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단원의 그림 감상- 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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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2021. 2. 9.

타작은 벼농사의 많은 작업 공정의 최종적 공정이고 결실의 축제다
농사를 직접 지어본 경험이 없는 이들은 타작으로 알곡이 쌓이는 기쁨이 얼마나 큰 가를 피상적으로 이해할 뿐이다
절대 빈곤으로 식솔들이 굶주림을 피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쌀이야말로 구원의 선물도 같은 것이었다

단원의 그림을 보노라니 예전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논 12마지기에 밭 500평 정도로 농사를 지은 부모님이라 농경 사회의 추억을 반추하기에 충분하다
아버지는 문전옥답에서 베어놓은 볏단을 좁은 논길을 거쳐 지게로 져다 날랐다
그 때는 발로 밟아서 탈곡기(우리는 공상이라 불렀다)를 돌리고 볏단의 알곡을 털었다

단원의 그림 속에는 공동노동을 하는 농부들의 협업과정이 잘 드러난다
개상이나 벼훑이를 이용하여 알곡을 분리한다
농부들의 노출된 몸에서 단단한 근육에 배인 땀내음이 나는 듯 하다
저마다 분업화된 일에 열중하며 시끌벅적한 중에 삶의 기쁨이 배어난다

단원의 그림에는 복선이 깔려있다고 한다
한 켠에서 작업을 감독하는 마름이 자리를 깔고 거드름을 피우며 누워있다
지주의 위임을 받은 현장 감독인 셈이다
이 추수의 현장에는 소유자와 노동자라는 지위의 분화와 갈등 조정이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다

마름은 소유자의 위임으로 지배자, 고용인, 감독자가 되고 소작인들은 피지배자, 피고용인, 피감독자가 되어 계급 간의 알력이 있다
그래서 추수하는 이 장면이 풍성한 아름다움이나 평화로움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나는 그림 속의 농부들을 격려하며 그들의 어깨에 내 어깨를 걸친다

이보시오!
수고가 많으시군요 저는 미래에서 온 사람이오
이 판의 진정한 주체는 바로 여러분들이오
여러분의 팽팽한 힘줄, 소임에 몰입하는 열정, 동료들과의 원만한 협동심이야말로 참다운 생산의 근원이라우
저 엎에 거만하게 누운 이는 잠시 제 육신이 편안할지 모르지만 이 판의 흥겨움을 모를 것이오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하지 않소이까
어린 모가 봇도랑에서 흘러온 젖을 빨고 바람에 흔들리며 키가 자라고 마침내 알차게 영글어 양식이 되어가는 이 하늘이 벌인 축제에 노니는 이 환희와 감사를 어디다 비길 것이오
하늘이 주시는 이 풍성한 판에 환호하며 이 판의 중앙에서 진정한 삶의 기쁨을 누리는 여러분이 전정한 주인이 아니오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