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길

펜보이 2010. 9. 24. 16:01

 

 

 

조안 자세르의 도예 작품

 

인위성과 자연성의 교배로 얻은 흙의 아름다움

 

신항섭(미술평론가)

 

현대 도예는 실용성보다는 예술성을 중시하는 경향이다. 다시 말해 생활용기로서의 기능성을 중시해온 전통적인 도예와는 달리 예술적인 가치에 치중한다. 이는 기계적인 설비에 의한 대량생산체제를 갖춘 현대 도자산업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환경변화로 인해 현대 도예는 자연스럽게 창의성을 요구하는 예술적인 가치에 시선을 돌리게 된 셈이다. 현대 도예는 조각에 대한 욕망을 증진시킴으로써 소조의 영역을 뛰어넘는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꿈꾸고 있고, 이미 적지 않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조안 자세르(Joan Llacer-스페인)의 작업은 도예와 조각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생활용기로서의 그릇에 대한 형태 감각을 견지하는 가운데 조각의 영역을 탐색하기에 그렇다. 그의 작업에서는 어떤 형태든지 도예의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윤리성에 충실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인다. 때로는 그릇으로서의 용도를 잊은 듯, 조형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꿈을 부추기기도 한다. 설령 그런 꿈과 욕망이 강할지라도 작품을 지배하는 조형적인 골격은 그릇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무엇을 담는 용도로서의 그릇에는 생활용기로서의 고유한 형태가 있다. 둥근 모양의 접시나 사발, 항아리, 병 따위의 기물은 인류의 식생활과 관련해 가장 만들기 쉽고 사용이 간편할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형태를 가지고 있다. 둥근 모양의 생활기물이 수 천 년 동안 같은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인류가 이미 오래 전에 조형적인 최대공약수를 찾아냈다는 뜻이다. 최대공약수란 실용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수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가 전통적인 그릇 형태를 벗어나지 않는 것도 그 형태미에서 더 이상 가감할 것이 없다는 인식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실용성으로서의 그릇에는 그 이상 더 새로운 조형적인 해석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일 수 있다. 따라서 그릇의 기본적인 형태를 바탕으로 그 위에 그 자신의 조형적인 감각을 덧붙이는 것으로써 충분하다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접시 모양을 비롯하여 항아리와 병, 냄비와 같은 실용적인 그릇의 형태를 그대로 따르는 그의 작업이 과연 실용적인 가치를 중시하는지는 의문이다. 그릇으로서의 기본적인 형태를 따르되 실제 생활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운 조형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않는 까닭이다.

그의 작업의 경우 완성도 높은 기술이 보여주는 차가운 아름다움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따스한 아름다움이 하나의 특징이다. 순수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에서는 만든다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체취를 남기되 시각적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전혀 눈치 챌 수 없는 자연성만이 감지될 따름이다. 그 자연성은 당연히 그의 손의 감각과 심미안에 의해 유도되는 것이다. 이는 고도의 전략인지 모른다. 자신의 존재를 뒤로 숨긴 채 자연미를 전면에 부각시키겠다는 의도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그릇의 형태를 만든 뒤 부분적으로 파괴하거나 변형하는 등 일련의 독특한 방식에 의한 주관적인 해석을 가미함으로써 그릇과 조각을 교배한 듯싶은 독특한 형상에 도달한다. 그 형태적인 특징은 파괴된 이미지에 있는데, 마치 강력한 내부 폭발에 의해 찢어지고 휘어지는 철판의 특성과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사용하는 재료가 철이 아니라 흙이라는 사실만 다를 뿐, 재료적인 인장력 및 유연성이 철판을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폭발과 같은 상황의 물리적인 힘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형태의 변형은 인위적인 이미지와 다르다. 그러나 그릇의 형태를 만드는 행위는 지극히 인위적이다. 따라서 그릇의 형태에서는 오직 인위적인 행위의 결과만이 인지될 뿐이다. 그는 이러한 그릇의 공식에서 탈피하여 인위성이 개재되지 않은 듯싶은 자연미를 부각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게 된다. 그 결과가 찢어지거나 갈라지고 휘어지는 이미지의 독특한 조형어법을 구현하게 된 것이다.

