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비오는 날 물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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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2021. 4. 4.

봄비가 적잖이 내리는 날 밭에 물을 준다
대낮에 횃불을 켜고 거리에 나선 디오게네스처럼 비오는 날에 물을 주는 내가 대비되어 싱긋이 웃는다

비옷을 입고 물을 주는 것은 상식의 눈으로는 생경하다
더구나 두어 시간을 반말들이 물조리개 두 개를 양손에 들고 20여 회를 뿌렀으니 가관이리라
관련 영농업자들은 관수시설을 갖추고 자동으로 미생물을 살포하지만 나는 고작 텃밭을 가꾸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일이 즐겁다
상상을 동반하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미생물균이 토양에 깊숙히 침투하기 위해 오히려 비 오는 날을 택한다
이 작업이 얼마나 과학적 근거를 가지는지 정확한 수치나 이론을 알지 못한다
다만 치졸하지만 나만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효과가 클 것이라는 믿음과 놀랄만한 실행력을 드러낸다

놀이는 재미있다
놀이는 특별한 목적을 이루려는 게 아니라 그 자체의 재미 때문이다
이 작업이 가져올 경제적 이득에 촛점을 맞춘다면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놀이에 빠진 어린이처럼 나는 마냥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