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오는 곳

서베드로 2010. 10. 24. 12:54

추기경의 친구는 누구인가?
[지금여기 데스크-한상봉] "정진석 추기경을 묵상한다"-1

"큰 교회 안에서는 의식변화가 느리므로, 교회의 의식은 일반 신자들에게서나 직무담당자들에게서나 그리스도교적 사랑에 의하여 요청되는 사회비판적, 사회개혁적 과제에 대해여 마땅히 그래야 할 만큼 철저하고 민감하다기엔 아직도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의식화 없이는 적어도 매우 널리 일반화되어 있는, 교회는 현상유지를 옹호하는 보수세력일 뿐이라는 혐의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으리라. 

사회의 기성세력으로 말미암아 너무나 자주 나타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즉 영리한 신학자들과 직무담당자들이 기존현실을 정당화하는데 필요한 이념을 너무나 기꺼이 영리하게 제공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들은 스스로 깨닫고 있든 못하든 간에 그 사회의 특권측에 속해 있으며, 따라서 기존 사회제도들을 거의 본능적으로 아무 반성도 없이 좋은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신학자였던 칼 라너가 1972년에 <교회의 미래상>이라는 책에서 '사회개혁을 위한 교회변화'를 촉구하며 쓴 글이면서, 여전히 지금여기를 사는 한국교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최근에, 그러니까 지난 10월 19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정진석 추기경을 방문해서 의례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정진석 추기경을 방문한 것은 물론 그가 처음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후보시절부터 정진석 추기경을 방문했고, 당선 이후 여당이든 야당이든 고위급에 오르면 관례처럼 정진석 추기경을 방문했다. 특히 한승수 국무총리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등 여당 및 청와대 관련인사들은 수년 동안 수없이 서울대교구청을 들락거렸다. 이것은 곧 추기경이란 자리가 특권층에 속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특권측 끼리 러브콜을 하는 이유는 '서로 잘 봐달라는 눈도장'이라 말할 수 있다. 

지난 9월 1일 명동성당 코스트홀에서 개막된 아시아평신도대회에 참석한 유인촌 장관이 개막식을 마치고 자리에서 퇴장하자, 정진석 추기경은 유인촌 장관이 명동성당 마당에 주차해놓은 승용차에 오르기까지 배웅하며, 환한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가톨릭신자인 유인촌 장관이 명동성당의 최고 개발 이슈인 명동성당 재개발 문제에 도움이 될 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권한 있는 사람들끼리 관계를 돈독히 한다는 점에서 추기경에게도 '정치적'인 태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뒤로 나라가 온통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는 잡겠다는 부동산 경기는 잡지 못하고, 4대강 개발운동을 거세게 벌이고 있는 판국에, 명동성당에도 개발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정진석 추기경이 아시아평신도대회에 참석한 유인촌 장관을 배웅하러 나와서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한상봉 기자)

추기경은 외교관, 행정가, 관리자인가? 그러면..

한국교회는 지난 2009년에 교황청에 보낸 납부금과 교황주일 헌금이 세계에서 9번째로 많은 액수였다고 전한다. 물론 아시아에선 단연 최고수준으로 교황청으로 송금했다. 지난 아시아평신도대회가 아시아주교협의회(FABC)를 통하지 않고 교황청과의 직거래로 개최할 수 있었던 힘 역시 한국교회의 재정능력이 큰 몫을 하였을 것이다. 그때 한국에서 G20을 개최하는 것처럼, 한국, 그것도 서울대교구에서 아시아평신도대회를 열어 "국위를 선양한다"는 말을 부끄럼 없이 토해냈다. 이때에도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은 외교관의 몫을 톡톡히 수행한 셈이다. 

정진석 추기경은 교회 행정가로서, 교회가 개발사업에서 유리한 입지를 얻어내고, 유력한 정치인사들과 교제하며,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 한국교회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교회의 관리자로서 신원의식도 철저하다. 교구내 사제들에 대한 인사권자로서, 나름대로 판단해서 '적재적소'에 사제들을 배치하고, 쓸데 없이 나대는 사제들은 기약없는 안식년으로 신자들과 접촉기회를 차단하고, 자꾸 바깥 일 만드는 사제들은 작은 본당에 파견해 돈줄을 조이는 등 다양한 방식을 구사할 줄 안다. 

냉담자 비율이 전체 신자의 70%를 육박하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일단 질적 성장은 접고 양적 성장으로 신자 늘리기에 부심한다. 오죽하면, 지난 6월 16일 타교구인 인천교구의 정신철 보좌주교 서품식에 가서도 "인천교구가 49년 전에 신자가 23,169명이었는데, 2009년 겨울 통계표에는 437,621명으로 22배가 늘었다."며, 이어서 "9개 성당으로 시작한 인천교구가 50주년을 맞이한 현재 113개 성당으로 확장되었으며, 이 모든 것은 신자들의 덕분"이라는 치하를 아끼지 않았겠는가? 서울대교구에선 1998년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교구장이 되면서 초장부터 '비전2020운동'을 벌였다. 2020년에는 서울교구 신자 비율이 20%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교회가 힘을 얻으려면, 우선 돈과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게 지론인듯 하다. 다른 교구의 경우도 대동소이하게 양적 성장을 향한 사목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난 10월 11일에 개막한 2010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는 본회의 시작에 앞서 연설을 통해 "복음화는 단순한 교리 교육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를 의미한다"며, 참석한 주교들에게 "우리는 단순히 교회의 행정가나 관리자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고 활동하시게 해 드리는 도구"라고 밝혔다. 이어 파딜랴 대주교는 "따라서 우리가 주교로서 하는 모든 행동은 언제나 본질적으로 복음화의 차원을 지니기에 다른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뵙도록 돕는 일과 별개여서는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주교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고 활동하시게 해 드리는 도구'

