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비밀번호

댓글 0

사랑방 담화

2021. 12. 2.



새 예금 통장 하나를 발급 받으러 은행에 간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마스크를 내려 본인임을 확인하는 절차에 순순히 응한다
창구의 담당 직원은 네 자리의 비밀번호를 태블릿 pc에 적으란다
나는 당연한 절차로 받아들이며 전자펜으로 적어넣는다.이 절차는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두 번 반복한다
통장 발급은 예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어서 직원은 태블릿에 내 성명과 서명을 요구하는데 도합하면 열 번이 넘는다

금융실명제가 뿌리내려 누구나 이런 절차가 부당하거나 크게 불편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금융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물편을 기꺼이  감수한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러나 이런 사태를 직시하는 내 입가에는 쓴 웃음이 감돈다

한 시절에는 모든 글자를 숫자로 바꾸거나 그 역의 과정을 수행하는 역할을 했었다
적군이 해독하지 못하게 암호를 생산하는 일이었다
쉬운 말과 글을 어려운 숫자로 전환해서 비밀을 유지하지만 상대편에서는 비밀을 해독하니 피아간에 수법이 교묘하게 진화하는 것이다
암호실 입구에는 24시간 헌병이 보초를 섰으며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이제 군인이 아닌 일반인들까지 금융 절차에 다중의 보안 장치를 도입하고 있으니 경악스럽다
비밀번호는 나만의 비밀 루트다
누구로부터도 들키지 않을 미로다
사람은 누구나 의식의 가장 비밀스런 공간에 금고를 두고 있고 비밀 번호라는 파수꾼을 두는 것이다

그런데 이 파수꾼이 진짜 주인마저 몰라보는 촌극이 생겨난게 어제오늘의 일이아니다
비밀번호의 효율성을 높이려다 보니 절차와 수법이 복잡다단해져서 주인의 기억 너머로 이탈을 해 버리니 아연실색할 일이다
주인없는 비밀번호가 이제 주인 노릇을 하는 수도 있으니 가장 완벽한 비밀번호가 아닌가

854123@^gcbd64#=×&☆<~3xjdvbn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