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영승 사락정 난간에서

댓글 6

진양정씨 문중기록

2019. 2. 5.

거창 영승마을에는 사락정이란 정자가 있다

마을 앞쪽으로 흐르는 위천의 물가에 세워진 눈맛 좋은 정자다

여지껏 정자의 내력을 모르고 지나쳤었는데

이제서야 새롭게 눈을 뜨서 정자의 역사적 배경을 알게 되었다



 


정자는 주로 풍광이 좋은 강가에 세워지고 사방이 툭 트이게 하였다

정자는 개인이나 문중의 별장이 아니라 개방된 공간이다

오늘날은 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사회이다 보니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예전의 농경사회에서는 마을이나 문중 등의 공동체 위주의 생활이었다

사회의 전통적 관습이나 규범을 존중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보다 우선하는 덕목이었다


 



영승마을은 정선전씨들의 세거지이기도 했다

지방 사족인 전철의 누이가 안동권씨인 권질의 부인인데 권질 공이 유배에서 풀려나

처가가 있는 곳으로 와서 피폐해진 심신을 추스리는데 이 정자가 큰 역할을 했다

이 곳에 머무르면서 마을사람들과 교유하며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

1543년 안음현을 방문한 대유학자 퇴계 이황은 사락정으로 명명하고 현판을 써주고

수승대 개명 건으로 은진임씨 문중의 갈천선생과 거창신씨 문중의 요수 선생과의

갈등과 분쟁을 유발하기도 했었다


 

불가에서는 삶을 생노병사의 사고(四苦)라고 하며 고통의 연속이라고 한다

사락(四樂)은 불가적 인생관을 바꾸어 즐거움을 누리며 살자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에게 공통된 삶의 즐거움 네 가지는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소박한 것이다

농상어초(農桑漁)는 농경생활과 연관된 일이고 살아가기 위해 당연한 일들이다

저런 일이 과연 즐거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가기도 한다


 



예전의 시대 상황을 보면 오늘날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먹고 놀고 즐길거리가 별로 없는 결핍의 시대에서는 생계와 관련된 노동마저도

낙과 놀이로 받아들이는 발상의 전환은 사유의 혁명이기도 하다

농삿일은 고된 노동이지만 상부상조라는 협동 노동을 통해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체득했다


또한 노동요와 세시풍속 등에서 고단한 삶을 오락이나 문화로 승화하였던 것이다

노동의 현장인 논과 밭에서, 산에서 지게를 지고 땔감을 하면서, 뽕잎을 따고 누에를 치거나 베틀에 앉아서,

물가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나누어 먹으며 함께 하는 삶을 누려왔던 것이다

 

사락은 마을 사람들 모두의 관심거리이고 흥미를 주는 것들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원리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은

삶의 즐거움은 이렇게 싱겁기도 하다.

그러나 깊이 음미해 보면 그 안에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모두가 더불어서 사는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

사락에는 사대부나 서민들의 신분 질서를 넘어서며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구분을 넘어선다

동일한 시대, 동일한 고장에서 한 생을 누리는 사람들의

동고동락의 포용성과 낙천적 의식이 진해게 배어나온다



 


이 글을 쓰면서 그리고 가까이 있는 사락정 난간에 걸터 앉으면 내게 또 다른 감동이 밀려올 것이다

사락정을 짓고 이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전철 공이 우리 문중의 정 순 선조의 맏사위었다는 것이며

퇴계선생의 처외숙모가 정 순 선조의 따님이었음을 회고하며

역사의 뒤안길에서 전해오는 끈끈한 애착과 역사의 향기를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