그의 작업은 원시적인 토기에 가까운 질료적인 특성을 강조한다. 옛 토기는 곡물이나 과일 또는 음식물과 물 따위를 담고 보관하는데 필요한 용도에 적합한 최소한의 형태에 머문다. 옛 토기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적인 결과물로서의 질료적인 특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흙을 반죽해 만든 판을 이어 붙여 그릇의 형태를 만들어 말리거나 불에 굽는 방식으로 제작되는 토기는 기능성을 우선시한다. 따라서 가공의 흔적과 함께 흙이라는 재료의 성질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렇듯이 그의 작업은 토기처럼 순수한 재료적인 특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연성 또는 자연미에 접근하려는지 모른다.

 

 

그릇의 외벽은 마치 벽돌을 쌓아 올린 듯싶은 규칙적인 균열이 인상적이다. 이와 같은 외형은 기능성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예술성에 대한 욕망의 표현이다. 실용성이라는 그림자를 지우고 도예가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조형어법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그러기에 기술적인 완성도 및 기능성과는 다른 시각으로 흙의 순수성 및 자연성에 빠져든다. 한마디로 흙의 원초성, 즉 투박하고 거칠며 힘이 느껴지는 그릇의 형태가 순수 조형에 대한 잠재적인 욕망을 구체화시키는 것이다.

그는 가능한 한 인위성을 덜어냄으로써 자연성이 드러나도록 작업한다. 무엇보다도 기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두터운 기벽은 흙의 거친 질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더구나 갈라지고 휘어지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표정은 가공되지 않는 자연성, 즉 흙의 순수성을 환기시킨다. 그는 여기에서 흙이라는 물질이 가지고 있는 순수성과 생명력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여기에다 시선을 자극하지 않는 채색유약을 입혀 보다 자연스러운 표정을 얻으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이렇듯이 인위성과 자연성이 만나는 접점이야말로 그의 작업이 지향하는 목표이자 핵심이다. 인위성은 그릇의 형태를 만드는 신체적인 기능을 말하고, 자연성은 재료적인 성질, 즉 흙의 생명력을 생생히 드러내는 일을 뜻한다. 흙이 물과 섞여 적당한 인장력을 가지게 될 때 거기에 신체적인 힘과 기능을 가함으로써 나타나는 물성효과, 즉 갈라지고 휘어지는 상황을 통해 전개되는 흙의 변신은 확실히 색다른 경험이다.

그의 작업 가운데 밑이 둥근 볼 형태의 대형작업은 채색유약에 의한 우연성을 주시하고 있다. 서로 다른 성질의 채색유약을 사용하여 소성과정에서 일어나는 색채혼합의 묘미, 즉 요변의 신비를 탐한다. 흙과 유약과 불에 의해 형성되는 요변은 도예만이 표현할 수 있는 신비의 영역이다. 밑이 둥근 볼에 채색유약을 입혀 불에 구웠을 때 오목한 중심부로 유약이 녹아 흘러내리는 상황에서 형성되는 추상적인 색채이미지는 환상적이다. 활화산에서 흘러내리는 용암을 연상케 하는 붉은 색조의 작품과 우주를 연상케 하는 파란 색조의 작품은 인위적인 추상화와는 다른 불의 조화, 즉 요변의 신비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그의 작업은 누구나 흙을 느끼도록 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창작 도예로서의 형태미와 더불어 흙의 순수성 및 생명력, 그리고 아름다움을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 방향은 다양한 현대 도예의 지형, 그 한 축을 형성하는데 기여하리라는 신뢰감을 뒷받침한다.

 

<조안 자세르 초대전은 2010년 9월24일부터 10월4일까지 서울 팔판동 한벽원갤러리(02-732-3777)에서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