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주작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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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목공방 - 나무둥치

2021. 2. 28.

며칠 전부터 고구려 벽화에 마음이 쏠려 여러 자료들을 검색하며 감상한다
관심을 집중하는 힘의 원천은 인문적 탐구욕과 무한한 상상과 흥미다

옻나무 판자에 주작 한 마리를 그린다
무덤에 그려진 주작 한 마리가 1600년 전의 선인들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엿보는 단서가 된다

주작을 그리며 나는 천 오백년의 세월을 건너 한 왕의 죽음을 상상한다
온 세상을 다스리는 절대 권력으로도 막을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이루어 보고픈 왕의 간절한 영생의 꿈을 읽는다
장례는 만 백성의 애도와 조문을 받으며 성대하고 호사롭고 품격있게 치러졌으리라
영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선발된 각 분야의 최고의 명장들이 소집되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막중한 장례를 치렀을 것이다

무덤은 죽은 영혼의 집이며 우주의 형상을 상징한다
무덤의 사방과 천정을 장식하는 벽화는 온 우주의 상징이다

한 시대의 최고 권력자의 무덤의 벽면에 장식된 사방신은 오행사상이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작은 죽은 왕의 앞쪽 벽에 있는 남방의 신이다
남방의 신은 더위의 제왕인 염제다
오행에서 남방은 남쪽, 여름, 붉음을 상징한다
남방의 신 염제는 의약, 농업, 태양의 신으로 황제와 더불어 중국인의 조상으로 추앙받는다

지하에 지은 죽은 왕의 무덤은 죽은 자의 천국이요 왕궁이다
죽은 왕을 사방에서 호위하며 이상세계로 이끄는 영물은 청룡,백호,주작, 현무다
지하의 무덤이라고 하지만 가장 상징적으로 우주의 체계를 본따서 축조한 것이다

이 주작은 누가 그렸을까?
아득한 옛적에 어느 공인의 손에서 그려진 한 마리의 붉은 새, 주작!
까마득한 후세인인 나는 4B 연필로 주작의 날개며 두상의 유려한 곡선이 주는 신비감과 상승감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