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글,노래

버돌이 2010. 5. 17. 10:54

 

 

애물단지 오이병

 

 

 

 녀석은 약골이었습니다. 이제 갓 우리 소대에 전입해온 녀

석은 저런 놈이 어떻게 군대에 왔나 싶을 정도로 몸은 약해빠

졌고 정신력도 강해보이지 않았습니다. 녀석은 우리 소대의 애

물단지였습니다.

 

 녀석 때문에 뻔질나게 단체기합을 받아야 했고, 뭘 해도 우

리 소대는 대대에서 늘 꼴찌를 했습니다. 녀석은 워낙 주눅이

들어 있어 일조점호나 일석점호 때 실수하기 일쑤였습니다. 녀

석의 실수는 늘 우리의 단체기합으로 이어졌고. 우리는 모두

녀석을 미워했습니다. 녀석의 이름은 오민철이었습니다.

 

 "어휴, 저놈 부모는 자식이 저 모양인데 어떻게 군대를 보냈

냐. 군대를 빼주든가 하지."

 

 "그러게, 이게 뭐야. 지 고생하고 우리 고생하고."

 

 "야, 저놈 집구석도 변변히 않은 모양이더라. 그나마 군대에

와서 밥이나 먹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소대원들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마음 한구석이 아팠

습니다 그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민철이가 미운 건 어쩔 수

가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내무반에서 오민철 이병을 챙겨주고 돌봐주는 사

람은 김병장이었습니다. 녀석 때문에 다른 소대원들이 불만을

터뜨릴 때도 늘 녀석 편을 들며 감싸주었습니다.

 

 "야, 놔둬라. 자기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이번 무장구보에서도 우리 소대는 분명히 꼴찌일 겁니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 오이병 저놈은 속으로 얼마나 미안

하겠냐."

 

 김병장은 별명이 '교장선생님' 이었습니다. 늘 점잖았고 단

한 번도 후임병들을 괴롭힌 적이 없었습니다. 제대가 얼마 남

지 않았지만 마음이나 행동은 한결같았으며 한마디로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름 전투검열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다른 것들이야 간신

히 넘어갈 수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10킬로미터 무장구보였

습니다. 완전군장을 하고  10킬로미터를 뛰는 일은 튼튼한 우리

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습니다. 녀석은 낙오할 것이 분명했고,

낙오자가 생긴 소대는 심한 기합과 질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

다. 드디어 무장구보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내무반장은 일부러 녀석을 소대 중간에 배치하여 녀석이 지

치기 시작하면 양쪽에서 두 사람이 부축하도록 했습니다.

 

 불과 2킬로미터도 안 뛰었을 때 녀석은 비틀대기 시작했습

니다. 대열에 묻혀 겨우 발은 내딛었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습니다. 녀석의 눈빛은 희미해져 갔고 다리도 거의 풀려서

누군가 살짝 건드리면 당장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옆에서 뛰

는 소대원들이 부축하는 데도 한 계가 있었습니다.

 

 그때 부대 깃발을 들고 대열 밖에서 뛰던 김병장이 녀석의

군장을 벗겨 자기가 둘레메고는 외쳤습니다.

 

 "야, 보폭 줄이고 속도 늦춰"

 

 "군가하고 박자가 안 맞습니다."

 

 "군가도 느리게 부르면 되잖아."

 

 "다 함께 천천히 뛰자. 우리가 오이병에게 맞추는 거야. 미

우나 고우나 우리 소대원이야."

 

 기상천외한 구보가 시작됐습니다. 늘 부르던 것보다 두 배

는 느리게 군가를 불러야 했고, 모두 녀석의 보폭과 속도에 맞

추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소대들도 모두 우리를 앞질러 갔습니

다. 남들이 보기에 우스워보였겠지만 우리는 진지하게 녀석을

흉내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소대가 연병장에 들어섰을 때 먼저 도착해 휴식을 취

하고 있던 병사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보~오~람~찬  하~루~일~을······."

 

 우리가 부르는 군가는 거의 판소리 수준이었고, 우리가 달

리는 모습은 슬로우 모션에 가까웠습니다. 소대가 사열대 앞에

이르렀을 때 연대장과 대대장의 입가에서도 미소가 배어 나왔

습니다.

 

 그날 일과를 끝내는 자리에서 연대장이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낙오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민철

이가 있는 2중대 3소대도 낙오자가 없었다. 너희들이야말로 정

말 진정한 군인이다."

 

 우리는 그날 너무나 소중한 것을 배웠습니다. 내무반에 들

어 왔을 때 우리를 집합시킨 김병장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는 것처럼. 소대원도 선택하

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리 못난 부모도 사랑하는 나의 부모인

것처럼 소대원도 마찬가지다. 오민철이 우리 소대에 있는 한

녀석은 우리의 소대원이다. 돈과 권력으로 군대를 피해간 수많

은 놈보다 오이병이 훨씬 용기 있는 남자다. 너희들에게 꼭 부

탁하고 싶은 게 있다. 내가 제대하더라도 오이병에게 좋은 소

대원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날 이후 녀석은 진정한 우리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우리

의 젊은 날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출처 : 한 달이 행복한 책 (유 린 지음)

 

 

 

 

 
출처 : [우수카페]곧은터 사람들
글쓴이 : PINTREE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