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10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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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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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비오는 날

오늘 같이 비 오는 날, 재미있는 일이 어디 없을까? 친구의 아로니아 밭에 가서 가지를 쳐주어야겠다 비옷을 입고 달랑 가위 한 개만 들고 2km 떨어진 밭으로 간다 친구에게는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 혼자 비오는 날을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남들은 비오는 날에 일하는 나를 삐딱한 눈으로 보기 일쑤이고 또 진구가 나 혼자 일하고 자기느쉬는 것이 무척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손가락 마디가 아파서 가위질이 힘들다 비오는 날을 일부러 택하는 것은 비오는 날의 수채화 화면 속의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은 무조건 쉬는 날이라 여기는 통념을 따르기보다는 나의 독자적 의미를 찾아낸다 유희의 현장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아로니아 가지는 일반 가위만으로도 싹둑싹둑 잘라진다 헝클어진 더부룩한 머리칼을..

25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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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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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교학상장

토란씨를 묻어두고 싹을 기다린다 올해는 좀 늦다 싶어서 안달이 난다 흙이 굳어서 그러려나 싶어 살짝 파보니 토란 정수리가 송곳처럼 뾰죽하다 밭을 어슬렁거리며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을 안하는 것도 아니다 노동과 유희 사이를 오가며 한가롭다 밭은 농산물을 생산하기도 하지만 여러 씨앗들이 발아하며 자라고 꽃을 피우는 생명의 땅이며 사람과 농작물이 상호작용을 하며 교감하는 만남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리고 밭은 내가 나를 가르치고 배우는 학습의 현장이기도 하다 순간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이 떠오른다 나는 때때로 나를 가르친다 가르치는 직업으로 반평생을 살았지만 돌아보니 허사라 부끄럽기 짝이 없다 가르치던 고약한 버릇이 남아 있지만 받아줄 사람이 없으니 자신을 가르치게 된다 그래서 나는 학생이 ..

23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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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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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광장에 홀로 앉아

거창군청사 광장에 지금 내가 있다 홀연히 떠오르는 생각 하나를 잡아본다 산다는 것은 시공의 좌표에서의 이동이다 나의 하루하루를 점 하나로 표시하고 하나의 축은 공간으로 또 하나의 축은 시간으로 설정해 본다 무수히 많은 점들이 내 인생의 좌표에 찍혀있다 이 좌표는 수학 시간에 칠판에 그리는 평면상의 좌표가 아닌 3차원의 좌표다 중고등학교 시절 6년의 좌표를 거슬러 오르는 피드백은 사유의 힘이다 그러나 이미 찍힌 좌표가 변경되는 것은 아니며 다만 기억으로 회상해 볼 뿐이다 까만 교복을 입은 소년의 내가 이 거리를 지나간다 자취를 하며 고달픈 생활을 하지만 꿈을 키우는 시절이기에 고단할 뿐 슬프지 않았던 시절을 회고하는 초로의 내가 말없이 홀로 앉아 있다 예전과 현재의 차이와 동일함을 견주어 본다 어떤 것은 ..

14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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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등나무 그늘에서

등나무 그늘 아래에서 누워서 한가롭다 컨테이너 옆에 심어 양철 지붕을 오르도록 했는데 10년이 지나도 지붕에 오르지 않는다 오히러 나에게 호통을 친다 목석 같은 양반 우리가 아무리 줏대 없이 이리저리 엉키며 산다고 해도 우리 생태를 그리도 모를 수 있나요? 우리의 확장세를 제국주의에 빗대는 것은 그럴 수 있다지만 뜨거운 양철지붕에 연약한 순이 오르기를 기대한 무감각에 화가 치밀어 오르오 우리의 등걸이 시커멓게 목질화 되어도 변방에서 새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전위대들의 조직은 말랑말랑한 연한 피부란 말이오 우리의 거대한 영역 확장이 폭압적 점령이 아니라 신중하고도 사려깊은 설계에 의한 것이란 말이오 등나무 등걸이 만들어내는 그늘은 좋은 쉼터가 된다 이 그늘에서 따가운 햇볕을 피하며 서로 밀착하며 결속하는 ..

14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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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노동과 유희 사이에서

밭에서 가벼운 일을 할 때는 클래식 음악과 함께 하는 수가 많다 음악을 동반한 노동은 일의 능률보다는 사유를 촉발하고 낭만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노동과 유희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밭에서 일을 하는 것과 밭에서 노는 것이 뒤섞이는 것이다 나는 노동을 유희처럼 즐긴다 즐긴다는 것은 우선 힘들지 않아야 한다 허리를 굽히거나 쪼그려 앉는 일은 불편하고 고통이 따르니 일 욕심을 내지 않고 쉬엄쉬엄 일을 하며 일의 능률과 효율에서 벗어난다 일이 힘들고 괴로우면 즉시 일을 멈춘다 물론 생계와 긴밀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여유로운 표현이다 혹자는 피땀으로 노동하는 가치를 모르는 음풍농월격이라며 혹평을 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절박한 사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일을 많이 해서 소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