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오데고

치매바지 2011. 10. 17. 18:23


보림재|임종국을 보배로 만드는 서재


한국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이완용’나 ‘을사오적’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또 ‘친일파’ 얘기를 꺼내면 흔히 상징적인 인물로 이완용과 그 연장선상에서 을사오적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즉 ‘친일파=이완용=을사오적’으로 등식화시키면서 이 정도로도 친일파 문제를 전부 짚었다는 듯이 넘겨버리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매국노의 상징인 이완용의 친일행적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또 삼척동자로 다 안다는 ‘을사오적’ 다섯 명의 이름을 제대로 외우고 있는 사람 역시 그리 많지 않다. 이는 우리의 근현대사 교육이 얼마나 표피적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을사오적'들. 왼쪽부터 권중현, 박제순, 이근택, 이완용, 이지용


‘을씨년스럽다’는 말의 기원으로 알려진 을사년(乙巳年)은 1905년을 말한다. 이 해에 일본이 총칼로 위협하며 대한제국과 강제로 맺은 조약이 소위 ‘을사조약’이다. 이 조약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을 골자로 한 것으로, 이로써 당시 정동(貞洞) 일대에 있던 영국·미국·청국·독일·벨기에 등의 경성(서울) 주재 공사관이 모두 철수하였다. 아울러 미국 등에 설치된 대한제국의 재외공사관은 폐쇄되었고, 그곳에 상주하던 한국 외교관들은 모두 귀국해야 했다. ‘을사조약’ 체결로 인해 대한제국이 주권국가로서의 권능을 완전히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외교권 상실’의 결과를 좀 더 실감 있게 설명하려면 1907년의 ‘헤이그밀사사건’을 예로 들면 금세 이해가 간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모든 주권국가들은 참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을사조약 체결로 외교권을 상실한 탓에 한국 앞으로는 ‘입장권’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회의장에 입장할 수 없게 되자 고종은 할 수 없이 정식 외교사절이 아닌 밀사(특사)를 파견했던 것이다. 이처럼 한 국가가 외교권을 상실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그 존재를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을사조약’은 그래서 여느 조약보다도 그 의미가 큰 것이다.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의 승리로 동북아에서 패권을 잡게 된 일본은 마침내 한국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본은 한국을 ‘보호국가’로 만들기 위해 우선 열강들의 ‘묵인’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들 상대로 사전 정지작업에 나섰다. 

먼저 1905년 7월 27일 소위 ‘카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미국의 사전 묵인을 받아낸데 이어 영국과는 1905년 8월 12일 제2차 영일동맹을 체결하여 양해를 받아냈다. 또 9월 5일에는 러시아의 양해를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일제는 마침내 그해 11월 추밀원장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필두로 한국 공략에 나섰다. 

이토 히로부미

11월 9일 서울에 도착한 이토는 그 다음날 고종을 배알하고 “짐이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대사를 특파하오니 대사의 지휘에 따라 조처하소서”라는 내용의 일황 친서를 전달하였는데 이것이 제1차 위협인 셈이다. 15일 재차 고종을 배알한 후 한일협약안을 보였는데 이에 대해 조정에서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자 17일 하야시(林權助) 일본공사가 각부 대신들을 일본공사관으로 불러 승인을 꾀하였으나 오후 3시가 되도록 결론을 얻지 못하자 궁중으로 들어가 어전회의를 열었다. 이날 궁궐 주위와 시내 요소에 무장한 일본군들을 배치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는데 어전회의는 일본측 제안을 거부한다는 데 합의하였다. 

당초 예상했던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이토는 급기야 하세가와(長谷川好道) 일본군사령관을 불러 그와 함께 세 차례에 걸쳐 고종을 알현한 후 강제로 고종으로 하여금 대신들과 숙의하여 원만하게 해결을 보도록 압박하였다. 그래서 이날 고종이 불참한 가운데 어전회의가 열렸는데 다시 여기서도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자 하야시 공사는 이토를 다시 불러왔다. 하세가와 사령관을 대동하고 헌병의 호위를 받으며 궁궐에 나타난 이토는 다시 회의를 열고는 대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찬반을 물었다. 

한편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대신은 참정(총리)대신 한규설,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공상부대신 권중현 등 8인이었다. 이 가운데 조약체결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사람은 한규설과 민영기였으며, 이하영과 권중현은 나중에 찬성하였다. 다른 대신들은 이토의 강압에 못이겨 약간의 수정을 조건으로 찬성하였다. 이날 밤 이토는 조약체결에 찬성하는 대신들과 다시 회의를 열고 자필로 약간의 수정을 한 뒤 위협적인 분위기 속에서 승인을 받았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덕수궁 중명전. 정동 주한 미국대사 관저 바로 앞에 있다


이튿날 18일 덕수궁 내 수옥헌(현 중명전)에서 한국정부의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정부의 특명 전권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 간에 문제의 ‘을사보호조약’이 정식 체결됐다. 이로써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어떠한 국제 조약이나 약속도 체결할 수 없게 되었다. 

또 통감은 언제든지 고종을 만나 정사(政事)에 관여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게 되었다. 5년 뒤 한국은 마침내 국권을 상실하였는데 ‘을사조약’은 그 징검다리였던 셈이다. ‘을사조약’ 체결 8일 뒤인 26일 윤병수(尹秉綬)가 올린 상소에는 조약 체결 당시의 상황이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는데, 그 가운데 이토가 각 대신들에게 조약체결 찬반 여부를 묻는 대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토 : “어전에서 있었던 회의 결과를 듣고자 합니다.” 
한규설(참정대신) : “나는 반대한다고만 말씀드렸습니다.” 
이토 : “무엇 때문에 반대한다고 했는지 설명하시오.” 
한규설 : “설명할 것 없이 다만 반대일 뿐입니다.” 
박제순(외부대신) : “이것은 명령이 아니라 교섭이니 찬성과 반대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외부대신의 책임을 맡고서 외교권이 넘어가는데 어찌 찬성한다고 말하겠습니까.” 
이토 : “이미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폐하의 지시가 있었으니 어찌 명령이 아니겠습니까. 외부대신은 찬성하는 편입니다.” 
민영기(탁지부대신) : “나는 반대입니다.” 
이하영(법부대신) : “지금의 세계정세와 동양의 형편, 그리고 대사가 이번에 온 의도를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외교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귀국이 이처럼 요구하는 것이니 이는 바로 우리나라가 받아들여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지난해에 이루어진 의정서와 협정서가 있는데 또 외교권을 넘기라고 합니까. 우리의 근본에 관계되는 중대한 문제이니 승낙할 수 없습니다.” 
- 이토 : “그렇지만 이미 정세와 형편을 안다고 하니 이것 역시 찬성하는 편입니다.” 
이완용(학부대신) : “나는 조금 전에 (고종황제) 접견 석상에서 여차여차하게 말씀드린 바가 있을 뿐이고 끝내 찬성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이완용은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폐하의 지시가 있었으니 문제의 기본은 이미 조약 찬성이라 여기고 애매모호하게 답변한 것임) 
권중현(농상공부대신) : “나는 접견석상에서 폐하를 면대했을 때 학부대신과 같은 뜻이었습니다. 한 가지 다른 의견이 있다면 황실의 존엄과 안녕에 대한 문구였습니다. 그러나 찬성과 반대의 두 글자 사이에서 충신과 역적이 구별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잘라 말했던 것입니다.” 
- 이토 : “황실의 존엄과 안녕 등에 대한 글자는 더 보태야 할 문구이니, 이도 역시 찬성하는 편입니다.” 
이근택(군부대신) : “나도 접견 석상에서 학부대신과 같은 뜻이었으나 의견을 묻는 마당에서는 농상공부대신과 같은 뜻으로 말했습니다.” 
이지용(내부대신) : “나 역시 학부대신과 같은 뜻이었습니다. 또 내가 지난해 봄에 하야시 공사와 의정서를 체결했는데 이 조약문 중 독립을 공고히 하고 황실을 편안히 하며 영토를 보존한다는 명백한 문구가 있으니 애당초 이 문제에 가부를 물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토 : “각 대신들 의견을 물었더니 논의가 같지는 않지만 실지를 따져보면 반대한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반대한다고 확실히 말한 사람은 참정대신(한규설)과 탁지부대신(민영기)뿐입니다. 주무대신에게 지시를 내려 빨리 조인하기 바랍니다.” 

이토는 대신 8명 가운데 5명이 찬성하였으니 조약 안건은 가결되었다고 선언하고 궁내대신 이재극을 통해 그날 밤 황제의 칙재(勅裁)를 받아오라고 채근했다. 얼마 후 이재극이 돌아와 “조약문 중 보태거나 깎을 것은 법부대신이 일본 대사, 공사와 교섭해서 바르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고종의 지시를 전함으로써 이 건은 일단락되고 말았다. ‘을사조약’ 체결에 대해 고종은 묵시적으로 이를 승인한 셈이다. 

전문과 5개 항의 '을사늑약' 조약 원문


참고로 ‘을사조약’은 전문(前文)과 5개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전문은 ‘일한(日韓) 정부는 두 제국을 결합하는 공동의 이익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한국이 부강해졌다고 인정할 때까지’ 외교권을 박탈한다고 되어 있다. 5개항은 다음과 같다.



- 제1조 : 일본국 정부는 동경의 외무성을 통해 금후 한국의 외국과의 관계 및 사무를 감독 지휘할 것이고, 일본국 외교 대표와 영사는 외국에 있는 한국의 관리와 백성 및 그 이익을 보호할 것이다. 
- 제2조 : 일본국 정부는 한국과 다른 나라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전히 책임지며 한국 정부는 이후부터 일본국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국제적 성격을 띤 어떤 조약이나 약속을 하지 않을 것을 기약한다. 
- 제3조 : 일본 정부는 한국 황제 폐하 아래에 1명의 통감(統監)을 두되, 통감은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기 위해 서울에 주재하면서 한국 황제 폐하를 만나볼 권리를 가진다. 
- 제4조 : 일본 정부과 한국 정부간에 현존하고 있는 조약과 약속은 본 협약 조관에 저촉되지 않는 한 모두 그 효력을 계속하는 것으로 한다. 
- 제5조 : 일본 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유지할 것을 보증한다. 


'을사조약’ 체결 당시 이에 찬동했던 대신은 외부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 등 5명이었다. 역사는 이들을 일컬어 ‘을사5적(乙巳五賊)’이라고 부른다. 조약 체결 5년 뒤인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뒤 이들은 일제로부터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작위와 함께 거액의 은사금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 이완용만 이재명 의사에게 피습돼 고통을 겪었을 뿐 나머지 4인은 일제 때 부귀와 천수를 누렸으며, 사후에는 후손에게 작위와 재산을 물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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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현 저, 책보세 펴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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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찬솔 2011/10/16 13:34  

      주문한 책을 오늘 받았네요. 열심히 읽을 예정입니다. 근데 뼈속 깊이 친미요 친일이라는 분들의 이야기도 나중에 부탁드립니다.

      • 정운현 2011/10/16 14:03 

        변변찮은 책을 구입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신판 친일파'들에 대한 얘기도 짬이 나는대로 준비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손민석 2011/10/16 18:44  

      서점에서 좀 읽었는데 참 재밌더군요..ㅎㅎ언능 살께요..;;ㅎㄷㄷ;;;;사지도 않고 글쓴다고 뭐라 그러지마시길...;ㅠㅠㅠㅠㅠㅠㅠㅠ

      • 정운현 2011/10/16 22:39 

        별말씀을요,
        읽어봐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3. 하모니 2011/10/16 20:15  

      친일파에 대한 궁금점이 있어 질문드립니다.
      친일파가 남한을 다스렸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일제의 잔재가 아직 남한 곳곳에 남아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남한이 해방후 이루어놓은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는 경제적 발전과 
      민주주의의 실현은 친일파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요?

      • 손민석 2011/10/16 21:48 

        어떻게 좀 까고 싶어서 그런 글 남기 신거 같은데...하나씩 답해드리죠 
        1,친일파가 남한을 다스렸다고 생각하는가?
        네.친일파는 남한을 다스렸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가장 대표적인게 독재정권의 잔재죠?

        2.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느냐?
        네,대표적으로 국민이라는 말 자체가 황국신민화라는 용어를 줄인 말입니다.우리가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꾼 것도 그런 잔재를 없애기위해서죠.근데 문제가 국민 말고 쓸만한게 인민밖에 없는데 인민은....정일이네가 독점적(?)으로 쓰잖아요..;뭔가 빠~~~ㄹ개서...또한 조선일보는 대표적으로 일제 시대에 큰 돈을 번 방씨 일가가 민족지였던 조선일보(일제의 탄압으로 경영상에 큰 문제가 생김)를 먹고 친일적 기사를 많이 작성했으나 지금까지도 가장 영향력있는 매체로 유지되고 있고요(동아도 마찬가지...동아일보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동아일보 오보'라는 민족사를 쓰레기통에 처박는 사건을 일으켰죠??)박정희의 3공때 공화당 자금의 대부분이 일본의 기시 노부스케라는 제국주의자(박정희가 나온 만주사관을 만들고 만주국을 만든 대표적 제국주의자이나 미국의 극우 반공세력과 연동한다는 조건으로 1급 전범으로 죽을뻔했다 살아남)와의 거래로 충당됐습니다.증거있냐고요??대표적인 증거로 지하철입니다.박정희 시대에 도입된 모든 지하철은 일본산인데요~얼마나 비싸게 주고 샀냐면요 정가의 3배까지 주고 샀습니다.왜그렇게 비싸게 샀을까요??당연히 리베이트 때문입니다.지하철이야 국민세금으로 사는거지 내돈으로 사는게 아니니까 맘대로 막 산거고요...한국 정치인들...아니 정확하게 박정희의 공화당 사람들은 그 리베이트로 자기 배 채우고 일본 내의 제국주의자들하고(우리 잡아먹으려는 애들이에요*^^*)나눠먹고~누이좋고 매부좋고~도랑치고 가재잡고~ㅎㅎ이게 일본에서도 문제가 됐거든요??왜냐~정치법위반이거든요~그래서 미쓰비시 회장(한국에 지하철 판 기업중 하나가 미쓰비시입니다)은 청문회에 가서 250만 달러를 한국외환은행으로 계좌 이체 했다고 실토합니다. 그 계좌의 주인이 누구냐~김성곤이라는 사람입니다^^김성곤은 공화당 재정위원장이었는데요~?^^자~아시겠죠??또 다른 예도 들어줄까요?88년 서울 올림픽이 원래 개최지는 어디지 아세요??나고야입니다.근데 이걸 왜 서울에서 치뤘느냐!한국의 전두환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일본 내 극우파들이

