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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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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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정씨 문중기록

2019. 1. 4.

황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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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황암서원

黃岩書院

황암사(黃巖祠)

 

요약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에 있었던 서원.

 

시대 조선후기

건립시기 1717년(숙종 43)

성격 서원

유형 유적

소재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

분야 교육/교육

개설

1717년(숙종 43)에 조종도(趙宗道, 1537∼1597)와 곽준(郭䞭, 1551∼1597)을 향사하기 위해 안음현(安陰縣)에 건립된 서원이다. 1718년(숙종 44)에 황암서원(黃岩書院)으로 사액을 받았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복원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 변천

1716년에 어사(御史) 여광주(呂光周)가 올린 서계(書啓)로 왕이 특명을 내려 안음현 서쪽 5리 황석산성(黃石山城) 아래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조종도와 곽준을 함께 병향하는 사우를 건립하도록 하였다. 서원과 재실은 1717년 봄에 낙성되어 같은 해 10월 위패를 봉안하였다. 1718년 12월에 숙종이 사액을 내리고, 예조좌랑(禮曹佐郞) 이진엽(李震葉)을 파견하여 치제하였다. 이때 내린 「선액사제문(宣額賜祭文)」과 이의록(李宜錄)이 지은 「황암서원봉안문(黃巖書院奉安文)」이 조종도의 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후에 황암사(黃巖祠) 담장 밖에 별묘를 지어 안음현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순절한 정용(鄭庸), 유개(劉盖) 등 2인을 종향하였다. 1758년(영조 34)에 황암사와 별묘를 중수하였다. 1868년에 훼철되었으며, 현재 황암서원 터에는 황석산성순국사적비(黃石山城殉國事蹟碑)가 세워져 있다.

 

내용

조선 중기의 문신인 조종도는 본관이 함안이며, 자는 백유(伯由), 호는 대소헌(大笑軒)이다. 1558년(명종 13) 생원시에 합격한 뒤 양지현감, 금구현령, 단성현감, 함양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과 함께 창의하여 의병 모집에 진력하였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을 받고 안음현감 곽준(郭䞭)과 함께 의병을 규합하여 황석산성을 수축하고 가족까지 이끌고 들어가 성을 지키면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인솔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황암서원 외에 함안의 덕암서원(德巖書院)에 제향되었다. 문집으로 『대소헌일고(大笑軒逸稿)』가 있으며,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곽준은 본관이 현풍이며, 자는 양정(養靜), 호는 존재(存齋)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면(金沔)이 의병을 규합할 때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안음현감으로 함양군수 조종도와 함께 호남의 길목인 황석산성을 지키던 중 아들 곽이상(郭履常)·곽이후(郭履厚)와 함께 전사하였다. 병조참의에 추증되고, 황암서원 외에 현풍의 예연서원(禮淵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1758년(영조 34)에 황암사를 중수할 때의 기문인 「황암사우중수기(黃巖祠宇重修記)」와 「황암사우중수상량문(黃巖祠宇重修上梁文)」, 「황암별묘중수상량문(黃巖別廟重修上梁時記蹟文)」 등이 『황고집(黃臯集)』에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함양군수와 안음현감 출신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공을 세운 충절인을 향사한 대표적인 서원이다.

 

참고문헌

『대소헌일고(大笑軒逸稿)』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황고집(黃臯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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