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풍속화 - 길쌈하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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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2021. 2. 7.

길쌈은 어린 시절 자주 목격하였던 정겨운 풍경이다
우리 고향마을은 60년대 중반까지도 삼농사와 삼베를 짰었다 거창의 삼베일소리는 지역의 뜻있는 인사에 의해 민속놀이로 전승되고 있다

당시의 아련한 추억을 회상해 본다
출렁거리는 삼밭의 삼잎, 삼곶에서 쪄낸 삼 내음, 껍질을 벗겨낸 하얀 지릅대기(삼 몸통의 방언), 삼잎을 삼는 여인의 하얀 허벅지, 삼실을 길게 늘여 풀먹이는 장면, 베틀에 앉은 여인의 자태 등이 기억의 심연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그림 속, 베틀에 앉은 아낙의 뒤에 손주를 업은 시모가 지켜보고 있다
며느리의 일손을 바라보며 틀림없이 도움말을 건넬 것이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가르침이라 여길 것이고 며느리 입장에서는 잔소리로 여길 것이다
전통 사회는 인간관계의 상하 주종적이고 수직적 질서를 중시하었다
시모는 엄하고 매섭게 며느리를 훈계하고 며느리는 듣기 거북하여도 인내하며 고분고분해야했다

중학교 시절 창선 마을의 문중밭을 온통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치던 부모님이셨다
누에가 뽕잎을 사각사각 갉아먹는 소리는 내 영혼에 저장된 자연 음악이었다

길쌈은 수많은 손길이 가야하는 많은 작업공정으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딱히 일거리가 없고 옷을 자급자족하기 위해서는 길쌈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길쌈은 여성의 섬세하고 인내를 요하는 극한 직업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러나 이 일을 천직 삼아 묵묵히 받아들이며 놀이로 승화 시킨 민족성에 경의심이 솟아나온다
이제 길쌈은 사라졌지만 그 안에 담긴 삶의 무늬를 망각해서는 안된다
길쌈에 담겨있는 선인들의 정한이며 충만한 삶의 의지며 고역을 놀이로 승화하는 여유와 재미며 민속놀이로서의 가치 등을 경시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