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한 바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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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즐거움

2019. 11. 2.

 

바닷가 데크로 설치한 해안도로를 걷다가 한 바위 앞에 머물러 있다

큰 바위 하나가 푸석푸석한 얼굴로 오랜 세월의 비바람을 맞으며 핼쓱하다

원래는 단단하고 매끄러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바위에 움푹 패인 곳에 생채기가 나서 깊어지며

생긴 골이 골짜기가 되고 단단한 곳은 등성이가 되었구나

골짜기는 낮고 습하고 어둡고 등성이는 높고 마르고 밝구나

원래 하나이던 곳에 음양이 생겨난다

 

바다가 요동친다

바닷물이 출렁이며 파도가 철썩철썩 해변을 때리며 바위가 흔들린다

낮과 밤이 장막을 여닫으며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것이 변한다

 

바위가 흔들리며 요동을 친다

바위에 파편이 비듬처럼 떨어지고 갈수록 주름이 깊어지며 노쇠해진다

강하고 단단하던 속내를 드러내며 연하고 잘디잘게 부서지며 늙어간다

늙어가는 것들은 포근하다

 

해안 단구는 갈수록 키를 낮추며 완고한 자신을 허물고 있다

아직도 높은 곳은 온통 차돌 바위들이지만 잔 금으로 부서지는 중이다

 

다음에 이곳에 올 수 있을까를 생각하자 쓸쓸한 미소가 배어나온다

장구한 시간을 살아온 바위에 비해 우리의 삶은 촌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무한 것이 아니라 바위의 일생을 통해

시간의 역사에 관조하며 경건해지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