      • 손미석 2011/10/16 21:58 

        양보해준건데요...ㅎㅎ어떻게 생각하세요??아직도 일제의 자재가 남아있는 정도가 아니고요...우리는 일제의 식민지입니다^^아직도요~말도 안되는 소리라구요~?아니요~^^한나라당이 왜!일본과 군사동맹을 하려고 할까요...??잘 생각해보세요...더 말씀 안드릴께요..ㅎㅎㅎ

        3,만약 그렇다면 남한이 해방후 이루어놓은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는 경제적 발전과 민주주의의 실현은 친일파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있는지...음...이 질문은 두개로 나눠서 하나씩 설명해 드릴께요...우선 경제적 발전!이거는 세계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우리나라가 미국에게 외교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십니까?반공의 교두보??뭐...그건 너무 일차적이고요..^^미국에게 있어서 남한의 의미는 일본을 제어하기 위한 도구입니다^^자~우리 과거로 가봅시다.애치슨 선언이라고 아십니까??1950년에 미국의 장관이었던 애치슨이라는 사람이 정한 선인데요 이거때문에 자신감을 얻은 일성이가 남한으로 쳐들어오는...정말 민족사에 씻을수없는 대죄를 짓죠..(진보신당의 강령!김정일 개객끼!)애치슨 선언은 쉽게 말하면 우리는 남한이 망해도 군사 안보내~(이거때문에 UN군으로 참여하죠?ㅎ)한마디로 이때까지만해도 미국은 한국이란 나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근데...문제가 생겼죠...한국전쟁으로 일본이 경제재건에 성공한겁니다.미국의 입장에서는 이게 문제인게요...52년에 2차세계대전 전후 조약인 센프란시스코 조약이 체결되는데요...53년에 한국전쟁이 끝난단 말이죠??즉,53년 당시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은 아직 적으로 보입니다.근데 일본이 경제 재건에 성공하고 과거 일본제국주의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다시 정부요직에 앉기 시작하죠..미국의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웠죠...왜냐면 미국하고 일본 사이에는 아무런 방벽이 없습니다.일본에서 군대 출진시키면 바로 미 본토 공략도 가능하죠??그럼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일본이 제어못할 정도로 강해지는 것은 싫고...그렇다고 다시 일본과 싸우자니 중국과 소련이 해맑은 미소를 짓겠죠??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이제 한국이 미국에게 큰 의미를 갖게 됩니다^^간단해요!한국민들은 일본에 대해 굉장히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당시 이승만도 친일파 중용한 주제에 일본이 싫다고 그럴정도였으니까요..이 한국을 크게 키우고 한국에 친미정권을 세운다면...?!일본

      • 손민석 2011/10/16 22:07 

        을 제어하기는 쉬워지죠.똑같은 역사적 사례는 미국 장관이었던 슈어드가 알레스카를 샀던 것입니다.슈어드는 알레스카를 삼으로써 캐나다의 영국세력을 효율적으로 견제할 수 있었죠ㅎㅎ그래서 미국은 장면 정부를 굉장히 지지했고 장면정부가 경제 개발을 한다고 했을때 정말 기뻐했었죠(장면을 지지했던 이유는 장면이 제1의 주미대사였기 때문에 철저한 친미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이런 이유때문에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때 정말 싫어했죠..왜냐 미국입장에서는 박정희는 좌익 경력이 있는 잠재적 좌익이었거든요...) 그 뒤에 집권한 박정희는 이러한 미국의 뜻을 받들어서 경제개발에 몰두하죠.이때 박정희의 군사독재에 적극적으로 헌신했던게 한국내의 친일파들입니다^^물론 박정희 본인 자체도 친일 세력의 범주에 들어가지만요...흠..씁쓸??그들의 후계자 전두환은 더욱더 경제개발에 몰두하구요...ㅎㅎ한국의 경제개발은 철저하게 미국의 입장에서 미국을 위해 미국에 의한 경제 개발입니다...북한이 자꾸 미국하고 얘기하려는 이유 혹시 아세요??정일이 생각은 그래요 미국이 도와만 준다면!!!!!!미국이!!!!도와만 주면 경제개발이나 체제유지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거죠...왜냐~?일본과 미국이 밀어줘서 성장하지 않는 나라는 없습니다^^경제는 이렇게 정리하고요~

        다음은 민주화!민주화하고 친일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고요??글쓴거 보면 모르시나...?친일세력과의 투쟁이 곧 민주화였습니다.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몰아내는게 친일파 몰아내기였구요...그 연장선상에서 노무현때 친일파를 마저 쓸어내기위해 친일인명사전을 만든거죠..솔직히 친일파를 쓸어내기위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의 세력이 강해 처벌은 못하지만...그들의 잘못을 알리긴하자!뭐 이런 의도였죠...김영삼이 잘못한건 3당 합당을 통해 민족사를 쓰레기통에 처박은거죠...본인이 대통령되려구...친일파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공산주의를 때려잡겠단 명목이었습니다.그러한 명목으로 DJ는 죽을때까지 빨갱이라는 아니...죽어서도!!!!!!!!!!!!빨갱이라는 그 말도 안되는 이름을 벗지 못하고 있죠...왜??김대중은 자신들의 기득권에 저항하니까요...흠...아 뭐 쓸게 많아서 주저리거렸네요...정독하세요~^^얼치기 사학도의 잡소리였어요~

      • 손민석 2011/10/16 22:13 

        아 혹시!!출전이 궁금하실까봐 적습니다.
        권력변환 1883~2000,김대중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김대중 자서전,김대중 죽이기,김대중 정권 비사,김영삼 회고록,김형욱 회고록,대한민국사,고쳐쓴 근현대사,20세기 우리역사,한국 현대사 산책입니다...더많이쓰고 싶었는데요..ㅜㅠ칸이 작아..ㅠㅜ혹시 더 궁금하신거 있으시면 fpdlakstp@naver.com으로 이메일 보내세요~ㅋㅋ

      • 함종인 2011/10/17 02:50 

        햐~ 하모니님과 같은 역사의식을 가진 분들이 이외로 많음에 놀랍니다....

    4. 정운현 2011/10/16 22:46  

      손민석 님께서 제 대신 장문의 답변을 내놓으셨습니다만,
      혹 답변이 궁금하시면 <친일파는 살아 있다>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 책 속에 님께서 궁금해 하시는 내용에 대해 나름의 답변이 있습니다.

      • 손민석 2011/10/16 22:55 

        헛!빠른 댓글!!ㅎㅎ박정희 실록도 잘읽었습니다^^오마이 뉴스 화이팅!ㅎㅎ근데...오마이 뉴스 기자되려면 어떻게 해야되요??ㅠㅜ얼치기 사학도라..;선배들이 조중동에 오라고 그러는데..ㅡㅡ그에 대한 반발때문에 오마이나 시사인 가고싶다는 생각이...ㅎㅎ

      • 손민석 2011/10/16 23:06 

        그리고..오마이 뉴스 기자되면 오마이 뉴스에 관련되서 나오는 책은...공짜로..지원되나요...??+_ +

      • 정운현 2011/10/17 00:41 

        [민석 님께]

        우선, 댓글로 대화에 참여해주셔서 반갑구요.
        오마이뉴스는 진보를지향하는 열린 매체라고 간단히 소개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자가 되려면 공채를 통해 입사가 가능합니다. 

        참, 저는 한 때 오마이뉴스에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만, 지금은 시민기자 자격입니다. 

    5. 하모니 2011/10/17 10:55  

      와우 답변이 엄청 달리네요.. 글에 대해 까려고 질문하거나 다른 의도가 있는게 아닙니다.
      전 친일파에 대한 역사 인식을 할때마다 큰 모순을 느끼는 부분이 있어서 질문을 드린겁니다.

      다들 친일파가 남한의 지도세력이고 남한에는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대한 제 질문에 손민석 님은 그걸 fact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명히 대답하셨고 정운현 선생님은 동의하신걸로 전 해석이 됩니다.

      정운현 선생님의 분명한 대답을 듣고 싶은데 손민석 님이 대신 답을 달아주셔.. 손민석 님의 댓글에 몇가지 의문점이 있어서 다시 질문 드립니다.

      [질문의 요지를 명확히 확인하기 위한 재질문]대한민국은 해방이후에 세계적 관점으로 봤을때 분명 굉장한 경제발전과 상당수준의 민주주의를 이루었습니다. 망할놈의 친일파가 나라를 다스렸으며 친일파가 아직도 남한권력을 잡고 있고,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해방이후 대한민국 국가 성적표가 우수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중간에 답글다신 손민석 님의 해석에 의문점이 있어서 추가합니다. 손민석님은 미국이 도와줘서 그런거다 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미국과 손잡는 의사결정을 내린 지도자가 현명한 판단을 한건 아닌지요? 또한, 미국이 도와줬다고 해서 나라가 발전하는 건 아닌 사례가 수두룩 합니다. 필리핀이 대표적이고요.. 카리브해의 아이티 같은 나라는 미국인 도와줬다가 나라가 극단적 빈곤 + 독재만 남았습니다... 단순히 미국이 도와줘서 경제발전을 이룬거라는 답

      변은 제 의문을 완벽히 해소시켜주지는 않습니다.

      • 1 2011/10/17 10:04  

        친일파가 득세하고 주름잡고있는건 분명한실이지  

        친일파척결못한 것도 우리업보고

      • 하모니 2011/10/17 10:57 

        아 추가로 손민석님 민주주의 쪽 언급에 대해 의문점이 있는데요..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친일독재세력과의 싸움이라고 하셨는데.. 박정희야 만주군관경력이 있으니 친일파인데, 이승만, 전두환이 친일파 인가요? 친일경력이 있었는지 헷갈려서요.. 혹은 친일경력은 없지만 정치적 친일세력으로 분류하신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친일경력은 없어도 친일세력과 한패(?)가 되면 친일파로 분류해야하는 건지요?

      • 답변1 2011/10/17 11:22 

        답변으로 적절할 겁니다.
        (연구결과들이 일부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반도는 근대세계로의 발전의 능력이 내재되어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정답이고, 친일파 또는 일본이 기여했다는 둥, 박정희가 경제성장을 일으켰다는 둥 하는 것들은 모두가 아전인수 끌어다 붙이기 잡설일 뿐입니다.

      • 손민석 2011/10/17 11:51 

        아..그렇군요...ㅎㅎ좀더 깊게 들어가볼까요??우선 첫째로 자본주의의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함과 동시에 박정희식 개발의 이점과 문제점 둘다 동시에 살펴봐야되는데요..또 답글이 길어지겠군요...휴...벌써 한숨이...ㅎㅎ;;;;

        자본주의란 기본적으로 자본을 바탕으로 자본의 증식을 통해 돈을 버는 경제 체제를 말합니다.이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은 일반적으로 경공업의 발전에서 시작해 중공업,후기자본주의 체제(정보화)등의 순으로 발전하는게 일반적입니다. 그게 자본주의 발전역사에 부합하기때문이죠.북한이 저렇게 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북한 공산주의 자체의 모순도 존재하지만 우리 일성이가 참...그래요...이 ㅄ이 경공업을 무시하고 중공업부터 육성했습니다.중공업은 그 생산력에 있어서는 경공업 심지어 정보화라는 후기 자본주의의 생산력까지 능가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일성이는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경제지표상 높은 성장률 달성과 북한이 가진 노동력이라는 자원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그런 정책을 썻다가 망했고요..다시본론으로 돌아와서 남한은 이런 틀에서 볼때 매우 적절하게 정책을 수립했고 그에 따라 실행을 잘했습니다.비록 장면이 그 계획을 세웠지만 실행은 박정희가 했죠.질문자 분께서 질문하신 친일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국가 성적이 우수한 이유가 여기있는 것이지요.박정희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인정할 만한 것은 그가 한국 경제 성장의 첫 단계를 잘수행했다는 것입니다.계획이 중요하냐 실행이 중요하냐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박정희는 장면이 세운 계획을 잘 실천했습니다.한국은 세계 자본주의 발전 역사의 보편적 틀을 잘 따라갔고 그때문에 잘성장한 것입니다.

        근데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한국의 성장이 박정희의 성과물이냐...한국내 우파들은 이런 성과물을 내세워 박정희 개인의 천재성과 탁월한 지도력 덕분이다라고 하는데요..아닙니다.박정희식 경제 발전의 한계성..아니 정확하게는 국가 주도 자본주의의 한계성은 이미 1971년 박정희 치하에서 그 한계성을 드러냅니다.하나씩 살펴볼까요?? 
        1,우선 박정희의 국가주도 자본주의가 가지는 가장큰 문제점은 기업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충격드셨나요??ㅎㅎ;;;이럴수가!!박정희식 독재가 추앙받는 이유가 효율성 때문인데 효율성이 떨어진다고?!무슨 말도 안되는...잠시 흥분하지마시고~왜 효율성이 떨어지느냐.