주교는 교회의 행정가나 관리자가 아니라는 교황대사 파딜랴 대주교의 말은 한국교회의 주교들과 특히 정진석 추기경에게 와닿는 울림이 있어야 한다. 그가 말하는 요지는 "주교란 자고로 그리스도가 현존하고 활동하도록 돕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들을 귀가 있는 직무담당자가 얼마나 되었을지 걱정이 된다. 한국교회가 제2차바티칸공의회의 성과를 손에서 놓은 지 꽤 오래 되었지만, 그래도 공의회를 소집했던 요한 23세 교황의 전언을 알아듣고 수행하는 고위성직자들이 남아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요한 23세 교황은 즉위식 강론에서 "교황이 국가수반이자 외교관, 학자이자 조직가이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실망하게 될 것"이라면서, 자신은 그저 "착한 목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안젤로 론칼리 대주교는 교황이 되면서 '요한'이라 이름을 지었다. 그는 사도 요한처럼 '사랑받는 이'가 되고 싶었으며, 세례자 요한처럼 '예언자의 사명'을 이루길 갈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목자들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고 활동하시게 해 드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예수가 만났던 이들을 만나는 것이다. 요한 23세 교황은 숱한 각 사절들과 교제하면서도 항시 가난한 이들을 잊지 않았다. 그는 베네치아 교구장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준비된 원고도 없이 거리에서 본당에서 병원에서 교도소에서 즉석 강론을 하였고, 이전 교황들처럼 교황청에 갇혀 지내지 않고 성탄절엔 로마의 밤비노 예수아동병원을 찾아가 아이들을 만났다. 다음날엔 레지나 첼리 감옥으로 죄수들을 찾아가 교황모를 벗어들고 "여러분들이 내게 올 수 없어서 내가 여러분에게 왔습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분은 예수가 만났던 갈릴래아의 어부들, 여인들처럼 무력한 이들의 손을 먼저 잡아주었던 것이다.

   
▲ 정진석 추기경이 명동성당 주교좌에 않아 있다.(사진/한상봉 기자)

추기경은 누구의 친구인가?

결국 사목자는 '자신이 누구의 친구인지' 늘 묻고 답해야 한다. 1970년-80년대까지 김수환 추기경은 집무실에서 늘 사람들을 맞이했다. 게중엔 정부 고위관리도 있었을 테지만, 예수처럼 하소연할 곳 없는 노동자들과 성모 마리아처럼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민가협, 유가협 어머니들이 자주 찾아왔다. 상계동 빈민촌에서 일하던 손인숙 수녀와 정일우 신부, 제정구 씨가 수시로 사제관을 드나들었다. 김 추기경은 기꺼이 그들의 '벗'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회고담에서 들을 수 있듯이, 1990년대부터는 김수환 추기경 사제관의 문턱이 높아지고, '검열을 거친(?)' 사람들만이 그분을 만날 수 있었고, 결국 추기경은 아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을 차단당한 채 주변을 싸고 있는 홍위병들의 목소리만 들으며 시들어갔다.

결국 불청객을 환대하지 못하는 정신이 교회를 장악하면서, 교회마저 시들어갔다. 교구청 사제관에 교회 안팎의 특권층만 자주 드나들면 교구청은 더욱 더 특권화되고,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던 그 백성들은 들을 귀 없는 교회를 떠나간다. 정진석 추기경의 경우다 마찬가지다. 추기경이 정부 관료들을 만나 아무리 '국민과의 소통'을 권하더라도, 그 말의 진정성을 믿을 도리가 없다. 교구청 자체가 '소통'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선 분명히 말한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고. 그러나 교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지 않는다. 예수처럼 몸으로 아픈 이들을 손 잡아 주지 않는다. 이미 거대해진 서울대교구의 사회복지기관은 자잘한 자발적 시설들을 흡수하면서 몸통을 불리고, 행정절차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시혜를 베풀고 있다. 교회 역시 정부처럼 그들을 동정의 대상이나 관리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이 원하는 것은 '평등한 사랑'이다. 그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목자는 행정가/관리자가 아니라 '착한 목자'다. 

