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조명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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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2021. 12. 16.



자연상태라면 어둠에 잠겨 있을 풍경을 잠 못 들게 하는것은 문명의 집요한 추적이다
암흑은 빛을 흡수하는 포용력이 강한 바탕이다 반딧불이의 희미한 빛마저도 포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어둠이 바탕에서 받쳐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둠은 여신이고 음의 기운이다

오색 조명이 무심한 풍경을 깨워 밝은 빛으로 노출시킨다 빛의 성질을 학습한 조명기기들이 현란하게 요술을 부린다
마침내 어둠의 풍경이 무대 위로 올려지며 사람들에게 볼만한 굿거리가 된다
사람들은 잠을 미루고 이 별천지를 즐긴다

높다란 성곽 위의 정자 하나가 금방 착지한 작은새처럼 날렵하다 아직 날개깃을 접지 않은 채로 푸득거린다

기술문명이 만들고 훈련시킨 빛의 요정들의 변신은 경이와 찬탄을 자아낸다 여러 색의 조명이 지상의 여러 지점에서 피사체의 일부나 전체에 쏟아진다
빛은 사람들에게 섬세하고 친절하게 보여주며 나직히 일러준다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하려면 불필요한 것들을 감추어야 한답니다
어둠에 덮인 밤에 만물을 감추고 꼭 필요한 부분만을 선택하여 지각할 수 있지요
분산된 관심이나 시선을 한 곳으로 모으고 동선을 다라 이동해 볼까요
저기 정자의 처마 서카레를 좀 보시지요
근성으로 보지 말고 마음에 일어나는 느낌을 포착하려면 주의가 집중되어야 한답니다
저 꿈틀거리는 용의 잔등에 솟구친 비늘들을 보세요
저 나무의 등걸이 부양한 생선 잔가시 같은 가지들의 인동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세요
빛을 따라 시선이 이동하다 보니 빛이 조곤조곤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응답을 한다
이 밤을 사로잡는 빛은 매력적인 유혹이자 위력적이군요
아! 벌써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연못에 머무르네요
맑고 잔잔한 수면에 잠긴 옛성의 성곽이며 정자에
넋을 잃을 것 같군요
지상의 풍경이 연못에 비친 이 상은 사실 허상에 불과할 뿐이지요
매끈한 수면에 반사된 파생된 상이 원상과 대칭을 이루니 허와 실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말이죠
우리가 실상이라고 굳게 믿는 상이 과연 진짜 모습일까요? 사물의 모습이 우리의 감각기관인 눈의 망막에 나타난 상인데 이것이 참된 상인지 회의감이 드네요
망막이 아닌 기억에 저장된 이미지와 사진으로 찍힌 이미지도 마찬가지겠지요

빛이 제공하는 현란한 화려함에 취하면서도 이것이 참된 진리인지 한 순간의 허상인지 회의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