      • 손민석 2011/10/17 12:05 

        경제학에서 효율성이 극대화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경쟁입니다.그 경쟁 앞에 붙은 단어 2개가 있죠?자유!!그렇습니다.자유경쟁이야 말로 효율성을 가장 극대화시켜주는 요소입니다.헌데 박정희식 자본주의가 효율성을 보장해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정경 유착입니다(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박정희가 집권한 시기는 17년이 넘습니다^^;)그렇다면 정경 유착이 왜 문제가 되느냐?도덕적인 것 때문에??아닙니다!정경 유착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효율적인 자원분배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죠.정경 유착을 통해 기업들은 정부에게 5~6%의 금리로 대출을 받습니다(당시 금리는 30%에 육박한 적도 있습니다)그렇게 싼 금리와 박정희의 철권 통제로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은 기업들은 재투자를 통한 기술 혁신과 경영 혁신보다는 정부에게 제공받은 돈을 시중 은행에 예금해 금리차로 인한 이자차익을 주수입원으로 삼거나(여기서 나온 수익은 정치권으로 넘어가기도 했음) 적은 자본금으로 막대한 공장들을 세우기 시작하죠(몇억으로 몇백억짜릭 공장을 세우기도 했음) 이러한 문제점이 심화되서 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께서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죠.또한 이 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본의 대부분이 일본과 미국의 자본을 빌린 차관 경제라는 것입니다.제가 미국과 일본이 도와주서 성공했다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당시 차관액의 70%가 일본과 미국에서 빌린 돈이었습니다(아프리카나 그런 나라는 이렇게까지 빌려주지않았습니다^^;;아프리카에 미국이 돈을 빌려준 이유는 적은 돈,높은 금리로 그들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기 위함이고 미국이 아프리카에서 필요한 것은 자원이지 우리나라처럼 정치적,군사적 효과가 아니기때문이죠^^;;필리핀도 마찬가지고요~그리고 미국과 손잡는 의사결정을 내린 지도자가 현명한 판단을 한 건 아닌지요?라는 물음에는...일단 한바탕 크게 웃겠습니다^^한국군통수권자가 누구죠??미 합중국 대통령입니다.정확하게는요 이건 빨갱이가 집권해도 미국하고 손잡을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대한민국뿐만 아니고 세계 어느나라도 미국하고 손잡는 것을 싫어하는 나라는 없습니다.정일이나 일성이도 미국하고 손잡고 싶어서 미칠 정도인데요??맨날 미국 제국주의자들!!이라고 날뛰는 쟤들도 미국하고 손잡고 싶어서 난리에요ㅎㅎ그건 지도자가 현명한게 아니고요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죠

      • 손민석 2011/10/17 12:26 

        이해되시죠??ㅎㅎ)이렇듯 차관이 너무 커서 그 이자를 내야되기때문에 한국은 더더욱 수출지향적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고 박정희나 우파가 그렇게 자랑하는 수출 10억불 수출 100억불이 그렇게 일찍 달성될 수 잇던 것이지요..한국기업이 잘해서요??에이~거짓말 하지 맙시다.당시 한국 기업 평균 부채율이 394%가 넘었습니다ㅎㅎ자기 자본율 평균 20%정도 밖에 안되구요...사실은 사실대로 말합시다 우리!아 어째 글이 한국자본주의의 역사를 설명하는게 되고 있네요..ㅎㅎ친일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조금 이해가 가십니까??마저 갑니다!

        자 이제 71년도 대선에서 민심의 이반을 느낀 박정희는 김대중 대통령님의 예언대로 선거자체를 없애버리고 독재로 나아가죠~사람들의 불만을 힘으로 억제하는 것이지요.또한 박정희는 경공업가지고는 경제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느낍니다.여기서 제가 박정희를 인정해주는 일을 결심하죠.중공업을 육성하기로 한겁니다!하지만...안타까운 점은...기존의 경공업을 육성하면서 생긴 잘못된 폐혜(정경유착과 차관의 고다한 도입,수출지향적 경제성장과 수출 대상국 다변화 무시 등등..)를 그대로 가지고 갔다는 것이죠...결국 79년 박정희가 죽기 바로 직전에는 YH무역 사건이 일어날만큼 경제적 상황이 다시 안좋아집니다.왜냐 중복투자 등 뭐 이런거 설명안해도 다 알죠??근현대사 배우셨을 것으로 여기고 패스~!

        종합해서 얘기하자면 한국 자본주의는 미국과 일본의 원조 그리고 적절한 계획이 뒷받침 된 것이죠...그래도 박정희가 경제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 아니냐...아까 말씀드린 그러한 폐혜의 끝이 IMF입니다^^박정희 뒤를 이은 전두환은 제가 정말 싫어하지만...한국자본주의의 중흥을 이끈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우선 대외적 사정이 매우 좋았구요 결정적인 것은 전두환 주위에는 김재익이라는 경제 천재가 있었습니다. 김재익은 순식간에 박정희가 싸지른 똥을 치우고 경제 투명성을 굉장히 높입니다.그 결과 한국 경제는 단군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80년대 경제를 맞게 되죠.하지만 아쉽게도 김재익이 추진하던 개혁은 그 끝을 보지 못하고 아웅산에서 김재익이 죽음으로써 끝나죠...북한은 개객끼죠..ㅡㅡ저는 진보 좌파입니다만(근데 재밌는건 보수쪽에 가면 새끼 빨갱이라하고 진보 쪽에 가면 수구 꼴통이라 하죠..제 정치적 정체성은 뭘까요..ㅋㅋ) 북한이 잘

      • 손민석 2011/10/17 12:39 

        못한 것은 많죠...ㅅㅂ...일성이..에혀..하튼 계속 가서 아 너무 주저리 주저리썻네여..할말이많다보니..이래서 메일로 보내라고 한건데..ㅠㅠ

        여기서 친일파와 한국 경제 성장의 연관성을 찾는다면 박정희는 자신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세력인 친일파(친일파의 정체성은 반공에 있습니다^^)를 앞서 말한 정경 유착을 통해 크게 키워준 것이죠...ㅎㅎ대표적으로 삼성 봅시다~삼성...이건희 아부지인 이병철도 친일파거니와 이건희 마누라인 홍라희(맞나?)도 친일파 후손이죠?^^한국 경제상 가장 큰 세력인 삼성이 친일파 후손...좀 그렇지 않나요??

        흠 답이 됏으려나...혹시 또 질문 있으시면 답글 다세요~요즘 수업이 오후쪽에 있어서 아침에 답달고 갈께요ㅎㅎ

        자 다음 민주주의에 관한 질문을 하셨는데요...흠...아 이놈의 지식...ㅋㅋㅋ제가 정말 좋아하는게 역사,철학,정치.문학이거든요...아 이 끝을 모르는 지식..자뻑 ㅈㅅ..;;;자 냉정하게 봅시다.정치는 개인이 하는 것일까요 조직이 하는 것일까요??흔히들 정치는 프로파간다의 싸움이라고 합니다.어려운 용어 아니죠??쉽게 말하면 상징성의 싸움입니다.음...이번 서울시 선거를 예로 들어볼까요??보수 언론을 보면 박원순이 MB나 오세훈과 친했기 때문에 진보세력을 대표할 수 없다는 논조로 비난을 하던데요...아는 사람들이 왜그러는지 모르겠어요~ㅋㅋㅋ제가 말했죠?정치는 상징성의 싸움이라구요.이번 선거는 보수의 대표라는 한나라당과 진보 혁신의 대표인 박원순이 싸우는 것입니다. 박원순이 오세훈이나 대통령하고 친했건 말건 그건 중요한게 아니죠!박원순이 진보 혁신 세력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성을 가지느냐!이게 핵심입니다.박원순은 그런 측면에서 매우 성공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그러한 비난은 말도 안되는 거구요.마찬가지로 친일 경력이 없어도 친일파와 한패가 되면 친일파로 분류해야되는지요라는 대답에 답하자면 그 사람이 가지는 상징성을 따지면 됩니다.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하지않았다고 반발하실 분이 계시겠지만 저는 친노쪽에 가깝습니다.인정할 것은 인정합시다.서울시 의원 106석중 101석이 한나라당 꺼였습니다.얼마나 인심을 잃었는지 아시겠죠..??)노무현 대통령은 세력의 집권보다는 진보적 인물의 집권에 더큰 방점을 찍으셨습니다.진보세력의 집권보다는 진보적인 인물이

      • 손민석 2011/10/17 13:14 

        집권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신거죠.이것이 정치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은 그저 상징물에 불과합니다.상징물이 본체를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하니 결국 실패한 것이지요...뼈아픕니다만...인정...계속 답하자면 이런 맥락으로 만일 그 사람이 친일파쪽에 있어도 그 세력을 대표할 상징적인 위치가 아니라면 친일파로 생각 안하셔도 됩니다.하지만 그 사람이 친일 세력의 상징물로 나온다면 같은 한패로 보고 반대하는 것이 옳습니다.왜냐면 그 사람이 집권하는게 아니고 그 세력이 집권하는 것이니까요...정의는 누구나 주장할 수 있습니다. 정의는 그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에게 통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정의를 실행 할 수 있는 것은 강한 자뿐입니다.그 실행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세력이구요~투표할때 잘보시길...ㅎㅎㅎ그리고...우리나라서 친일 안한 사람들은 친일 세력쪽으로 안갑니다ㅋㅋ기본적으로..ㅋㅋ

      • 손민석 2011/10/17 13:08 

        근데 정말 옳바른 의문을 제기하시네요..ㅋㅋ생각해보니까...ㅋㅋㅋ저도 지금 공부하고 있지만...제가 중점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정의는 승리하는가...에 대한 역사적 답을 찾으려고 공부하고 있거든요...흠...저도 의문이었습니다.친일파가 한국을 지배한다면 왜 한국은 이렇게 승승장구하는가...옳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농락하는데 왜 경제적 발전을 하는가...뭐 이런 의문이죠...대표적으로 로마제국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난한 자,억압받는 자의 입장에서 보면 로마제국은 멸망해야 마땅할 나라였지만 로마는 2천년이나 갔죠??비잔틴제국까지...글쎄요 어떤 사람들은 거봐라!!옳바르지 못하니까 결국 망했지 않느냐!!했는데요...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2천년이나 갔습니다 자그마치 2천년이나!!!세상 어느 나라가 그렇게 오래갔죠??정의가 살아있다면 몇백년...아니 몇십년 만에 망해야되지않나요...??그쵸?흠...이에 대한 공부를 아직하고 잇어서...ㅎㅎㅎ나중에 책이나 쓸까봐요...ㅎㅎ

    6. 內需谷 2011/10/17 12:12  

      어느 글에서 조선후기의 노론 과 친일파가 연관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요..궁금합니다..

      • 손민석 2011/10/17 12:56 

        어쩌다 제가 일일이 답글을 다는지원..;;ㅎㅎㅎ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사실입니다.음...조선 후기 노론세력중 일부는 일제때부터 협력했으며 상당수는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 독재정권에 협력함으로써 그 세력을 크게 키웠습니다.직접적으로 노론세력=친일파 이 등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만 독재세력에 상당히 많은 기여를 했기 때문에(독재세력중 대부분이 친일 경력자...)친일파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실제로 서울대 가시면요..노론이니 소론이니 남인이니 하는 파가 사학과에 많습니다..ㅋㅋㅋ근데...사실 노론보다는 남인 세력이 훨씬 많이 협력했는데...블로그 주인께서 어떻게 답변하실지 저도 궁금하네요..ㅎㅎㅎㅎ아 그리고...한나라당 당원들이나 사람들 명단 잘 보면요 조선시대 노론 후예가 많습니다ㅎㅎㅎ사극에서 특정 조선 시대,즉 영,정조 시대를 자꾸 부각시키는 이유를 잘생각해보세요...모르면 답다시구요..ㅋㅋ

    7. 오사씨 2011/10/17 12:35  

      망할수 밖에 없는 조선을 일본에 병합하는데 역할을 한 자들을 친일파 들이라고 할때 친일파는 이미 모두 죽어 관속에 들어갔다. 그러나 무덤속의 친일파를 꺼내려는 자들이 있다. 이른바 시상적 홍위병에 의한 역사적 부관참시가 백여년만에 다시 이뤄지는 것이다. 이 친일파 론은 결국 해방후 정국에서 일제 부역세력이라 불리우는 전문가 집단 즉 <학계>와 <기술관료>을 타겟으로 하고 있으며 현재 21세기 정치의 모순을 반민족 세력의 집권 연장으로 분석해 그 정당성을 공격해 무너뜨릴 근거로 삼는다. 최근 발행된 소위 친일 인명사전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부류들의 특징은 한가지 가치로만 모든것을 보며 긍정적 포상보다 부정적 처벌을 강조하고 최선이 아닌 것을 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매국노와 망국노를 구분못하는 것은 오류이며 정치적인 연좌제 처벌을 암시하는 부분도 불순하며 기술관료의 전문지식이 필요했던 당시 상황에 눈을 감는 것도 불공평한 일이다. 태평양 전쟁시 영미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 편견과 차별이 심했다. 일본은 ABCD 포위를 당했고 평화를 위한 노력도 일본이 많이 했지만 무시당했던 것이고 전쟁의 명분도 일본쪽이 강했다. 당연히 태평양 전쟁때 일본을 지지한 것 자체를 민족 반역자의 행위라 무조건 매도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일제의 명분이나 실력은 너무 강하고 우월해서 마지막 까지 변절하지 않는자는 <근본주의적 보수 기독교인><공산주의> 같은 사상적, 종교적 신념을 가진 자들 뿐이었다. 종교적 경지의 높은 신념이 없었다는 이유로 그들을 욕할수 있는가? 왜 갑자기 이런것들이 이슈가 되어 하나의 시리즈와 맥을 이루는 사회운동의 형태로 나오고 있는지? 이런류의 시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자들은 어떤 정치적 배경과 목적을 갖고 있고 누구와 같은 주장을 하는지 좀 넓은 시각으로 볼필요가 있다. 물론 오늘의 시각으로 어제를 판단하면 아쉬움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오늘 조차 비참했던 어제가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잊으면 안된다.

      • 손민석 2011/10/17 12:45 

        조선이 망할 수 밖에 없었다고...??정말 무식의 극치다 극치...혹시 왜 조선후기를 근세라고 하는지는 아세요???아휴...세상을 빨갱이 노 빨갱이로만 보니까 답답해보이실 거에요...힘내요...세상은 굉장히 아름다워요!!^^죽지마요...ㅠㅠ힘내세요...!!세상이 복잡한게 아니구요...님이 단순하신거에요...ㅠㅠ힘내요..좌절하지말고!!

      • 오사씨 2011/10/17 13:54 

        It was inevitable historical process for Choseon to lose the sovereignty. She was not alone as there were so many other colonial countries that lost the nation under contemporary historical context of world domaining imperialism. 
        I do not believe Choeson had capacity to make self industrialization without external impulse. Even if she had some, it would not have been fast enough to allow her to prepare for challenge before any serious needs. 유길준, 김옥균, 안창호 서재필, 윤치호, all of intellectuals and patriots who actually took international trip to see foreign countries (Japan, US, Europe) all agreed and had same idea that Choseon was destined to doom. It's not just what I am saying. It is from the historians's research and historical records. 
        And you call me ignorant? because later era of Choseon is called 'Recent'? Hell, no. Those theories I heard 25 years ago from Prof. 안병직 when I was in college. I am glad that he changed way and give no more crap like that. 
        Majority opinions are there fore reason and I would not buy minority more than necessary. You are like red soldiers who talk a lot. Putting down statement of assertion without any ground. (If you ever understand it) We call it propaganda. If you really want to live in truth, at least try to read some Bible once before preaching to somebody, all right?

