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노동과 유희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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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2021. 5. 14.

밭에서 가벼운 일을 할 때는 클래식 음악과 함께 하는 수가 많다
음악을 동반한 노동은 일의 능률보다는 사유를 촉발하고 낭만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노동과 유희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밭에서 일을 하는 것과 밭에서 노는 것이 뒤섞이는 것이다
나는 노동을 유희처럼 즐긴다
즐긴다는 것은 우선 힘들지 않아야 한다 허리를 굽히거나 쪼그려 앉는 일은 불편하고 고통이 따르니 일 욕심을 내지 않고 쉬엄쉬엄 일을 하며 일의 능률과 효율에서 벗어난다

일이 힘들고 괴로우면 즉시 일을 멈춘다
물론 생계와 긴밀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여유로운 표현이다 혹자는 피땀으로 노동하는 가치를 모르는 음풍농월격이라며 혹평을 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절박한 사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일을 많이 해서 소출을 올려야 한다는 일반적인 관념에서 벗어나면 일의 풍성하고도 근본적인 의미를 사유하게 되고 일의 과정에서 소소한 재미를 맛볼 수 있음을 경험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가 욕심없는 마음으로 일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일의 결과물을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돈에 종속되는 한 이런 소박한 꿈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놀이를 즐기는 이들은 주로 아이들이다
그들은 기존의 경제 시스템에 예속되어 있지 않으므로 철없는 자유분방함으로
놀이 그 자체를 즐긴다
나는 밭에서 일을 할 때 아이들처럼 엉뚱한 발상과 분방한 상상력과 스스로 찾아낸 재미를 일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채소의 지지대를 만들며, 미생물을 배양하여 뿌리며, 묵은 밭을 개간하며, 감자꽃에 도취하며, 토란잎에 엉롱한 물방울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