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펜보이 2010. 10. 25. 11:42

 

 

 

                             박대조 작

 

현대회화와 사진의 위상

 

신항섭(미술평론가)

 

21세기 과학문명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친화력을 보여주는 예술은 다름 아닌 미디어아트이다. 대중예술을 표방하는 미디어아트는 디지털 기술을 근간으로 한다. 아날로그의 상대적인 개념으로서의 디지털은 고집적도의 전자회로를 통한 시간의 단축과 정보의 압축 및 저장, 그리고 신속한 데이터 처리 기술을 바탕으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실제로 TV를 비롯한 비디오, 캠코더, 컴퓨터, 디지털 카메라, 핸드폰 등 영상과 관련된 전자제품은 우리들의 실생활에 깊이 침투, 그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현대인의 삶은 디지털 기술에 의해 촉발된 대중매체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 된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간에 매스미디어에 광범위하게 노출되어 있다.

현대 미디어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상징하고 집약하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을 디지털 기술이 아니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미디어아트가 컴퓨터 기술을 통해 새로운 전환기기를 맞이하게 된 것도 디지털 기술의 등장에 기인한다. 미디어아트는 이제 특정 예술가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고, 그야말로 대중적인 문화현상으로까지 확장되기에 이르렀는데, 여기에는 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가 일상화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기껏해야 기계적인 조작이나 현상 및 인화과정에서 이미지의 변화를 모색하는 정도에 그쳤던 필름방식의 아날로그 사진과는 달리 디지털 사진은 이미지 변화가 무한하다고 할 정도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응용 프로그램의 개발에 따라 디지털 사진의 이미지 변조방법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현대회화에서 디지털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미디어아트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놀라운 이미지의 창작 및 변조는 그 자체가 하나의 표현적인 기술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미디어아트는 새로운 표현을 중시하는 현대미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한 디지털 기술의 무한한 잠재력에 기생한다.

컴퓨터 덕분에 사진은 일반 대중에게 아주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컴퓨터 공간에서 쓰이는 디지털 사진은 문자언어의 기능을 대체하면서 우리들의 생활패턴까지 바꾸어 놓고 있다. 디지털 사진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일상생활을 기록하는 보편적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을 만큼 편리하고 실용적인 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대중과의 일상적인 소통을 무기로 삼는 미디어아트가 디지털 기술, 디지털 이미지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디지털 기술을 압축하고 있는 핸드폰과 디지털 카메라는 우리들 생활에 아주 긴요한 필수품이 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디지털 카메라 인구가 어느새 1천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그 위력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디지털 카메라는 피사체를 필름에 담는 아날로그 카메라의 수동 방식과는 완연히 다른 차별화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필름 대신에 메모리카드에 이미지를 저장하였다가 수시로 꺼내 쓰는 디지털 사진은 아날로그 사진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의 디지털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다양한 이미지 편집기능은 전문가를 무색케 만들고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김경렬 작 

 

디지털 사진의 가장 큰 장점은 컴퓨터와의 결합을 통해 왜곡하거나 병합 또는 합성하는 방식 등의 다양한 편집기술로 촬영한 이미지를 보정하거나 재해석할 수 있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디지털 사진기술은 전통적인 사진의 개념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놀라운 기술적인 진보를 가져왔다. 그런데도 디지털 사진은 그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여전히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디지털 사진은 컴퓨터와 더불어 미디어아트 및 미디어산업의 눈부신 발전을 이끌고 있다. 오늘 날 우리들의 일상생활 공간에서 마주치는 이미지들 대다수가 디지털 사진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만큼 디지털 사진은 이미 현대인의 생활과 떼어놓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세상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컴퓨터와의 결합을 통한 사용상의 편리함과 시간의 단축 그리고 다채로운 이미지 해석은 사진을 일상화하는데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컴퓨터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디지털 사진이야말로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인상과 견해 그리고 해석할 수 있는 무한한 창조의 공간일 수 있기에 그렇다. 생생한 현실의 기록이라는 점에서는 문자언어의 기능을 단숨에 대체하고 있다. 지식과 경험 그리고 상상에 의해 조합되는 문자언어의 세계와는 달리 영상언어로서의 사진이 제공하는 이미지는 모든 것인 실제이고 실상이다. 디지털 사진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진전하여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가져오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컴퓨터의 디지털 프로그램이 그런 일을 매개한다.