      • 손민석 2011/10/17 14:11 

        해석할 줄 알어 ㅅㅂ야ㅋㅋㅋ영어로 쓰면 뭐 달라질룰 아냐 니 논리는 일본애들이 말할 논리야 ㅄ아 왜 우리가 근대화할 능력이 없어?왜 없는데??ㅡㅡ이래서 ㅅㅂ 교육을 받아야 되는거야...역사에서의 분류는 맑스의 분류체계에 따라 원시 공산제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근대 자본제 현대 공산주의 라는 틀에 따라서 해석되는데 일본의 식민 사관에 따르면 한국은 근대가 없기 때문에 일본이 심어줘야한다는게 일본 식민지 근대화론의 요점인데...정말 없을까??한번 따져볼까??아 씨.바..내가 무슨 근현대사 편찬위원도 아니고 이런 쓰레기글에 일일이 답 달아야되??ㅡㅡ진짜...아..

        야 근대라는게 뭔지부터 정리하자 근대가 뭔지 알아야 근대화가 가능한지 아닌지 알잖아??근대라는 것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사회적으로 평등,경제적으로 자본주의,문화적으로 합리주의가 있을때 근대라고 정의한다.그러면 이것을 조선 후기에 갖추고 잇엇는지 따져보면 우리 속에 근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우선 경제적으로 따져보자.

        조선 후기 대동법을 시행함으로써 공인이라는 새로운 사상(상인)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공인들이 하는 행동은 화폐를 주고 물건을 사서 왕실에 납부하는 것인데 이들은 결제 수단으로 화폐만 썻다 왜냐하면 정부에서 이들에게 화폐밖에 안줬으니까 이러한 까닭에 상품화폐경제가 생성되기 시작했고(1608~1708년 사이에) 여기서부터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한다.상품화폐 경제의 등장,성장으로 조선에서는 상인 계급이 성장하기 시작하고 정조시대에는 상인들의 자유로운 상업활동을 위해 통공이라는 것을 한다.통공이 뭔지는 아냐??누가 한게 제일 유명한지는 아냐??체제공이라는 분께서 하신 신해통공이 가장 유명하다 인간아ㅡㅡ아오...열받아..욕나오네...통공은 한마디로 국가주도의 자본 독점 체제를 바꿔 자유로운 유통경제의 성장과 자본주의 체제를 성립시키기 위한 노력이다.이런 노력의 결과물로 조선 시대 후기에는 다양한 자본주의적 요소들이 나오는데 우선 첫째로 장시(시장)이 상설화된다.물론 이때의 시장은 주로 5일장이지만 겹쳐서 열리기 때문에 상설 시설화 되며 전국에서 시장이 열린다.

        또한 당시 중국이였던 청과 일본 사이에서의 중계무역 증대로 인해 청의 통화인 은이 귀해진다.그러자 초기에는 정부주도로 운영되면 광산 채굴이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현재 자본주의 체제와 같이

      • 오사씨 2011/10/17 14:02 

        갑자기 100년만에 친일파를 부관참시 하는 이유가 뭐요? 국가 정체성과 건국의 정당성을 훼손해서 얻으려는 것이 대체 뭔지 말해줄수 있수? 나는 빨갱이냐 아니냐로만 세상을 보진 않지만 어떤 이슈는 분명한 설명이 없으면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단 말이지요.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친일파 후예로 몰아서 계층갈등을 역사적 촉매로 촉발한다. 댁이 70년대에 밥을 먹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70년대 공산화된 어느나라 3류 전략을 보는듯 합니다. 영어 답글은 능력되면 다시고. 답신은 Mirror image로 하는 거니까.

      • 오사씨 2011/10/17 14:06 

        거참 금방 반말에 쌍말이 나오는 구만..제대로 대화 할줄 아는 아이가 읍다. 말투 보니 젊은 친군데 말야. 이봐요. 세상이나 역사를 논하는 것은 좋은데 인터넷에서 기본은 좀 지켜야 할것 아닌가? 남에게 무식하다고 했으니 댓글도 좀 유식하게 달릴 것도 기대해야지? 영어답글과 사과 기다리겠네.

      • 손민석 2011/10/17 14:12 

        사람같은 사람한테만 예의를 지키지 너같은 것들한테 예의 안지켜ㅅㅂ야 알았냐??ㅡㅡ

      • 손민석 2011/10/17 14:12 

        오냐 얘기해주마 내가 쌍욕 안쓰고 좋게 설명해 줄테니까 눈크게뜨고 봐라잉?알았어?

      • 오사씨 2011/10/17 14:22 

        정선배.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어서 되겠습니까?

        손민석 씨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합니다.
        인터넷 댓글치고는 너무 심해.

      • 손민석 2011/10/17 14:22 

        일단 현재의 친일파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활약하고 잇는지 궁금하면 내가 위에 쓴 글을 읽어봐라 그리고 영어 쓴다고 유식한거 아니다^^야 너 내가 여기 한자로 채우면 해석할 수 있어??난 사학도라서 역사책을 한문으로 읽거든??한문으로 채우면 내가 유식해지냐??ㅡㅡ아니지??그건 아니거든~?알았어??그리고 자 왜 100년이 지나서야 친일 문제를 꺼내냐고?

        하나씩 따져보자 눈크게 뜨고 읽어라!첫째,1950년 대한민국이 세워질때 김구와 같은 민족주의 우파 세력들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5.10 선거에 불참한다.5.10선거에는 이승만이 이끄는 독촉과 김성수의 한민당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소속이 의석의 50%가까이를 차지한다.이때 제헌 국회에서 친일민족반역자를 처벌하기 위한 소급 입법을 지정한다.소급입법이 뭔지 모르면 찾아봐.이런 상황에서 이승만은 그의 지지세력이였던 한민당과 결별을 하게 된다.왜그런지 궁금하면 물어봐.이렇게 되자 이승만은 지지세력을 잃어 정치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당시에는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기때문에 국회의원들이 자신을 지지해주지않으면 정치를 운영하기 매우 어려웠음) 이렇게 되자 이승만은 지지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정치적,사회적으로 매장 당할 위기에 처해있었던 친일 세력과 협력한다.이것을 본 무소속 의원들과 국민들은 분노했고 결국 반민특위를 설치해 그들을 몰아내려한다.친일파가 처벌받는게 싫었던 이승만은 반민특위 기한을 1년으로 정해 사실상 그 수많은 수십만의 친일파를 조사하는게 불가능하게 만든다.이런 상황에서 악질 친일 경찰이었던 노덕술이 잡혀가자 경찰들이 무장해 국회를 습격하는 초유의 사태와 함께 국회 내에 빨갱이 세력이 있다며 용공 조작을 해 국회 프락치 사건을 일으킨다. 이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정치적 탄압을 받은 의원 대부분이 반민특위에 있던 사람들이었다.그 뒤로도 계속된 회유와 협박 등으로 반민특위는 유야무야 없어지게 되고...결국 단 한명도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고 친일파는 면죄부를 얻는다.

      • 손민석 2011/10/17 14:26 

        논리로 안되니까 그러냐??ㅋㅋㅋ왜??쫄려??위에 계속 이어서 가보자 

        친일파 청산이 유야무야되서 없어지고 나서 그 누가 친일파를 청산하려했는가??장면 정부때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기도 했지만 장면은 무시하고 경제 개발 계획을 세우는데 올인한다. 그뒤 박정희,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친일 세력은 그 힘을 키우고 유야무야 문민의 정부 김영삼때 까지 그 세력을 유지해온다.김영삼때 일부 역사바로 잡기 운동을 통해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꾸기도 했지만..아직도 친일을 제대로 파헤친 정권은 없다.ㅡㅡ그런데 그들의 잘못을 기록하자는게 무슨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하자는거냐??이게 옳바른거냐???누가 그 사람들의 악행을 기록하기라도 했냐!이게 정상이냐??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는게 정상이냐!그 아픈 역사를 기록하자는게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으며 도대체 뭐가 나쁘다는 거냐!!ㅡㅡ

      • 손민석 2011/10/17 14:31 

        여기에 무슨 냄새가 나는데???난 21살 밖에 안됐고 내가 뭐 가난하게 산 것도 아니야 서초구에서 태어났고 강남에서 초,중,고 다 나오고 세상 즐길만큼 즐겼지만 옳바르지 못한건 옳바르지 못한거잖아 친일파가 분명 있었고 그들의 악행이 아직 알려지지 못했어 그걸 알자는게 그렇게 큰 죄야??역사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은게 그게 그렇게 큰죄냐고 무슨 정치적 목적이 있고 그런거냐??이게??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옳바르지 못한 행위는 기록해서 후대가 깨우쳐야한다는 작은 꿈인데...그 꿈에 왜그렇게 적이 많냐고!!!!!!!!!!!!!!!!!!!!!!!!!!!!!!!

      • 오사씨 2011/10/17 14:37 

        호오, 이제 좀 답변이 나오는군. 
        말투가 좀 싸가지 없었던 것은 용서하지. 
        자네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 옳은 것도 아니야. 
        1. 반민특위 
        좋은 일을 하다가 좌절당했지만 프락치 사건은 조작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간첩과 연루됐던 것은 사실인 것이다. 다만 이승만 계열에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부풀렸던 것 뿐이다. 즉 정도에서 문제가 된 것이지 관련성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 논의가 되는 것은 반민특위의 처벌대상자가 아니다. 그 처벌대상자들은 모두 죽었고 지금은 부관참시 중이란 것이지. 처벌 대상자들은 모두 공식 기록에 있으므로 국민들은 그들의 이름은 언제든 찾을수 있는데 지금 다시 그것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언론을 장식할 이유가 있는가? 그 이유가 있다면 정치적인 것, 즉 그 후예들이 지금 사회 지도자가 됐다는 것인데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공평한 현실에 대한 불만을 만든다. 그러나 부역세력의 자제라고 해서 전무 성공한 것은 아니며 성공한 사람들은 본인들의 능력과 노력에 상당부분 기인한 것이므로 나는 연좌제라 부르는 것이다. 귀하는 이것이 정치적 연좌제로의 회귀가 아니라 생각하는가? 순수한 역사 탐구가 아닌 <친일파 척결>이라는 구호적인 현실정치와 연동성 때문이고 그것이 불순하다는 것이다. 

        2. 반일 부역세력문제 
        반일 부역세력들은 민족이 해방되자 금방 독립운동가에 달라 붙었다. 노덕술의 경우 장택상을 직접 고문하고 신문하던 자였는데 장택상이 경찰국장이 되자 그 밑에서 덜덜떠는 처지였다. 장택상은 그들을 제거할수 있었지만 그렇게 안했고 못한 사정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백범 김구가 귀국해서 경교장에 계실때 그 수석보좌관은 일제때 종로서 고등계 형사였던 것이다. 당시 임정 요인들이나 독립투사는 거의 모두 해외에서 투쟁했었고 국내 기반이 없었으므로 너나할것 없이 실무 정보와 인맥 그리고 자원을 장악한 친일파들을 수용할수 밖에 없었다. 수용하는 과정이 바로 용서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는 점이지.
        비록 그 용서와 수용이 개인적인 차원이었지만 국가차원에서 그들을 모질게 처벌할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미 군정청의 압력으로 친일파가 활개치고 다녔다는 논리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노덕술만 해도 언제 재산을 몰수당하고 죽게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 손민석 2011/10/17 14:48 

        콜!받고~고!
        1,동의~박근혜가 박정희 후손이라고 해서 반대한다??이건 옳지 못한 거다.왜냐 그 연좌제에 가장 많이 당한 세력이 민주세력인데 우리가 당한대로 그대로 상대방에게한다??이건 옳지 못하다.하지만!당신 이 보기에 이것이 정치적 연좌제로 보인다는 것은 이해한다.그런데 우리 생각해보자..아버지가 사람을 마구 죽인 살인마다.그 자식은 그 피해자들이 아직 살아있다??그럼 어떻게 해야될까??아!피해자 분들~비록 제 잘못은 아니지만 저희 아버지께서 여러분께 피해를 준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죄송합니다...이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일까??아~뭐 내가 저지른 죄야??나랑 뭔 상관이야~이렇게 넘어가도 되는 것일까??대한 민국에서 자신의 친일 죄를 사람들에게 고백하고 용서한 사람은 딱 2명밖에 없다 채만식과 최린...최린은 천도교(동학)의 4대 교주로 신간회 결성 이전에 타협적 민족주의로 돌아선 사람인데 반민특위때 진술 당시 '닥쳐라!!모두 닥쳐라!!!왜 니들 잘못을 여기서 변명하느냐!!!모두 그 입 닥쳐라!!!....나는 조선의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민족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지만 친일반민족행위를 했습니다...나의 죄를 용서받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저~광화문 거리에서 나를 총살시켜 내 목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내거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사과하면 우리가 죽일 수있을까??ㅡㅡ최린은 당시 사람들에게 친일행위를 용서받고 울면서 법정을 떠났다.내가 말하는 것의 요점은 그들에게 당해 아직도 비참하게 살고 있는 후손들(신채호 선생같은 경우에는 국적이 없다는 핑계로 아직도 중국에 묻혀계신다)에게 누가 사과라도 했는가??당신 말대로 다 성공한 것은 아니다.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부모의 친일 행위로 풍족한 삶을 누리는 자들은 그들의 부모의 잘못을 사과했는가??오히려 뉴라이트니 뭐니 하며 그 친일의 역사를 미화하지않는가!!!!김구가 테러리스트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면서...이게 말이되는 세상인가?

      • 오사씨 2011/10/17 14:57 

        3. 이승만의 친일파 등용 
        이승만 비판은 그가 친일파를 등용해 민족정기를 좀먹고 장기집권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런측면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지. 현실적으로 한반도는 36년간 식민지였으므로 지식인 기술관료는 어떤 형식으로든지 일제와 연관이 없을수 없었다.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로 친일파의 경력과 기술을 높이 평가해 그들을 실무책임 요직에 앉혔다. 그러나 북한은 1당 독재 이므로 당에서 감시직을 보좌관 형식으로 파견해 사상을 감시하고 관리 했기 때문에 친일파 기능직은 정치를 좌우할수 없었던 것 뿐이다. 그런데 그런 방식은 1당 독재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다당제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한계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나라는 부역세력이 나중에 크게 힘을 얻게 되었던 것 뿐이다. 그점을 지적하지 못하면 현실역사와 정치와 관련한 친일파 비판은 아무 의미가 없다. 

