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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일기 - 터키 23 - 트로이(T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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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사진여행

2022. 5. 21.





          ◆ 터키 여행일기 23 - 트로이(Troy)

        여행일시 : 17 년 09 월 21 일 ~ 09 월 29 일 (7박 9일) 여행코스 : 이스탄불, 샤프란볼루, 앙카라, 카파도키아, 안탈랴, 쉬린제, 에페소, 아이발릭, 트로이 블로그 개편으로 오래 전에 올렸던 해외여행 사진이나 글들이 많이 깨지고 바탕색 변경으로 글이 안보이거나 게시판 모형이 바뀐데다 코로나 사태로 해외여행길은 아직은 앞이 불안하기에 지난 날의 외국나들이 사진을 오래된 사진부터 시간나는대로 몇장씩만 간략하게 다시 간추려 즐거웠던 여행의 추억을 되새겨본다 한번 가보고싶던 나라, 6.25 한국전쟁을 통해서도 우리와 밀접한 인연이 있는 터키를 이번에 늦깍기로 주마간산격으로 한바퀴 둘러보았다 터키는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으면서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나라이다 그래서일까.. 터키에서는 어디를 가나 찬란한 인류문명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루었던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이 터키에서 시작되었고, 전설의 트로이도 있고 노아의 방주가 걸렸다는 아라라트 산도 터키에 있다고 한다. 고대 문명과 현대의 문화가 꿈틀대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터키는 여덟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불가리아, 그리스,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란, 이라크와 시리아가 있다 위로는 흑해와 접경을 하고 있으며 아나톨리아와 동트라키아 사이로는 마르마라해와 다르다넬스해협, 보스포루스해협이 있는데 이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로 인식되어 터키는 두 대륙에 걸친 나라이므로 지정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요지를 차지하고 있다 터키족(80%)이 국민 대다수를 이루며, 다음으로는 쿠르드족(20%)이 있다. 터키의 주요 종교는 이슬람교, 공용어는 터키어다 터키는 오스만제국의 후계 국가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제국이 무너지고 1923년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지도로 민주주의, 세속주의를 받아들인 입헌공화국으로 변모하였다 터키는 유럽 이사회, 북대서양 조약기구, OECD, WEOG, G20와 같은 국제기구에 가입하여 서방 세계와 점차 통합하고 있다 터키는 1963년에 유럽경제공동체(EEC)의 준회원국이 되었으며 1995년에는 관세동맹을 맺었지만 아직은 EEC 준회원국에 머무르고 있다 터키는 또 이슬람회의기구(OIC)와 경제협력기구(ECO)에 가입하여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위시한 동양과도 문화, 정치, 경제, 산업면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에서는 터키를 중진국으로 분류하며, 세계의 정치학자와 경제학자들은 지역 강국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국토 면적은 남한의 약 8배, 인구는 80백만명이다.(글 일부 : 인터넷백과 인용하였음) 전설의 도시였던 트로이는 신화에서 역사로 되살아난 도시이다 트로이는 BC 3000~2000년에 벌써 문화 중심지로 번성하기 시작하여 일리온이라는 이름으로 4세기까지 존속했다 한다 우리는 트로이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트로이의 목마' 일 것이다 그리스가 트로이와의 전쟁에서 거대한 목마를 이용해 전쟁에서 승리한 이야기이다 트로이의 멸망 이야기는 트로이 왕의 아들인 파리스가 그리스의 스파르타에 외교 사절로 갔다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름다운 아내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달아나면서 시작된다 그리스는 군사들을 모아 트로이를 공격하기 위해 지중해를 건너 전쟁을 시작했으나 트로이의 견고한 저항에 부딛혀 전쟁은 무려 1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그리스의 원정대는 지쳐갔다고 한다 그리스 진영 내부에서는 모두가 철수를 주장할 때 그리스의 지혜로운 전사 오디세우스가 마지막 승부수를 건 것이 바로 '트로이의 목마' 작전이다. 즉 커다란 목마를 만들어 그 속에 그리스군을 숨겨 놓고 철수를 가장하는 위장 전술이었다 이 때 목마를 이처럼 크게 만든 것은 트로이가 목마를 성 안으로 옮기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날 밤, 트로이의 사람들이 모두 잠들자 목마 안에 몰래 숨어 있던 그리스 군인들이 트로이의 성문을 열었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리스 군대는 쉽게 트로이 성을 공격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이에 전쟁에서 패한 트로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현재 트로이 유적지 입구에는 실물 크기로 복원해 놓은 목마만이 당시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트로이의 전설은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였으며, 호메로스 서사시의 근간을 이룬다 트로이는 스카만데르 강 북쪽과 헬레스폰트 해협의 남쪽 어귀로부터 약 6.4km 떨어진 트로아스 평야에 있었다고 한다 1822년 찰스 맥라렌에 의해 호메로스 시대의 트로이 소재지로 밝혀졌으나, 학자들이 그 사실을 인정한 것은 하인리히 슐리만이 1870년에 발굴을 시작한 이후였다고 한다 BC 6세기말부터 이 지역은 페르시아인, 알렉산드로스 대왕, 아시아 남서부의 셀레우코스 왕조, 페르가몬 왕국, 로마인들에 차례로 점령당하다가 BC 85년 로마인이 약탈한 후 같은 해에 로마 장군 술라가 부분적으로 복구시켰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다른 황제들이 많은 애정을 기울였었는데 324년에 콘스탄티노플이 건설되고 나서 일리온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갔다는 것이다 유구한 세월 동안 지속되었던 트로이는 BC 13세기경 발생한 대화재로 크게 파괴되었는데, 아마도 이때의 트로이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묘사된 프리아모스 왕의 도시였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광활한 유적 덕분에 트로이는 고대세계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적지가 되고 있다.(글의 일부 : 인터넷백과 인용)
▼ 실물크기로 복원해 놓은 트로이 목마 ▼ ▼ 여정도(旅程圖) ▼
글과촬영 : 가족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