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수승대 돌거북

댓글 0

청곡의 글방

2021. 8. 27.

수승대에는 돌거북이 곳곳에 있다
구연에 발을 담그는듯한 거대한 거북이 자연의 선물이라면 서원 마당에서 비석을 짊어진 돌거북들은 인공으로 선현들을 추모하는 유적이다

국민학교 소풍을 갔을 때 내게 행운을 준 것은 그 중 제일 큰 돌거북이었다 보물찾기에서 그 콧구멍 안에 하얗게 말린 종이 보물이 숨겨져 있어 짜릿한 흥분이 일던 추억이 있다

이 돌거북은 커다란 비석을 짊어지고 있다 크게 음각된 선명한 글자
「산고수장」
성현의 인품이 산처럼 높고 물처럼 유구하다는 후세인들의 지극한 존경심의 발로다
수승대 근처의 황산 마을에 처음으로 입향한 분이 요수 선생이라 그 분의 후손들과 후학들이 세운 비석이다
복도 많으신 분이로구나 입향하자마자 이 수려한 풍광을 알아보고 유적을 세우고 학풍을 조성하여 명문대가로 만들고 후학들과 유림들이 힘을 모아 이렇게 원학골의 유서 깊은 명소가 되었으니......

여기서 십리 거리에 있는 우리 문중 세거지인 농산의 진양정씨 입향조께서 정착하던 시기(16세기 중반)와 비슷해 내 관심을 자극한 것이다

흐음…..내 발랄한 인문적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런데 왜 거북 등에 비문을 올렸을까?
문화적 관습이고 관행이려니 라고 생각하면 흥미가 없어진다
그만큼 깊이있게 감상할 여지가 줄어든다
아마 거북이 지닌 상징성을 차용하는 것일테지
복되고 서기를 지닌 상서(祥瑞)와 장수에 있을 것이다
그런 상징적 이미지를 차용해서 선현의 발자취와 유훈을 널리 후세 대대로 알리려는 충정이 바탕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거북이 우리 전통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대단한 것 같다
판소리 수궁가에서 거북은 물의 나라에서 뭍으로 파견된 사절이다 사절은 중개자로서의 지략과 소통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거북이는 느림보의 상징이기도 한데 느리지만 끈기로 토끼에게 승리하는 우화의 주인공이다

제 등에 커다란 비석을 짊어진 거북이가 역사의 길을 천천히 걸어간다
선인들의 발자취를 새긴 채 이 땅 위에 살던 선인들을 망각하지 않으며 그 뿌리를 미래에 전하는 사절이 된다

돌거북의 코 안에 종이 보물은 보이지 않아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조금 더 생각을 깊이 하면 이렇게 깊은 뜻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