        4. 긍정적 사고 v. 부정적 사고 
        대학에 진학할때 입학원서에도 대일본 제국이란 말이 찍혀 있던 때란걸 생각해 봐라. 자네는 좋은 세상에 태어나 그것이 전부인줄 알지만 나는 초등때 육이오때 부서진 탱크 근처에서 놀았다. 정부가 능력이 안돼서 십수년전 전쟁때 사용된 고철 탱크를 치울수 없었던 것이다. 그 시대 정신으로 생각하란 것이다. 한일 합방이후 태어난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일본 식민지에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고 일본식 교육을 받고 자랐으니 일본 군대에 가거나 일본의 기업, 공공기관에서 일한 경력을 빌미로 공격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즉 애국의무에 실패한 사람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립투사는 뭔가? 그들은 해야 할 일 보다 더 많은 애국을 한 것으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포상해주고, 독립운동으로 인해 입은 개인적 손실을 최대한 보상해 주며 사회가 존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네 독립운동가 이름 얼마나 아는가? 부역자들을 친일이라고 욕만 하기 보다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며 기리는 것이 긍정적인 사고인 거다. 부정적 사고는 창조성을 박탈한다. 창조가 없는 곳에 발전도 없다. 나는 50이 넘었는데 더 무슨 좋은 일을 보자고 인터넷에서 젊은이들과 싸우겠는가? 다만 내게도 자네만한 아이가 있으므로 내 다음세대 한국은 더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이다.

      • 손민석 2011/10/17 15:04 

        2,반일 부역세력 문제....'민족이 해방되자 금방 독립운동가에 달라 붙었다'......장난...??김원봉이라고 아십니까??ㅡㅡ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김구의 목에 걸린 현상금에 5배의 현상금을 목에 달고 다녔으며 중국 관내 최초의 한국인 무장단체 창설,30년대 중국 관내 항일 세력을 모두 모아 항일 투쟁했던 독립운동의 쌍두마차인 김원봉....이 김원봉이 해방된 조국에서 노덕술에게 3일 밤낮을 고문을 받는다....ㅡㅡ김원봉은 너무 서러워서..너무너무 서러워서 울면서 북으로 간다.뭐...북에 가서 일성이한테 처형당했지만..ㅇㅣ게 해방된 조국에서의 모습이다.중국 관내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졌던 김원봉이 이정도 꼴을 당했는데...독립운동가에게 달라붙었다고??아니!!!!!!!!!!오히려 독립운동가를 핍박했다...김구!일제도 못죽인 김구가 대한민국에서 죽었다.......친일세력의 사주를 받아서...이게 대한민국이었다...이게 말이되는가??옳바른 것인가??그리고 친일세력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새빨간 거짓말이다.내가 위에 쓴 글을 조금이라도 읽었으면 그런 말 못한다. 이승만이 당시 자신의 약했던 세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한 것이지.한국에는 한국 민주당이라는 자본가 계급...교육을 잘받은 관료층으로 충분히 활용 가능한 조직들이 넘쳐났고 임시정부 세력도 넘쳐났다 임시 정부 애들은 관료일 안해봤나???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마라!!!!!!!!!!!단지 이승만이 자기 정치 권력 유지하려고 그렇게 말도 안되는 소리 한거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북한은 어떻게 성공했나??친일파 다 남하했는데??걔네는 김일성 세력이었던 조국 광복회 회원들(갑산파)와 함께 중국에서 무장투쟁했던 조선의용군 세력을 잘 활용해 그 공백을 메웠다...말도 안되는 소리마라 당시 국내에는 신간회 수장이었던 안재홍을 비롯해 여운형 같은 유능하고 실력있는 자들이 많았다...당신의 그 논리는 이승만과 친일세력들이 자신들이 세력을 잡을 수 밖에 없었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붙인 논리에 불과하다!!!!!

      • 손민석 2011/10/17 15:01 

        백번 양보해서 그때 당시의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자...그래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지..근데??그래서 뭐어쩌라고??우리는 현재에서 과거를 보는거다.그래서?지금 이승만을 찬양하고 이승만이 대한민국 건국의 대통령으로 추대되고 있다.이게 말이되는가??우리 후손들에게 잘봤지~?친일하면 3대가 살아요~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걔 잘못은 다 묻어두고~좋은거만 봐라!^^ 이렇게 말하려고 우리가 역사를 배우나??아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다시 하지말아야하는가?우리가 본받아야할 인물 상은 누가 있는가??민족의 스승이 될만한 사람은 누군가를 찾는 과정이지 그들의 잘못을 덮는 과정이 아니다!!!!!!!!!긍정적 사고 부정적 사고의 차원이 아니라!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아 우리가 그때 친일파들을 제대로 청산하지못해 이런 아픈 역사를 갖게 됐구나...아 이들이 이런 이런 잘못을 했으니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지...역사를 배우고 이렇게 되야지 아 씨~바~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니까??뭘 따져!그래 너는 좋은 집에서 태어나서 모르겠지~?응?그땐 그랬다니까??뭘따져 이게 옳바른거냐...ㅡㅡ50대가 넘으셨으면 세상이 그런거지 세상이 그런거지 하실 나이란거 압니다...ㅡㅡ하지만 후손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려면 애들아 비록 현실은 이렇지만...우리는 바꾸지 못했지만 너네는 바꾸길 바라...이렇게 말하는게 옳고 바른 정상적인겁니까 야~세상이 원래 그래~니가 현실을 뭘 알아...ㅡㅡ이게 정상입니까...잘생각해보십시요..

      • 손민석 2011/10/17 15:18 

        그리고 조선이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시는데.......그거 일제의 식민사관 잔재입니다...ㅡㅡ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알고 싶으시면 fpdlakstp@naver.com으로 메일보내세요...얼마나 진보한 나라였는지(당시에) 알려드릴ㄲㅔ요...아니 스스로 생각해보실때 고구려하고 조선중에 고구려가 낫다!이런 생각드시면 보내세요...

      • 오사씨 2011/10/17 15:16 

        1. 선구자 1세대 
        자네는 상당히 열변을 토하는데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일제의 대처방식은 사람마다 달랐고 형편이나 투쟁 방향에 따라 달랐다. 당시 조선의 상황에 대해서는 윤치호, 유길준, 서재필 등의 서신을 읽어봐라. 지금 한국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지식인들중 상당수는 일본과 합방이 슬프지만 민생은 나아지리란 희망을 가진자들도 있었다. 

        2. 임정의 역량
        임정이란 곳은 검증받은 인재들이 모인 자리가 아니었다. 당시 독립운동은 자원봉사 형식이니 누구든 독립운동 한다고 하면 다 모이는 자리였던 거다. 임정의 경쟁력은 백범일지에 잘 나온다. 중국어를 못해서 일자리를 갖지 못했고 밥벌이를 하는 사람도 드믈었기 때문에 장개석의 도움을 받기 전 까지는 김구도 시셋말로 빌붓어 살았다. 장준하 정도를 지식인이라 하지만 그도 일제때 대학다니다 도망친 학도병 출신으로 지금으로 치면 겨우 대학중퇴 정도 인 거다. 
        그러니 임정도 실수를 많이 했다. 임정이 왜 임시정부란 단체 이름으로 국내에 못들어 왔는지 아는가? 
        해방후 임정에서는 상황을 오판해 마치 테러단체 같은 성명을 발표하며 자신들이 한국을 대변하되 국권을 침탈하려는 누구와도 싸우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거다. 방울뱀이 꼬리를 흔든것과 같은 것인데 비행기 한대 띠울 실력도 없으면서 큰소리를 쳤으므로 실수를 한 것이었다. 물론 미군은 나중에 개인자격으로 비행기를 제공했지만. 이승만이 친일 부역세력만 등용한 것은 아니었다. 한민당의 알려진 영수들을 제외하고는 한민당 계열 인물도 썼지만 당계열로 쓰지 않고 인물로 썼으므로 한민당 계열을 홀대한 것 처럼 알려질 뿐이다. 다만 이승만의 독재가 강화되면서 계열은 무의미해 졌고 충성도에서 모든것이 판단되었다. 그결과 중도 사임하는 인사들도 많아졌다. 이승만 정권의 한계였고 극복해야 할 역사지만 부정해서는 안된다.

      • 손민석 2011/10/17 15:27 

        푸하하하하하하하하!!!!!!!!!!!!!!!!!!!!!!!!!!!!!
        1,'당시 조선의 상황에 대해서는....지금의 한국 같은은 곳이라고 생각하면...안된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아...정말 눈물나네요...ㅠㅠㅋㅋㅋ자...하나씩 말씀드리죠...아...ㅋㅋㅋㅋ당시 시대상을 알아야되는데요~당시 가장 강력한 국가가 어디죠??영국입니다.해가 지지않는 영국...그 당시 영국에서 어떤 한 사상이 나옵니다..그 사상이 인류 역사를 바꾸는데요...진화론입니다.다윈이 진화론을 주창하자 그의 사촌이었던 스펜서는...'가만...적자생존이라고...??...흠....아!이거 인간사회에도 통용되네??우리 영국이 가장 뛰어나고 진보한 국가니까 이 험악한 국제사회에 적응했네!^^'...이 같은 생각으로 만든게 사회진화론입니다.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를 개척할때 식민지 인들에게 지배를 잘 받아들이기 위해 만든 이론이죠^^이 이론을 일본이 그대로 사용하고 말씀하신 윤치호,유길준,서재필 등은 그 생각에 철저히 동화됩니다..그 결과물로 애국 계몽 운동을 하게되죠.애국 계몽 운동은 쉽게 말하면 '야!우리도 실력을 키우면 독립할 수 있어!'지만...이런 사상이 어디로 이어질까요??'별수있나??우리 조선이 약한걸??일제가 먹는게 당연하지...뭐나쁠거 있나..?'이런 사상으로 이어집니다.그래서 친일반민족행위를 할때도 서스럼없이 한 거구요...일제가 우리보다 나아서한게 아닙니다.일본이 당시에 얼마나 허접한 국가였냐하면 혹시...1910년대 회사령이라는 칙령을 아세요??그 회사령을 만든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그렇게 발전했다는 일본께서요!!!그 발전했다는!!일본께서!!!!조선 식민지 인들이 세운 공장이나 회사가 무서워서요!!!조선사람은 회사하고 공장 자체를 못세우게 한건데요????????지식인들중 상당수가 그런 생각을 가졌다고요??아닙니다!!!!!!!!!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마세요 일본이 회사령 세우고 심지어 관세까지도 만듭니다 왜냐??조선의 쌀이나 물건이 자기네것과 비슷해서 관세 없이는 방어가 불가능해서요!!!!!!!!아시겠어요??잘못되고 오염된 지식이 인생 망칩니다...이 민족사를!!!!!!저 구덩이에 처박는 겁니다...일본은요 심지어 조선에 팔 물건(당시에 가장 잘팔리는건 요즘엔 반도체지만 그땐 옷입니다)을요!영국에서 사서요 우리한테 팝니다ㅋㅋㅋㅋ왜??자기네 물건은 너무 허접해서요 조선애들이

      • 오사씨 2011/10/17 15:29 

        손 도령은 아는 것이 많고 열정도 좋다. 학부라도 자기 전공이라면 그정도는 얘기할수 있어야 한다. 시생의 전공은 법학이고 변호사질을 하면서 자네보다 조금 더 나익먹은 학생들을 가르친다. 역사는 재미로 좀 읽었고 전통때 데모질 하다 정해진대로 중위입대를 못하고 사병으로 갔다. 당시엔 자네와 생각이 같았다. 친일파, 반민특위, 매판재벌, 미제, 민중해방등이 화두였다. 논산에서 신검받는데 당시 몸이 않좋아서 원래 면제였는데 결국 방위로라도 보내라고 해서 모처에서 1년반을 고되게 일하고 왔다. 역사를 공부한 것은 미국 유학때 였는데 (미국헌법과 소비에트 헌법을 비교연구 했다) 나 자신이 한국에 대해 너무 무지한 것을 알게 되어 특히 구한말 부터 근대사에 대한 자료를 집중적으로 읽게 되면서 상당부분 내가 알고 있던 상식들이 정치적으로 착색된 것들이란 것을 알게돼었다. 나는 자네가 언젠간 이승만이 썼던 박사논문을 원어로 읽어 보길 바란다. 서재필이 쓴 자서전적 영문소설 (미국최초 동양인 소설)도 읽어 보시라. 김일성의 회고록도 언젠가 검열이 풀리면 볼수 있게될지 모른다. 원전자료들을 보면 여러시각에서 하나의 팩트가 보일 것이고 그 팩트가 왜 그자리 그시점에서 발생했는지를 이해하게되며 그것이 하나의 연속성을 갖게됨도 알수 있을 것이다. (그같은 연속성을 수학적으로 경향성이라 한다) 그래서 남이 쓰지 않은 말 즉 자기 언어로 우리 역사를 풀어보길 바란다. 사람들은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해 하며 라이트니 좌익이니 하는 명패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삶속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이다. 과거의 일을 연구해서 오늘을 분석하고 내일을 예측하는 능력이야 말로 역사학에 맡겨진 사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손민석 2011/10/17 15:36 

        안사서요!!ㅋㅋㅋㅋㅋㅋㅋ아시겠어요??일본이 공업화된게 언젠지 아세요??1920년대 1차세계대전이 끝나야 공업화가 됩니다.아시겠어요??아...너무 웃었네요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잘못된 지식은 빨리 고치세요^^일본애들이 말하는대로 그대로 말하시면 어떻게해요...ㅠㅠ

