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은사님을 추모하며 - 수학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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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벗,지인과 함께)

2020. 7. 19.

 

초등학고 은사님께서 소천하시고 납골당에 안장되신다
심장 보조 장치를 하시고 십년 이상을 사신 은사님은

참 사도의 길을 걸은 분이라 추모하는 마음이 각별하다
인자하신 표정이 생생한 영정 앞에 큰 절을 드리며

반세기 전의 음성을 듣는다

야들아 내일 등교할 때는 모두 낫을 가지고 오너라

낫은 새끼줄로 감아야 다치지 않는단다 알았재
이십대 중반의 육중한 체격에서 나오는 우렁찬 음성은 

열 서너 살 아이들에게는 복음이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어서

모두가 참가하는 수학여행을 갈 수 있다는 희망의 복음!
반복된 동기화에 고무된 우리는 하루 하루 늘어가는

우리들의 수입에 흥분되었었다
우리의 노동으로 벌어보는 첫 경험이자

독립과 자립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임기술선생님!
열정에 찬 젊은 교사는 여행 비용을 부담할 수 없어

동행하지 못할 아이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요즘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상상조차 어려운 방과 후 활동이다
미성년 노동문제나 아동 인권 침해로 법적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리라

모든 아이들을 데려가려는 차별없는 보편적 사랑이 궁리해 낸 묘수였던 것이다
아직 낫으로 보리를 베거나 모내기를 해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몇몇 녀석들은 제법 익숙한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그 젊은 선생님은 본가가 학교 근처에 있는 토박이라

제자이기 전에 일가나 지인의  아이이고 후배였다
아이들의 어려운 형편을 훤히 꿰고있는 데다가

적극적인 행동과 열정을 지닌 초심의 교사였다

온 마을에 널리 알려서 일손이 필요한 농가를 수소문하고

일반적인 품삯보다 약간 저렴한 품삯을 받아 여행을 추진했다
하루 하루의 상황을 제자들에게 소상히 알려주며 격려하는 모습을 회상하면

교직에 있었던 내가 부끄러워질 뿐이다

단순히 여행비용을 스스로 조달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노동의 경험을 제공하고 성과를 맛보게 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한 대의 수학여행 버스를 타고 경산의 과수원에 주렁주렁 달린 사과를 보며 신기해 했다
버스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월남 파병 용사들을 찬양하는 노래를 풀렀다
회전의자란 유행가의 사랑이란 노랫말에 귓불이 붉어지며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에는 발악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었다

 

그런 아이들을 이끌고 가시던 선생님이

애굽 땅을 벗어나 홍해로 이끌던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