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서 본 하늘(구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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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음악/사진·그림

2011. 1. 30.


  

 

무덤 속 바닥에 누워서 올려다본 하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본 순간

우리 모두도 죽으면 저 땅 속에 묻히겠지...

그리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겠지...

저 자리에 눕게 되는 그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다 가야 하리라...

그런 생각으로 자신을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께서

이 민족의 청년들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저 하늘 아래 거짓 없이 진실된 삶을 살다

하늘이 부르시면

밝은 마음으로 그분 앞에 우리 모두가 설 수 있기를...

그 바람을 가져봅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조용현님의 글 한편

  

가톨릭 교회에서는 11월을 위령성월(慰靈聖月)로 정하고 있다.

11월 한 달은 ‘죽은 자의 영혼을 기억하면서 기도하는 성스러운 달’로 비워놓는 것이다.

998년 클뤼니 수도원의 5대 원장이었던 오딜로(Odilo)가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지내도록

수도자들에게 명령한 이래로, 11월은 위령성월로 정착이 되었다.

1년 중에서 11월 한 달만큼은 삶보다는 죽음에 대해서 사색해보자는 취지인 것 같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죽음을 사색하는 수행법과 의례를 마련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백골관(白骨觀)이 대표적이다.

시체 옆에서 몇 달간을 머물면서 육신이 썩어서 백골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수행법이다.

백골관을 하고 나면 탐욕이 모두 떨어진다고 한다.

티베트의 조장(鳥葬)은 시체를 토막 내어 독수리가 물어가도록 하는 장례법인데,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현생에 악업을 많이 쌓았던 시체는 독수리도 잘 물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조선의 유교에서는 3년 시묘를 하였다.

부모의 묘 옆에서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죽음과 부모의 은혜에 대해서 생각하였던 것이다.

조선 시대에 부모상을 당하는 평균 연령대는 3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까지인데, 이 시기는 중년의 나이이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게 마련인 중년의 한 시기에 철저하게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묵상하도록 한 제도적 장치가 바로 3년 시묘이다.

 

전남 광주의 ‘너브실’이라는 곳에는 퇴계와 사단칠정 논쟁을 주고받았던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묘가 있다.

묘 근처에는 고봉의 아들이었던 기효증(奇孝曾:1550~1616)이 2회에 걸쳐 총 9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던

‘칠송정(七松亭)’이라는 정자가 남아 있다. 1차 3년 시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23세부터 25세까지 3년이었다.

하지만 기효증은 환갑이 되던 해에 무엇이 부족했던지 다시 묘 옆으로 돌아와 죽을 때까지 6년 동안 시묘를 한다.

그는 왜 말년에 다시 6년의 세월 동안 시묘를 자청했던 것일까.

인간은 미리 죽음을 경험해 볼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죽음을 알 수 없는 것인가.

 

영국의 독설가 버나드 쇼가 스스로 지어 남긴 묘비명에는 이렇게 써 있다고 한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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