        2,임정의 역량...
        잘못된 지식입니다.어디서 그런 말도 안되는...참...전국 사학회 총회에 가서 그런 말씀해보세요...장담하는데요 욕엄청 드십니다...그런건 그냥 친구들하고 술드실때나 하세요...임정은 1944년 해방 직전부터 이미 중국군에게 작전권을 이양받아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했으며 45년에는 미국 OSS(현재 CIA)와 국내진공 작전이라는 독자적인 작전까지 수립하고 시행할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해방후 임정에서는 상황을 오판해 마치 테러단체....보낸거다...' 그저 웃지요...^^당시 미 극동함대 사령관 맥아더는 극심한 인종주이자로(일본인은 일왕이 없으면 나라를 세울 능력이 없다고 한 사람^^) 한국인은 국가를 세울 능력이 없기때문에 한국인이 세운 어떠한 정치세력도 인정하지 않으며 남한은 미 군정만이 통치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이미 김구는 통일 이전에 연안의 조선독립동맹과 국내 여운형 세력의 건국준비위원회와 연락해 우리 스스로 국가를 세우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했습니다.하지만 맥아더는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독립동맹,임정은 국가를 세울 능력이 없는 한민족이 세운 것이기때문에 인정치 않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운형이 세운 조선 인민 공화국(북한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입니다..ㅡㅡ;;;)도 바로 부정해버리죠.'한민당 계열을 홀대한 것처럼 알려질 뿐이었다..'아 정말..누구한테 역사 배우셨어요??ㅡㅡ한민당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세력입니다. 한민당이 얼마나 이승만에게 기대를 가지고 있었냐면요 '내가 대통령 만들어줬으니..우리한테 장관은 몇자리주고 총리는 누구시키고...'이런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근데 이승만이 자기 대통령 안시켜줬다고...(원래 한민당은 내각제로해서 이승만을 총리만들 생각이었어요..)바로 한민당하고 쌩깝니다.그래서 한민당이 이에 반발해 만든게 현재까지 이어오는 민주당이구요...부정해서는 안된다??이승만은 이미 예전에!!!!!!!!!!!!!!!!!!!!!!!!!!!1960년대 박정희 치하에서 이미 역사적 판단이 끝난 사람입니다!!!!그걸 지금와서 건국의 대통령이라고 다시 그렇게

      • 손민석 2011/10/17 15:48 

        따집니까~이게 말이됩니까..저 그리고요...이승만이 쓴거 논문 원본으로 읽어봤구요 서재필 쓴거 읽었구요 사학과는요 김일성 회고록도 일부 읽을 수있어요^^첨부자료지만..저는 최종적인 꿈은 훌륭한 정치가라서요 박정희 이승만,전두환만 대학가서부터 팠습니다.왜냐구요...??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대한민국을 멸망시키고 제가 황제가 되고 싶었습니다.그게 제 일생의 꿈이었구요...모든 이가 행복해질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면 박정희처럼 독재하는게 제일 빠르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박정희,이승만,전두환,스탈린,나폴레옹 등 독재자에 관해 정말 깊게 읽고 공부했는데요..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이건 아니다 싶어 이렇게 된겁니다.지금도 하는 일이 오사씨님과 같은 주장하시는 분들과 토론하고 공부하는 일인데요..마지막에 오늘을 분석하고 내일을 예측하는 능력...맞습니다 제가 중점적으로 공부하는게 정의는 승리하는가와 역사를 어디에 쓸것인가인데요 아직 공부하는 중이라 뭐라 말씀못드리지만 확실한 것은 오사씨님의 그런 역사관이 후대에 안좋은 역사관이라는 것입니다.이것만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저같은 독재를 꿈꾸는 사람이 다시는 나타나지않게요 현재 우리나라 근현대사 책(이명박이 고친거 말고..) 그 책 자체가 일제의 식민사관을 타파하기위한 변명서입니다.읽어보세요

    8. 포도 2011/10/17 13:52  

      손민석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본명이시겠죠? 좋은 매체에서 님의 활약상을 보고 싶습니다

      • 손민석 2011/10/17 14:33 

        감사합니다^^;;;부끄럽네요..;;;;;;그저 하찮은 사학도일뿐입니다..;;블로그 주인님처럼 어느 매체에 제가 쓴 글을 올리기도 부끄럽네요..;;;

    9. 하모니 2011/10/17 15:50  

      어이쿠.. 손민석님 댓글을 엄청 달아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제 댓글때문에 예상치 못한 논쟁도 나왔고요.. 손민석님 댓글을 읽어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제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몇가지 의문점도 있고요.. 예를 들어 대한민국 국군의 통수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작전권은 미국에 가있죠. 이걸들어 미국이 군대 지휘하는거니 대한민국의 의사결정권자는 미국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만약 그런식이면 유럽도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습니다. 유럽군대는 NATO에서 조정하는데 NATO 총사령관은 미국에서 임명합니다. 일본은 자체군대를 (명목상이지만) 보유하지 못하게 미국이 만들었으므로 일본도 미국의 식민지나 마찬가지고요.. 이런식으로 따지면 미국 동맹국은 전부 미국 똘만이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대규모 현대전을 치를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므로 미국의 동맹국들은 군사적인 작전권을 미국에 일임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걸 가지고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다 이렇게 말하긴 어려울 듯합니다. 친일파들에게 남한은 미국의 점령지였으므로 사실상 선택권이 없었다는 건 동의합니다만, 그들이 2차대전후 남한을 미국식으로 개조하는데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입안한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 손민석 2011/10/17 15:55 

        아...ㅋㅋ정확하게 말씀드리죠 대한민국 국군의 통수권은 정확하게 한국 대통령이 아니고요~한미연합사에 있습니다.이 한미연합사의 사령관을 임명할 수 있는 임명권은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있고요~그리고 유럽군대는 나토의 명령을 듣는게 아니고요 자체적으로 작전권이 따로 있습니다^^또한 나토는 유럽국가들의 동의를 받아야 움직일 수 있고요.그리고 마지막 답변에 '친일파들이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입안한 건 사실이지않습니까' 사실이에요~근데요...님...생각해봅시다 답안지에 답이 하나밖에 없어요?그걸 우리가 선택했다고 할 수 있나요??글쎄요...그리고 그 선택의 이유가 순수하게 국가를 발전시키기위해서였나요??글쎄요??자신들의 몸보신을 위한 것 아닙니까?거기서 이미 정당성을 상실했구요 그들의 공로때문에 그들에게 면죄부를 줘도 되지않느냐...이런 취지의 질문이신거 같은데 맞으신가요?당시에는 공산주의 아니면 자본주의 이 두개의 선택지 밖에 없습니다.근데 친일파들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선택한 거고 자신의 재산을 증식 시키기위해 돈번거구요~

      • 손민석 2011/10/17 16:01 

        흠...근데 경제 민주 다 해소가 안되셨나요?흠....당시 한국에서 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세력은 2개입니다.군대와 대학생그룹,특히 군대는 미국이 친미적집단으로 만들기 위해 해외유학등 상당한 혜택을 많이 주었는데요(이승만 정권 당시 해외유학자가 5천명가까이됐습니다) 미국은 생각한거죠 군사와 지식 이 두가지를 모두 갖춘 군대를 자신의 휘하에 두었으니 한국의 의사 결정권등 모든 것을 결정할 수있다..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유럽하고는 다르죠?유럽에는 한 사회내에 지금처럼 상당히 많은 세력들이 존재합니다만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한국전쟁과 이승만 정권을 거치며 지식인은 소멸했구요~군 내에서도 좌익들이 다 숙군돼서 군대에 대항할 그룹은 없습니다. 당시 한국군은 70만을 넘었죠

      • 하모니 2011/10/17 16:04 

        물론 그들이 한민족과 나라를 위해 경영했다는 순진한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그런 행동을 했겠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한민국 차제가 발전하게 됩니다. 경제발전에 따라 서서히 민주주의의 열망도 싹터 오르고요... 그렇다면 여기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은 미국 + 친일파때문이라고 말을 해야하는 건지? 만약 아니라면 친일파의 공로(?)를 어디까지 인정해야하는건지.. 아예 친일파의 역할 자체를 무시해야하는 건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뭔지?? 

        아, 그리고 해방직후 대한민국 10대 재벌과 지금의 10대 재벌을 비교하면 똑같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병철 한명 빼놓고는 전부 갈렸는데요.. 해방직후 10대재벌은 전부 친일파로서 축재를 했던 사람들이죠.. 그런데 지금의 10대재벌은 좀 다름니다. 그들은 해방때까지 친일파의 단물을 완전히 빤사람들은 아닙니다. 물론 친일파의 열어놓은 길을 통해 기업을 성장시킨건 사실이지만, 성장 자체는 자신의 힘이라고 봐야할텐데.. 현재의 재벌들은 전부 친일파라고 할 수 있는 건지요?


        민주주의 발전부분도 민주세력과 친일파의 대립이라고 했지만.. 북한은 소위 친일파를 싸그리 쓰러버린 나라인데.. 왜 여긴 민주주의가 발전을 못했는지.. 만약 김일성 독재때문에 민주주의가 발전을 못했다면... 친일파 독재가 김일성독재보다 나은 거 아니냐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남한은 박정희 독재(소위 친일파독재)가 있었지만 시민세력의 발전으로 어느정도의 민주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친일파 독재는 시민계층의 분노로 민주화가 가능한 수준의 약한 독재였다고 볼수 있는데.. 북한은 김일성가문의 절대독재만 존재할 뿐입니다. 김일성은 한국사람이고 자칭 독립투사인데.. 독립투사의 독재가 더 악랄하다??? 황당한 결론입니다. 그런데 현실결과는 이렇습니다. 이런 모순을 어케 해결할 수 있는지요?

      • 손민석 2011/10/17 16:07 

        하아...북한역사까지 제가 설명해야되겠군요...후....힘드네요...ㅜㅜㅋㅋㅋㅋㅋㅋㅋㅋ하지만 이거슨 우리사학도가 정확하게 가르치지않았기때문에 생기는 업보라 생각하고...

        운동권 역사부터 볼까요??위에 제가 쓴 것처럼 한국에서 가장 근대화된 그룹은 군대와 대학생그룹입니다.이 중에서 군대는 보수적 집단을 상징했고요 대학생 그룹은 진보혁신을 상징했습니다.경제가 발전하면서 민주주의의 열망이 싹터 오른게 아니고요 이미 이승만때부터 민주화 열망이 가득했습니다.4.19를 보면요~이게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박정희.전두환이 밥먹고 살게 해줘서 민주화 운동한것이다..이렇게 말하는데요~이미 그전부터 민주화 운동했구요..대한민국이 발전한 것은 친일파 독재가 아니고 제가 말했듯이 자본주의의 특성에 불과합니다.공산주의는 위에서 말했듯이..헉헉..ㅠㅠ...사상 자체에 모순이 존재했구요...친일파의 공로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이 문제는 사실 사학계 내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부분입니다.경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요 1,투자율 2,저축율 3,교육율이 필요한데요....우선 1,투자율은 해외 투자자들이 이 한국의 잠재력(쉽게 말하면 고급인재...)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친일파랑 상관없구요 2,저축율은 국민들이 돈으려고 저축하는거죠?친일파랑 상관없구요 3,교육율은 우리 지금도 교육을 끝내주죠??이게 전통이 있는거에요 1930년대 브 나로드 운동에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에요..이 3개지 모두 상관없으니 친일파의 공로는 없다고 보셔도 전무하지만 그래도 굳이 쳐주자면 장면계획을 잘 실천했고 자신의 욕망에 맞게 열심히 일했다는거 정도?

      • 손민석 2011/10/17 16:13 

        아 물론 현재의 재벌 모두 다 친일파라..이런 말할 생각없습니다..^^;;저희 아부지가 기업을 하셔서요 전 반기업적 정서 싫어합니다;;;;아...정당역사도 말해야되!!!...ㅠㅠㅠㅠㅠㅠ이게 친일세력으로 힘을 키운 세력은 현재 민주당인 한민당입니다.이들이 전통적인 귀족 친일파라 할 수 있죠??하지만 이들은 이승만의 농지개혁으로 거의 전부 몰락해버립니다.그 뒤를 이어 한국의 경제 발전기 박정희 전두환 독재에 빌붙어 성장한 세력이 제가 말하는 친일파입니다.이들 자체가 친일 세력을 했다는 것이 아니고요...이들이 지지하는 사상,세력 등이 친일 세력이기 때문에 친일파라고 하는 것입니다.친일 지지세력이라고 말하면 좀더 편하실까요??현재 친일세력은 대기업 지지세력이 말하면 됩니다.글쎄요...흠...혹시 정치에 관심많으시면 알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계화를 주장한 정당이 어딘지 아십니까??김영삼의 신한국당입니다.이 정당의 후신이 지금의 한나라당이구요 이들이 왜 자꾸 세계화를 말할까요??일제 시절 친일세력을 세계화의 선구자로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친일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야!좁은 세상에서 무슨 한국이니 일본이니 나눠져있어~'뭐 이런거죠~아이구 힘이 달리네요...ㅠㅠ자신들 지지세력의 잘못을 정당화 함과 동시에 경제적으로 기득권에 속하는 친일 지지세력은 세계화를 자꾸 주장하는거죠..

      • 손민석 2011/10/17 16:21 

        아이구..제가 너무 힘들어서...ㅠㅠㅋㅋㅋ설명이 허접하네요....휴우.........

