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감자를 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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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2021. 4. 1.

감자를 심는다
비닐로 덮은 두둑에 모종삽을 찔러넣어 흙 한 줌을 파낸 후 눈을 뜬 감자 한 조각을 묻고 파낸 흙으로 덮고는 두어번 토닥토닥 두드러준다

감자를 심다가 흥과 함께 숙연한 상상이 발동한다
신령스런 대지의 여신이여!
이 촌부가 문안을 드리나이다
자비로운 대지는 모체의 태반 같아서 신통력을 지니사 무한한 생산으로 만물을 부양하시니 그 베푸심이 한량이 없나이다
이 작은 감자 한 조각을 포근한 품에 제물로 바치나이다
삼가 옷깃을 여미며 큰절을 드리지는 않사오나 대지를 고르고 기름지게 하며 수없이 굽히고 땀을 훔쳤나이다
그리고 정성된 마음으로 감사와 보은을 새기고 있나이다

대지의 여신은 참으로 신실하시니 한 번도 미혹에 들지 않게 하시나이다
뿌린대로 거두리라는 믿음을 입증하시나이다
믿음과 신뢰의 근본을 몸소 가르치시니 어떤 언어가 이보다 설득력이 있겠나이까
대지의 여신은 일하는 손을 칭찬하여 후히 보상하시며 근면의 미덕을 스스로 깨닫게 하시나이다

며칠이 지나면 정수리로 비닐 천장을 밀어올리는 맹열한 힘을 가진 감자순이 솟구쳐 오를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모습을 경이로운 눈으로 지켜보며 대자연을 찬미하게 될 것이다
감자순이 쑥쑥 자라며 하얀 꽃이 피고 알이 토실토실 여물어가는 과정을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