디지털 사진이 미디어아트와의 문제를 떠나서라도 전통적인 회화와 관련한 새로운 매재로 각광받고 있는 것은 우연은 아니다. 표현영역의 새로움이란 측면에서 볼 때 디지털 사진은 무한한 확장성을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디지털 사진 기술을 이용하면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상상의 세계도 아주 간단히 현실화할 수 있다. 그야말로 꿈의 세계를 순식간에 우리 눈앞에 펼쳐 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디지털 사진이 상상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현대 미술가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디지털 사진은 미술가들에게 보다 자유로운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디지털 기술은 사진을 현대회화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이 오늘처럼 예술적인 측면에서 회화와 동등한 대우를 받았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2000년대 들어와 사진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허물어지고 당당히 순수예술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디지털 사진의 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필름에 담긴 피사체를 인화지에 옮기는 방식의 아날로그 사진에서 불가능했던 이미지 변조는 회화적인 표현에 합당한 기술이다. 이 한 가지 표현기법만으로도 현대 회화는 보다 확장된 조형세계를 관장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사진이 회화적인 표현기법으로 응용되는 사례는 너무도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사진의 이미지를 그대로 캔버스에 옮기는 재현적인 묘사방식이나 사진을 변조하여 그를 캔버스에 옮기는 방식은 초보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프로그램을 이용, 사진을 복제하여 그 위에 이미지를 덧붙이는 방식도 그렇다. 더구나 감광재료에 따라 인화지뿐만 아니라 종이, 한지, 유리, 돌, 철, 플라스틱 등 그 어떤 재료에도 인화가 가능하다. 물론 인화재료의 다변화는 이전에도 가능한 일이었다고 하지만, 회화 영역에서 보다 광범위하게 이용되기에 이른 것은 디지털 카메라가 출현한 이후의 일이다.

현실적으로 오늘의 미술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작업을 수시로 만날 있다. 젊은 작가들의 작업에서는 디지털 이미지가 묘사력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보편화된 표현기법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진을 작품에 직접적으로 이용하거나 응용하고 원용하는 것은 이제 시비의 대상이 아니다. 젊은 작가들은 새로운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그리기, 즉 묘사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다. 이는 각종 정보가 넘치는 전자문명사회의 복잡다단한 삶을 표현하려면 그에 적합한 기법이 필요한데, 디지털 이미지가 그와 같은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평면회화일 경우에도 20-30대의 젊은 작가들은 전통적인 묘사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른 기발한 이미지를 도출해내고 있다. 이는 디지털 이미지에 익숙한 젊은 작가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한마디로 디지털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기에 조형적인 상상력 또한 그에 상응하는 형태로 변화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작업에 따라서는 사진작업인지 묘사작업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일부 작가들의 작업은 디지털 이미지를 감쪽같이 재현(묘사)함으로써 실제 사진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역설적인 리얼리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김상우 작

 

