 분별할 수 있는 미적 감각의 소산이다. 미술이나 예술은 실용적인 목적에 의해 존재하기보다는 추상적인 가치로서의 고상한 정신 및 고양된 감정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아름다움이 전제되지 않는, 또는 아름다움을 간과하는 미술은 그를 통해 느끼는 미적 흥취 즉 미적 감동을 제공할 수 없다.

 

                                   노주환 작 (입체작업) 

 

그렇다면 조형 작품에서 말하는 미적 가치, 즉 예술성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일단 서구의 전통적인 미학의 기준으로 보자면 기술적인 완성도와 조형적인 규칙성, 그리고 지적인 이해 및 감각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요건을 갖춤으로써 심미안을 충족시킬 수 있는 조형미를 산출해낼 수 있게 된다. 물론 심미안을 충족시킬 수 있는 조형미는 조형적인 요소 가운데 균제, 비례, 조화,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평가되는 것이다. 이러한 요건을 갖춤으로써 미적 감흥, 즉 감동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미술에서 말하는 기술은 숙련된 손의 기능을 뜻한다.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형태를 만드는, 즉 조형에 필요한 일정한 기술적인 완성도에 이르게 된다. 기능적인 완성도가 높아지면 세련미가 깃들이게 되는데, 세련미야말로 미적인 가치, 즉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조형미의 하나이다. 이와 함께 조형적인 규칙성은 표현양식이나 형식미라고 할 수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또는 시대에 부응하는 표현양식이나 개별적인 형식미 또한 미적 가치의 평가기준이 될 수 있다. 이는 창의성과 결부된 문제로서 예술적인 작품으로서의 독창성, 즉 개별적인 형식미는 미적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하나의 기준이 된다.

이와 더불어 미술이나 예술 전반에 요구되는 또 하나의 미적 가치의 하나는 지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고상함이다. 고상한 아름다움이 깃들인 미술은 정신 및 감정을 고양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정신 및 감정의 정화작용을 유도하는 것이다. 작가의 영혼과 뛰어난 신체적인 기술이 담긴 아름다운 미술품을 감상하면서 지적인 희열과 더불어 감정의 포만감을 맛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심미적인 안목에 의해 걸러진 미적인 요소가 응축된 작품은 그 자체에서 예술적인 가치로서의 빛을 발하는 까닭이다.

현대미술은 엉뚱하고 기발한 발상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여운은 약하다. 감동적인 요소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중시해온 예술적인 가치를 외면한 채 창의성만을 강조해온 것은 현대미술 자체의 생존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창의성을 통해 자기 존재를 과시해온 현대미술의 전략은 맞아떨어진 셈이다. 수많은 비판적인 시각에도 굴하지 않고, 어쨌든지 미술관에 진입하고 미술사를 장식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서울아트코리아 2010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