        자 김일성 독재로 넘어갑니다.'북한은 소위 친일파를 싸그리 쓸어버린 나라인데..민주주의가 왜 발전 못했는지...'후우...철학적 내용이 나와야겠네요...아유...힘들다...자!공산주의가 무엇인지부터 우리 알아봅시다.공산주의는 맑스가 만든 사상이 아닙니다^^맑스 이전에 푸리에와 같은 공상적 공산주의자들이 존재했는데요 이들이 공산주의를 떠올리게 된 것은 성경입니다.성경에는 계급도 차별도 없죠??ㅎㅎ맑스는 이런 공산주의를 헤겔의 이론을 덧붙여 과학적으로 만듭니다.자~여기서 헤겔의 이론을 설명할텐데..쉽게 설명할께요..헤겔의 이론에서 '역사철학강의'라는 책이 있습니다.어려워요 읽지마요.이 역사 철학강의에서 헤겔은 역사의 발전과정은 좀더 많은 자유를 향해 나아간다 라는 말을 합니다.또한 그러한 자유가 가장 발전된 형태는 국가라는 말을 합니다.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개인의 자유가 있지 않습니까?근데 개인의 자유만을 강조하다보면 개인끼리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습니다.하지만 이 개인의 자유가 사회가 요구하는 자유(위에서 말한 좀더 많은 자유를 향해...)와 같은 수준으로 발전한다면?아니 더 나아가 일치한다면?그것이 가장 발전되고 도덕적 사회이며 그게 바로 국가라는게 헤겔의 사상입니다.위에 내용이 뭔지 모르겠다 무슨 개소리냐 싶으면요 쉽게 말할께요 헤겔의 이 사상은 전체주의의 근간이 됩니다.국가의 자유가 개인의 자유와 일치한다는 거죠.이러한 헤겔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맑스도 국가를 긍정적인...개인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체제로 봅니다.그래서 공산주의 체제는 다 독재하는거에요;;ㅎㅎ개인의 자유=국가의 자유니까 오로지 하나만 존재한다는거죠...또한 공산주의에서는 노동자독재를 강조하는데요 왜 노동자가 독재해야되느냐...맑스의 구분법에 따르면 근대 사회는 자본가vs노동자인데요 이 자본가를 타파하면 노동자만 남잖아요??이 노동자가 정권을 잡는데요 그럼 그게 민주주의 아닌가요??맑스는 이렇게 생각한 거에요 모두가 노동자인데 노동자가 독재하면 그게 민주주의지!이렇게 생각한 거지만 세상이 그리 쉽나요??어디 노동자만 있나요??아니죠??하지만 공산주의 자체는 세상을 그렇게 보기때문에 모든 공산주의 국가는 노동당에 의한 일당 독재를 지지하는것이고요...더 솔직하게 말하

      • 손민석 2011/10/17 16:31 

        하면 김일성이 개객끼라서 그래요...이놈이 정말 나쁘다고 제가 생각하는게요..50년대 당시 조선 노동당에는 계파가 4개가 있어서 현재의 정당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첫째로 중국 관내에서 독립운동하던 조선독립동맹이 있고요 둘째로 소련과 함께 들어온 소련파가 있고 셋째로 김일성이 이끄는 갑산파(조국광복회 회원)이 있고요 마지막으로 남한에서 온 박헌영의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세력이 있습니다.그래서 50년대 김일성의 칭호는 주석이 아니고 수상입니다.내각제하고 비슷했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하지만 김일성은 남한에서 이승만이 독재 체제를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남로당계파부터 처죽입니다(미국제국주의의 앞잡이라는 명목으로...어디서 많이 본거 같죠??빨갱이라고...)이렇게 되자 김원봉이나 김두봉 등 다른 공산당원들은 민주체제(위에서 말했듯이 공산주의에도 민주주의 원칙이 통용됩니다...)가 무너질까봐(솔직히는 죽을까봐..)일성이를 몰아내기위해 종파사건을 일으킵니다.하지만 역관광으로 두계파가 한꺼번에 사라지죠...이제 일성이 눈에는 뵈는게 없죠??바로 주체사상 만들고요 자기 세력에서도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세력을 싸그리 죽입니다.친일파 독재가 나아서 그런게 아니고요 공산주의 사상 자체가 전체주의,독재적 성격을 가지고요 일성이 자체도 그걸 원했구요...그럼 똑같은 독재인데 남한이 낫지 않느냐...친일독재가 낫지않느냐...이런 의구심이 당연히 드실 수 있습니다.문제는요...남한과 북한의 결정적 차이에 잇습니다.혹시 공산주의 쪽의 교과서 보신적 있으신지요..??우리가 보기에는 공산당 선전같은게 그쪽 교과서 입니다.내용자체도 민주주의??그런거 없습니다.이게 무슨말이냐면요 남한은 미국의 주도(당시 미국은 자신의 국익만을 따지지 않았습니다.민주주의의 선파자라는 명목을 중요시 생각했기때문에 독재국가라도 미국식의 민주주의 교육을 꼭하게했습니다.어찌보면 이것도 체제선전이라 할 수있죠??)로 교육이 진행됐거든요??쉽게 말하면 한국의 젊은 층들은 책에서나마 민주주의를 습득했고 그것의 정당성을 알고 있었습니다.또한 자신들의 손으로 이승만이라는 독재자를 끌어내렸다는 역사적 사례도 이루어냈구요.반면 북한 사람들은 다릅니다.교육자체를 민주주의가 중점인 교육을 받지않습니다.또한 그들은 단 한번도 그들의 지배자를 자기 손으로 뽑아

      • 손민석 2011/10/17 16:48 

        본 기억도 없고 자신들의 손으로 지도자를 몰아낸 경험도 없습니다.조선시대부터 계속된 복종에 익숙해져있어서 그렇지 친일독재가 더 나아서가 아닙니다..그리고 김일성의 독립투쟁...하긴 했죠~근데요..정말 말단입니다..정말정말 말단...보천보사건으로 유명해졌는데요 총 쏴죽인 사람이 7명입니다..뭐그리 대단한 독립투사라고...ㅡㅡ;;;김일성은 대표성이 없어요..그렇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지속적인 투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구요 특히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상당히 많이 민주화에 참여했구요...대표적으로 문익환 목사님...아드님이신 문성근씨도 민주세력의 적통을 이어받으셨죠...흠...미흡한가요?아유...제가 힘이 달려서...아까 너무 열정적으로 논쟁했더만..ㅠㅈㅅ혹시 더 질문있으시면 답글 다세요...제가 내일 아침이라도 바로 답글 달게요..아휴..힘들어..

        아..그리고 제가 자꾸 우파를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친일세력을 미화해서가 아니고요..현재도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보이고 또한 그런 노력을 하기 때문입니다..이건 정말 잘못된거거든요??아니 일본한테 나라를 판다는게 아니구요...후..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한국을 전체주의국가로 만들고 싶어합니다.그리고 그렇게 만든 전체주의 국가의 모델로 일본을 선택했구요...그래서 제가 싫어하는 것입니다..ㅎㅎ

    10. 하모니 2011/10/17 17:01  

      손민석님 답글 감사드립니다.
      답글 읽어보니 노고가 장난 아니시네요..
      그냥 제 생각나는대로 말하는 모순에 이렇게 친절히 답변 주시니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손민석님 글 읽어보면 결론은 미국만세 인 것 같습니다. 

      왜냐면 친일파는 탐욕을 꽤했고, 대한민국을 전체주의 체제로 만들어 자신들을 위해 나라를 만들고자 했는데 결과는 대한민국 경제발전과 민주화 입니다(전세계 식민지겪은 국가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요..). 이 모순을 해결하는건 미국의 역할론 뿐입니다.

      결국 공산주의는 헬게이트(국가자유주의로 인해 독재는 필연적이고 , 민주주의 교육을 북한주민에게 안해줬다고 하셨으니 볼짱 다본 체제인듯 합니다.)니 그거랑 손잡은 북한과 김일성은 쉣인 존재고요....
      민족반역자는 아니지만 민족을 퇴행시키는 만행을 저지른자 라고 볼수 있네요..

      여튼 친일파가 다스리긴 했지만 미국이 심어놓은 민주주의(명목적이든 머든)와 자본주의(탐욕스럽건 아니건), 그리고 경제지원의(목적이 미국이기주의던 아니던) 토대로 결국 남한이 발전했다는 거 아닌가요?
      독립파가 다스렸든 친일파가 다스렸든, 누가 다스렸든 경제발전은 미국이 지원해줬으니 가능한거다 라는 주장 같습니다. 제가 올바로 이해한 거 맞나요? 

      하지만 이 답은 맨 앞에 제시했듯히 필리핀은 뭔가요? 미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올바로 이식받았고, 손민석님이 꼽으신 경제발전을 위한 저축율, 투자율, 교육율이 전부다 해방직후의 시점에서는 한국보다 높았습니다. 그런데, 왜 현재시점으로는 이모양 이꼴인가요? 같은 미국의 자식들인데, 성적표의 결과는 판이합니다. 같은 자본주의니 체제는 같지 않습니까.. 미국이 지원해준것도 똑같고요... 그렇다면 같이 발전하거나 필리핀이 헐씬 더 크게 발전해야하는데 성적표는 판이하니.. 이건 어케 설명이 가능한지.. 한국과 필리핀은 도대체 뭐가 달라서 이렇게 차이가 발생한 건가요?

      • 손민석 2011/10/17 17:24 

        아니요...미국 만세가 아니고요...친일파에 대항한 민주세력의 덕입니다.경제적으로는 미국의 혜택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민주화 측면에서는 절대적으로 아니!!미국은 민주세력을 외면했죠??제 글 다시읽어보세요...

        제가 총정리 해드릴께요~미국이 한국에 빨대를 꽂으려는 이유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정권을 세움으로써 첫째,일본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둘째,반공이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셋째,중국을 견제할 수 있습니다(제주도에서 미 7함대가 미사일을 쏘기 시작하면 북경을 석기시대로 돌릴 수 있습니다. 이래서 중국애들이 제주도나 서해쪽에 미국 함대가 들어오는 것을 극렬히 반대하며 북한을 자꾸 도와주는 이유죠) 넷째,러시아의 극동함대 사령부를 막아 부동항(얼지않는 항구)를 찾아 남하하는 러시아 세력을 막을 수 있습니다.다섯째, 반공의 교두보라는 명분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무제한으로 판매할 경제적 시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설령 동북아에서 미국의 힘이 약해져도 한국의 친미 세력을 이용해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습니다.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한국을 키워줘야하며 한국은 친미적 행위를 해야합니다.저는 이게 나쁘다고 보지않습니다.우리도 미국을 이용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한국의 민주세력은 이것에 매우!대단히!엄청나게!veryvery!!농!나인!불가! 반대했습니다.그 최전방에 섰던 그룹이 NL이라는 집단이구요(NL보고 종북이니 친북이니 하는데...맞습니다^^;;제가 PD라서 NL욕하는거 아닙니다..;;하지만 NL은 독재체제를 끝내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물론 헬게이트지만요..)이들 민주화 세력들은 이러한 미국에 대항했고 동시에 그러한 미국의 이익에 맞춰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친일 세력에 대항한 것입니다.그 싸움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잇구요 

        다만 제가 미국을 강조한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미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입니다.이러한 미국의 영향력을 무시하고 박정희 덕이니 친일 세력덕이니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남한은 발전한 것이 아닌가요...' 이 질문은 사실 저로서도 답변하기 매우 어렵습니다...그걸 해명하려고 공부하는 중이니까요^^;;그러다보니 하모니 님께서 미국만세라고 할정도로...미국을 강조하게 된 것이구요...하지만 제가 말씀드릴수 있는 것은 민주세력의 노력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입

      • 손민석 2011/10/17 17:32 

        니다.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독립파든 친일파든 당시 한국은 미국의 도움없이는 성장하기 힘들다고 생각됩니다.저는 미국이 싫습니다.미국의 패권주의는 정말 구역질 날정도로 싫습니다.파나마라는 국가가 있습니다 그 국가가 가지고 있는 파나마 운하가 있는데요 이게 미국의 군사적 전략상 매우 중요한 운하입니다.근데 어느날 이 나라 대통령으로 민족주의적 인물이 당선됐죠 그리고 그는 파나마 운하를 국유화했으며 반미적 성향을 가졌습니다.결과가 어떻게 됐을까요?남미의 마약이 미국에 유입되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로든 파나마를 거쳐야합니다.그걸 이유삼아 파나마 대통령이 마약 거래에 관계가 있다는 명목으로 특수부대를 파견해 납치해와 법정에서 40년형을 때립니다.하지만 국제 사회 어느 나라도 아무 소리도 못했습니다.이게 미국이라는 나라입니다.이렇게 강력한 미국의 동의나 지원이 없이 당시에 살 수 있는 나라가 있었을까요??NL세력이 북한이나 소련등을 추종한 것도 이런 미 패권주의에 대항할 세력이 공산세력 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이렇듯 막강한 미국의 영향력에 있는 나라가 한국인데 그 경제 발전 상황에서 미국의 역할을 무시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 생각해 미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지만 결론적으로 우리 나라의 경제,민주화에 도움이 된 것은 민주화 세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박정희 경제의 끝인 IMF를 치운게 누구입니까??김대중 노무현 정권입니다.물론 이들도 부족하지만 이들 민주화 세력이 한국사를 깨끗하고 바르게 이끌었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아유...힘드네요...ㅠㅠ

      • 손민석 2011/10/17 17:41 

        마지막으로 필리핀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필리핀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아는 것이 없습니다.부족하나마 답변을 드리겠습니다.필리핀은 말씀하신대로 미국의 식민지였습니다.가히 미국의 아이들이라 할만하죠??근데 왜 필리핀이 저렇게 됐을까요??미국의 영향력을 제외하고 말씀드릴까요?

        필리핀의 역사부터 되짚어봅시다..사실 필리핀하고 우리하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잘못된거 아세요??^^;;필리핀은 16세기에 와서야 역사에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그것도 스페인 식민지라는 치욕적인 시작으로요.이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세워본 경험자체가 없으며 본인들 스스로 무슨 역사를 만들어본적 자체가 없습니다.또한 이들의 민주주의 역사는 매우 짧으며 관료층 등 일부 상층부만이 교육을 제대로 받았고 이끌 힘이 있습니다.다수의 국민들은 문맹이며 정치 참여 의사?민주주의?그 모든게 부족합니다.질문자 분께서 뭔가 착각하신거 같은데요...교육율 자체가 필리핀은 굉장히 낮았구요 투자율은 높았지만 산업자본에 투자된 것이 아니고 자원채취에 투자되었습니다.또한 저축율도 그렇게 높지 않았습니다^^;;;또한 미국이 독재자를 후원하면서 필리핀의 자원위주로 엄청난 약탈을 합니다.(미국은 50~60년대까지는 독재자를 지지하지않았습니다만 60년대 이후 그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독재자가 아니라 독재자 할아버지도 지지하게됐죠..;)

        자 이제 미국의 영향력을 집어넣어서 따져볼까요??
        우선 필리핀은 미국에게 있어 전략적 요충지가 아닙니다.그저 자원 약탈에 필요한 자원창고에 불과합니다.왜냐하면 그 근처에 미국에게 적대적인 국가 없고 설령 있다하더라도 미국과 친한 인도나 태국을 이용해 방어하면 됩니다.즉 미국의 입장에서 필리핀은 강대해질 필요가 아예 없었습니다.