현대회화에서 사진적인 공간과, 회화적인 공간의 경계는 무의미해졌다. 사진이 회화의 영역을 침범하고 회화가 사진의 영역으로 뛰어들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컴퓨터로부터 촉발된 가상세계와 현실세계가 모호한 상황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 사진과 회화의 공간적인 구분은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사실, 즉 리얼리티를 전달하는 수단이 회화든 사진이든 무슨 상관이냐는 시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표현을 중요시하고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한다고 할지라도 예술과 대중매체와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미디어아트가 매스미디어를 이용하고 있을지라도 미적인 해석 또는 예술적인 가치에 대한 문제는 도외시할 수 없는 일이다. 대중적인 이미지를 매개로 할지언정 예술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에 의해 제작되는 미디어아트가 모두 일정한 예술적인 가치를 만족시킨다고는 할 수 없다. 단지 기술적인 문제에만 집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비록 고상함 대신에 대중성, 즉 일상화된 친숙함이 강점일지라도 미술작품에는 미적 감흥을 유발할 수 있는 감동적인 요인이 있어야 한다. 미디어아트라는 포현양식에 대한 놀라움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중적인 미술일수록 예술적인 가치, 즉 미의식 및 미적 감정을 자극하는 감동적인 이미지를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예술작품에서 그런 정서적인 효과를 빼면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현실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주관적인 세계를 전개하는 것은 창의성을 윤리로 하는 현대미술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다시 말해 현실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새로운 미적 체험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사진을 이용하는 미디어아트를 통해 독자적인 조형미와 세계관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진촬영 단계에서 차별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사실, 또는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는 일은 이미 아날로그 사진이 도달한 영역이다. 달리 말해 사진 자체에 자기 자신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주관적인 해석을 담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할지라도 사진은 사진으로서 갖추어야 할 예술적인 가치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 카메라를 다루는 기술적인 문제와 재해석의 문제에 앞서 세상을 바라보는 정확하고 명확한 관점이 제시되어야 한다. 사진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는가, 즉 무엇을 말하려는지 작가의 의도를 선명히 드러내야 한다. 물론 아무런 의미 없는 작업을 하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아무리 주관적인 사상이나 철학 또는 조형적인 특징을 부여했을지라도 감상자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없어서는 곤란하다. 즉, 작가 혼자만의 세계에 머물러서는 소통의 난맥을 초래할 따름이다.

이와 같은 표현의 문제 또는 내용을 담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시각과 더불어 의미전달이 명확해야 한다. 조형적인 개별성과 더불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사진촬영은 실재하는 피사체를 렌즈라는 광학적인 눈으로 담아낸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객관성을 담보로 하는 리얼리티를 최우선으로 한다. 하지만 카메라를 조작하고 피사체를 선택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피사체의 선택에서부터 각도와 구도 그리고 광량 및 톤을 조절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 자신의 의도 및 정서를 반영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촬영과정은 예술가적인 미적 감수성은 물론, 미의식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에게는 세상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지식과 이해 그리고 경험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인문학적인 소양을 포함하여 사회과학적인 시각, 그리고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더불어 문학, 미술, 영화, 연극, 무용 등 주변 예술에 대한 깊은 관심 및 이해를 통해 보다 넓은 시야를 지녀야 한다. 주변 예술이 가지고 있는 조형적인 문법은 물론 표현방식과 관점을 수용하는 한편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유를 통해 사상 및 철학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다 시대적인 상황, 즉 현실에 대한 보다 냉철한 관찰과 이해를 바탕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작품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사진에다 작가가 세상에 대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는 일이다. 사진에다 메시지를 담는 일은 리얼리티를 통한 직접적인 제시라는 방법이 있다. 이는 사진의 보편적인 표현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심오한 사유를 전제로 하는 사상 및 철학을 사진에 담는 일은 간단치 않은 문제이다. 실재하는 현실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는 사진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작가는 은유, 비유, 암시, 상징 또는 풍자와 해학과 같은 간접적인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이러한 표현방법에 대한 고민은 사진만의 문제는 아니라 여타 예술 모두에 해당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현실의 고발이나 기록의 범주에서 벗어나 예술적인 가치로 승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살리는 가운데 정서적인 함양이라는 예술로서의 기능을 망각해서는 결코 좋은 작품을 기대할 수 없다. 자칫 메시지를 강조하거나 지나친 형식주의에 치우친 나머지 예술로서의 본질을 비켜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디어아트가 매스미디어와 유사한 표현방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예술로서의 영역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창의성과 함께 미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디지털 사진은 그 시작이자 본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지털 이미지로 함축되는 현대사진은 이미 현대회화와 한 몸이 되었다. 창의성의 고갈로 정체상태에 있던 현대회화에 사진의 침공은 복음이나 다름없다. 탐욕스러운 현대미학이 요구하는 새로운 표현에 대한 갈증을 지금 이 시간 사진이 거뜬히 해결해주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사진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궤를 같이할 것이다. 디지털 기술에 의탁하는 미디어아트 또한 같은 운명선상에 있다. 물론 현대회화의 미래 또한 같은 맥락이다.

 

<서울아트코리아 2010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