사제들과 소통하지 않는 교구장이라면.. 누구와 소통?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대교구 교구장이라면, 당연히 교구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제들과 교구민들의 사정을 살피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참사 발생하고, 22일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어이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이던 이강서 신부가 아예 용산참사 현장 남일당에서 살면서 문정현 신부 등과 더불어 매일미사를 봉헌하는 동안에, 단 한 차례도 용산 현장을 방문해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지 않았다. 물론 당시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이던 김운회 주교(현 추천교구장)는 이강서 신부 등과 만나 대책을 의논하며 직접 방문해 유족들을 만나기도 하였지만, 정작 해당 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은 적극 참여자였던 이강서 신부 등 빈민사목 담당 사제들과 어떤 이야기라도 나누었는지 의심스럽다. 

그 무심함과 다르게 가좌동성당이 재개발로 철거될 위험에 봉착하자 직접 성당에 찾아가 '철거반대' 입장을 발빠르게 표명한 것과 너무나 다른 태도다. 용산 유족들 가운데 천주교 신자(교구민)가 없었다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 실제로 전국에 있는 수많은 성당에서 신자들이 사제들과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했으며, 미사에 참여했다. 그때 추기경은 어디에 있었는가? 정진석 추기경이 그때 만난 사람들은 서울시 관계자들이었다. 그리고 서울시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서둘러 용산문제를 매듭짓는데 발벗고 나선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지금도 갑갑한 심정이다.

2009년부터 교회 안에서 거센 바람처럼 일어난 것이 한국 천주교회의 4대강 사업 저지운동이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뿐 아니라, 주교단까지 나서서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참여한 그룹이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였다. 애초부터 천주교연대는 수도권의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와 수원교구 공동선실현사제연대, 그리고 의정부교구사제연대의 사제들이 주축이 되었다. 천주교연대에서 실무적 책임을 맡아 온 사람도 서울대교구와 수원교구 실무자였다. 게다가 천주교연대 상임대표는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위원장인 조해붕 신부가 맡고 있다. 

그동안 4대강 문제와 관련해 서울대교구 교구청에서 말을 걸어온 사람은 사무처나 관리국 등이다. 천주교연대는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한때 생명평화미사를 이어오면서 이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지척에 교구 사제들이 농성을 하고 미사를 봉헌하고 있건만, 정작 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은 단 한번도 내다보지 않았다. 이 사제들을 집무실로 불러 의견을 청취하지도 않았다. 외견상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여긴 탓일까? 그런데 간간히 신문보도를 통해 들려오는 추기경의 태도는 나름대로 4대강 사업에 대한 의견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교단에서 성명서를 발표할 때도 주교회의 내내 유독 4대강 사업 반대 성명 채택에 '반대'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교구 사제들이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면, 한번쯤 그들과 더불어 허심탄회하게 그 문제에 대해 논의해 보아야 하지 않았을까? 교구 사제들과도 소통을 하지 못하는 교구장은 도대체 누구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가? 국토해양부 관리들인가? 아니면 새앙쥐가 쥐구멍 들락거리듯 교구청을 드나드는 이명박 정부의 관료들인가?

   
▲ 전주 노송동 성당 신자들이 문정현 신부를 찾아 명동성당을 방문했다.(사진/천정연)

추기경은 왜 문정현 신부와 만나지 않는가?

또한 명동성당에서 74일째 기도를 하고 있는 문정현 신부랑 소통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문정현 신부는 4대강 문제를 둘러싸고 명동성당과 정진석 추기경이 보여준 태도에 대해 가슴 아파하고 있다. 교회가 세상과 가난한 이들, 신음하는 생명들에게 마음을 열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문정현 신부는 71세의 은퇴사제이며, 정진석 추기경은 79세의 현직 서울대교구장이다. 두 분 모두 세상을 살만큼 살았고, 사제생활도 할만큼 하신 분들이다. 그렇다면, 한 사제로서, 한 시대를 걸어가는 교회의 증인으로서  이야기를 나눌 법도 하고, 그게 부담스러우면 같은 공간 안에서 지나는 길에 인사라고 나누어야 제격이 아닌가?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더라도 하느님 안에서 한 백성이 아니던가? 여기서 도대체 사제는 무엇이고, 신앙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러니 주님께서 오죽하면 이런 말까지 하지 않았던가? "네 원수를 사랑하라." 하물며 같은 교우이자 사제끼리, 노인들끼리 나누지 못할 말이 무엇이란 말인가? 교회의 품위나 '국격'까지 입에 담는 서울대교구의 수장이 '사제의 자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사목자란 때로 자신의 위치 때문에 특권층도 만나야 하지만, 비루한 인생도 만나야 한다. 요즘 '2010 인구센서스' 준비하면서 정부에선 "내일 준비하는 대한민국이 당신을 빼놓지 않도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처럼 교구장도 빠짐없이 교구 사제들과 교민,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친구로' 만나야 한다. 의도적으로 만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그들도 역시 본인처럼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돌아보아야 한다.     

<계속>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오늘 부모님과 통하하면서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매일아침 정진석추기경을 위해 기도하신다기에 무슨 지향으로 기도하느냐 물었지요. 추기경으로 머무시는 동안 너무 많이 실수(?)하지 않게 지켜주십사하고 기도하신다네요. 우리아버지 너무 훌륭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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