      • 손민석 2011/10/17 18:06 

        또한 필리핀이 한국보다 나았다..라고 하시는데..글쎄요..필리핀은 수출이 한국보다 나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대부분 자원 위주의 수출이었습니다.공업품 같은 2차 산업의 수출은 한국과 비슷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과 스페인의 치하에서 교육은 그렇게 잘 이루어지지않았구요 미국이 그나마 세운 시설들은 일제와의 전쟁으로 모두 잿더미가 되었습니다.(여기서 말하는 일제와의 전쟁이란 것은 필리핀과 일본이 아니고 필리핀을 지배하는 미국과 일본의 싸움입니다.일본은 필리핀의 자원을 채득하기 위해 필리핀을 점령하죠 이때 도망간 사령관이 맥아더입니다)자신들의 힘으로 나라도 못세운 나라하고 우리하고 비교하는건 좀 무리입니다^^;;그리고 그들이 경제정책은 상당히 즉흥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우리나라는 장면이 세운 계획에 따라 철저하게 이루어졌구요 박정희 전두환이 무식해서 경제 정책 수립을 자신이 관여안하고 김재익같은 경제 천재들에게 맡겼습니다.(장면은 큰 그림을 잘만들었고 김재익은 세부적인 계획을 잘 세웠습니다)거기다가 그런 폐해들의 끝인 IMF를 민주세력의 김대중이 치웠습니다.우리나라와 필리핀 비교하시는 것은 무리가 좀 잇구요..선진국 제외하고 세계에서 문맹률 1%도 안되는 나라는 남북한 밖에 없습니다^^;;부족한 답변이었습니다^^;;더 공부해서 더 타당한 근거로 부응합죠^^;;ㅋㅋㅋㅋ

        덧붙이면 그 강력했던 서유럽도 미국의 마셜플랜이 없었다면 부흥하기 힘들었습니다^^;;한국은 더할나위없죠?

    http://blog.ohmynews.com/jeongwh59/

     
     
     

    요가오데고

    치매바지 2010. 3. 11. 22:09

     독도는 누구의 땅인가


    2010. 3. 10. 수요일

    너부리

     


     

    일본에서 독도를 다케시마라 부름으로써, 그것도 교과서에 떡하니 표기함으로써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 아닌 일본 땅임을 자국민들에게 주입시키려는 의도에 대해서 대한민국 국적의 어떤 미.... 딴지일보

     

     

    <OBJECT codeBase=http://f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8,0,0,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height="399" width="502" align=middle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요가오데고

    치매바지 2010. 3. 4. 14:01

    진보라는 이름의 룸펜 프롤레타리아

     

    나는 과거 독재시대에 태어났고 전체주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아니면, 부르조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시골집의 툇마루에서, 지나간 세월을 추상(追想)하는 빈티지 풍의 복고주의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른바 한국적 진보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내게 상당히 거부감을 주고 있다.


    물론 나는 현실의 자본주의 보다는 이상(理想)의 사회주의를 택하겠지만, 나의 사회주의란 현재에서 미래로의 제각기 탈출을 꿈꾸는 개인주의적 진보(進步)가 아니라, 관습과 풍속과 즉 역사를 지키려는 보수의, 어쩌면 소비에트의 콜호즈나 이스라엘의 키부츠와 같은, 그런 옛날의 공동체로의 회귀(回歸)일 것이다. 나는 언제나 공동 공유 공산 공생(共生) 그러므로 게마인샤프트란 말을 좋아했다. 나는 사상의 자유를 찾아 소련을 탈출했던 철학자 지노비에프를 존경했지만, 다시 이십여년후 자유의 폭정(暴政)을 피하여 이제 소련의 잔해 러시아의 품에서 평등의 순수(純粹)를 찾으려는 늙은 지노비에프의 귀향(歸鄕)을 더 존경했다.


    자유란 사상(思想)과 존재(存在)의 자유이지, 행동과 체제의 자유가 아니다. 감옥의 독방에 갖혀보았던 사람은 창살문으로 손바닥만한 햇볕이 고맙게 들어와주는 오후 두시반의 짧은 십오분이 얼마나 소중한 자유의 시간인지를 안다. 타인의 허영을 위하여 희생이 되어야 했던 개인은 소위 자유체제가 얼마나 가증스러운 위선(僞善)인지를 안다. 조나단 리빙스턴 갈매기에게 자유는 외로움이었고 죽음이었고, 다만 죽음을 외롭게 선택할 수 있는 순간은 최고의 자유였다.


    한국적 진보는 그러나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개인주의적 탐욕이다. 자기 내면에서부터 오랜 성찰의 결과로 드러나는 심오한 사상과 존재의 자유가 아니라, 남에게서 본따오고 남에게 뽐내기 위한, 말초적 행동과 체제의 자유를 외치는, 자기소외(自己疏外)적 경쟁주의의 노예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지배와 착취의 무한한 자유를 외쳐대는 룸펜 부르조아지의 족벌주의적 탐욕 즉 한국적 보수는 한국적 진보와 절묘하게 일치한다. 그것들은 모두 "한국적"이라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원초적 이기주의(egoism)의 다른 껍데기들이다.


    룸펜 프롤레타리아나 룸펜 부르조아지의 천민성(vulgarness)은 타인에 대한 질투 즉 자신의 숨겨진 열등의식의 똑같은 발로이다. 남의 자유 모두를 억누르고 나의 자유만을 휘둘러서 보다 더 큰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얻겠다는 간사함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자유의 전횡(專橫)이며 남의 자유의 박탈(剝奪)이다. 어떠한 사회이든지 사회의 영속성을 위해서 가장 먼저 보장되어야 할 것은 평등과 분배이며 자유와 축재가 아니다. 노동, 생산, 수익, 향유에서의 최소한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최소한의 자유 또한 없다. 그러므로 평등이란 권리가 아니라 의무이다.


    비록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프롤레타리아의 이름을 도용하고는 있으나, 그들에게는 프롤레타리아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는 계급의식이 없다. 아니, 국가나 민족이나 사회에 대한 양심 자체가 전무하다. 룸펜 프롤레타리아는 룸펜 부르조아지와 마찬가지로 천박한 양아치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구분은 가진 자냐 못가진 자냐의 구분이 아니라, 오히려 비열한 천민(vulgar)이냐 아니면 고결한 귀족(noble)이냐의 구분이 될 것이다. 한 사람의 천부적인 의식에 있어서 "양아치"냐 아니면 "양민(良民)"이냐의 윤리적 구분이 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지의 계급구분은 물론 경제적 조건에 의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 이전에 양심이라는 인간의 도덕적 조건을 전제하고 있다. 양심이 없는 사회는 자본주의도 아니며 공산주의도 아니며, 공멸적 상황에 직면해 있는 약탈경제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는 바로 약탈경제에 목매달려 있으며, 그 경제주체들은 재산의 있고 없음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천민적이며, 경제구조 자체가 아예 천민화를 강요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는 진정한 의미에서 사유재산도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국가라는 권력에 의해 보장되지도 않는다.


    재산(property)이라 함은 어떤 물건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인격 즉 가치의 속성(property)을 물건의 소유자(proprietor)가 갖추었느냐는 의미이다. 피리를 불 줄 모르는 자에게 피리가 소용이 없고, 땅을 가꿀 줄 모르는 자에게 땅은 멍에가 되고, 말을 탈 줄 모르는 자에게 말은 재앙을 부를 뿐이다 (크세노폰 - 경제학). 그러나 한국 사회는 피리를 불고 땅을 가꾸고 말을 탈 수 있도록 배운 양민들이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배우지도 않은 양아치들이 사기질과 도둑질로 "화폐"라는 몰인격적인 재물을 축적한다. 그들의 재물은 그러나 재산이라 부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재물에는 부여될 가치가 없으며, 가치를 부여할 인격도 양아치들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는 사유재산 뿐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공유재산(public things - res publica - 公共財貨)도 없다. 국가가 국가의 재산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이상(理想)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국가의 공동재산을 지킬 줄 모르는 국가는 당연히 국민의 사유재산도 지킬 줄 모른다. 모든 재물은 존중될 가치가 아니라 다만 약탈의 대상일 뿐이다. 양아치 부르조아지로 하여금 약탈을 정당화하고 합법화하는 금권정치(ploutocracy)의 폭압을 법질서라고 부르며, 하이에나와 같은 양아치 부르조아지가 파괴하는 도덕질서는 그 아래 양아치 프롤레타리아를 페스트처럼 증식시킨다. 약탈의 목적은 노동과 생산이 아니라 가치와 재화의 파괴이다. 즉 경제와 사회의 파괴이다.


    한국적 룸펜 부르조아지가 앞세우는 금권정치의 얼굴, 이명박과 이건희의 태생적인 양아치스러움과 천박함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 자들에게는 지위와 나이에 걸맞는 최소한의 언어와 행동에서의 엘레강스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이 누구나 자연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존엄성(dignity)의 완전한 결여, 이것이 한국 정치의 추악하기만 한 진짜 몰골이다. 그 자들은 저속한 광고처럼 노블레스의 간판을 걸 수 없다. 부르조아지는 노블레스가 아니기 때문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노블레스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 싸운 용기있음(valorousness)의 댓가이지, 부르조아지가 축재한 재물의 매춘(賣春)적 값어치(venality)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방의 의무를 비겁하게 빼먹었음은 물론, 국가 경제를 좀먹는 비열한 양아치들을 어찌 노블레스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모든 역사에 있어서 파르티잔도 레지스탕도, 그들이 속했던 계급의 이익을 떠나서, 그들은 먼저 고귀한 전사(戰士)로서의 노블레스였다. 부르조아였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 사회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아르헨티나 부호의 아들 체 게바라는 남미의 혁명을 주도하였다.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 호치민은 식민종주국 프랑스의 인텔리겐챠였다. 그들로 하여금 못 배우고 못 가진 자를 위한 혁명의 선봉에 서게 했던 것은 그들의 "천민성"이 아니라, 반대로 용기에 있어서의 그들의 "고결함"이었다. 진정한 혁명, 사회의 진정한 변혁은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의 모노 드라마가 아니다. 더구나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다만 태생이 그렇다는 이유에서, 혁명의 무대를 독점하고 저들의 검은 배를 채우기 위해 혁명을 찬탈한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라 사기이다.


    최근 유럽의 상황에서도 볼 수 있듯이 - 이미 1930년대 히틀러의 대두도 그랬지만 - 천민적 이기심의 동물인 룸펜 프롤레타리아는 평등사회로의 발전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양아치 프롤레타리아는 양아치 부르조아지와 함께 광신적 수구꼴통의 가장 손쉬운 먹이이자 그 먹이를 잔인하게 사냥하는 가장 충실한 개가 될 뿐이다. 유럽의 극우집단 스킨헤드의 대부분이 취업의 꿈을 포기한 청년 실업자들이다. 공산주의 블록이 무너져 버린 오늘날, 대체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독재 아래서, 천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다만 허황한 부에의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무절제하고 비인간적인 폭력, 즉 "신자유주의"의 탈을 쓴 야만으로의 회귀이다. 스탈린적 소비에트 체제가 실패했다고 해서, 멀리 플라톤과 예수에서 시작하여, 가까이는 고르바체프와 솔리다르노시치의 바웬사도 꿈꾸었던 공산주의적 휴머니즘까지도 포기해야만 하는가? 꿈을 잃었다고 해서 동물보다도 더 동물적인 무한경쟁의 식인(食人)사회로 타락하는 것이 과연 인간에게 용납되는가?


    외국인 노동자를 쫒아내서 대신 그 자리에 취직을 시켜주겠다는 (나치 - 유태인 추방, 네오나치 - 아랍인 추방, 한국극우 - 동남아인 추방) 너무나 유치한 산수(算數), 땅 개발로 집 값을 올려주겠다는 로또의 유혹, 잃어버린 고토(故土)를 회복한다는 기치 아래 불타오르는 전자오락 민족주의의 시대착오가 사회를 휩쓸고 있는 것은 결국 천민들의 피해망상이 원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이른바 보수화 즉 수구꼴통화는 정치 현상이 아니라 이념과 철학을 상실한 나라의 집단정신병적 현상이다.


    한국의 진보가 한국적 보수의 매춘적 "자유"가 아닌 진정한 자유의 이념을 대변하려면 무엇보다 피해망상적 천민성에서 부터 벗어나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는 비열한 천민이 아니라 위대한 인민(people)이어야 한다. 지난 역사에서 우리 민중은 무릎 꿇고 살기 보다 서서 죽기 원하는 그런 전사(戰士)였다. 지난 촛불에서 우리 국민의 장엄한 노도는 이미 보여졌다. 이제 다가오는 선거에서 단결된 민주주의의 조용한 분노를 한국의 진보는 이끌어야 한다. 사상과 행동에 있어서의 고귀함과 준엄함, 이것이 한국의 진보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 * *


    언제부터인가 아고라도 천민화에 빠져들어 갔다. 언제부터인가 아고라에는 천민의 편이라면서 룸펜 프롤레타리아들이 들어와 실제로는 룸펜 부르조아지의 개, 스킨헤드의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자유를 세우겠다면서 진실을 쓰레기 인냥 땅 밑에 파묻기도 했다.


    사회주의적 평등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게다가 진보를 주창하며 자본주의적 착취의 폐해를 성토하는 사람들이, 누구보다도 더, 결국 자본주의적 착취의 가장 위선적인 얼굴인 주식시장의 등락에, 찜질방의 명박한 강남 복부인들 보다도 더, 천박하게 울고 웃었다... 국민의 돈 국민연금이, 우리의 내일을 위한 저축이, 주식이라는 쓰레기를 사기 위해 버려졌을 때도, 아고라의 어느 천민들은 공매도! 공매도!를 외치며, 결국 자기의 돈이 더 버려지기를 재촉하였다... 내 나라 돈의 가치가 떨어지기를 내심 바라며 달러를 사재기하라는 플랭카드도 애국의 태극기인냥 휘날렸다... 불과 이십년전 만 해도 남한에서 암달러를 보유하며 양담배를 피우는 것은 매국적 죄악이었으며, 아직도 휴전선 넘어 북한에서는 처형까지 되고 있는 범죄이다. 그런 반민족 반국가 행위의 조장을 경제 지식의 활용이라며 우쭐댔다...


    물론 룸펜 부르조아지는 그들만의 "고급정보"로 약탈과 사기를 일삼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니, 그들의 범죄에 대해 정면으로 싸우기를 피하며, 아니, 그들과 똑 같이 때로는 그들보다도 더 잔인한 하이에나가 되어, 여기 저기 "고급정보"를 줏어 모아 더 약하고 더 가난한 사람들을 등쳐서 돈을 쳐버는 짓이, 결과적으로는 룸펜 부르조아지에 동조하는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막장 양아치 짓이 아니라면 또 무엇인가? 아고라의 어느 천민들은 나의 축재를 우리의 경제라고 호도하기도 했으며 착각하기도 했다. 나 혼자 부자가 되면 내 나라 우리 모두가 잘 살 것 같은가? 나 혼자 외국으로 도망가면 내 부모와 내 형제는 아비규환에 빠져도 좋다는 말인가? 물론 인간은 돈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고 돈의 노예가 되어 영혼까지 팔아야 하는가?


    개인의 이익의 합은 결코 사회 전체의 이익의 합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미 삼백년전 증명된 시장경제의 존재론적 모순이자 본질이다. 창조적 노동과 근검한 절약만이 진정한 경제이다. 그 외의 모든 다른 돈벌이는, 그것이 어떤 우아한 이름과 이론으로 치장했든지 간에 결국 약탈이며 사기이며 경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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