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정월 초하룻날에 나물 캐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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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벗,지인과 함께)

2022. 1. 2.







친구들과 함께 정월 초하룻날에 나물을 채취하러 간다
사람들은 나물을 캐는 일이 소녀나 여인들의 일이라고 여기지만 그런 낡은 생각을 콧방귀로 날려보내는 이들은 동심을 즐기는 소년소녀들이다

함께 모여 신년맞이 모임을 하던 중에 옛 추억들이 쏟아져 나오고 누군가의 나물캐러 가자는 제의가 나온 것이다
일부는 시큰둥하여 야외 활동에 불참하지만 이런 신선한 욕망들의 행동화를 적극 지지하는 네 사람이 나선 것이다.

어디 보자!
어디로 가야하지?
이 고향 골짝의 전답들은 눈 감고도 훤한 친구가 앞서고 칼을 든 소녀와 호미와 바구니를 든 소년이 나선다 재잘거림과 가벼운 흥분이 뒤따른다

올해 땅을 뒤엎지 않은 묵은 밭에 가야 여러 나물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안다
한 친구는 예전의 추억들을 소환하는 밥수건쟁이(뽀리뱅이), 망태쟁이(광대나물), 내시래이(냉이),칼사래이(잎이 좁은 사래), 시칭구(지칭개)등의 나물을 토속용어로 소개하며 신명을 낸다
반세기가 더 지난 기억들이 꼬물꼬물 살아서 나오며 옛 풍경이 재현되고 죽은 엄마가 살아 돌아온다
나는 동향이면서도 낯선 이름이라 성인이 되어 알게 된 표준어와 결부하여 토속어를 짝짓기를 한다

여럿이 캔 나물이 적지 않다
각자 자기가 캔 것에 이름을 적으라는 익살이 오가며 제가 좋아하는만큼 제 능력껏 채집한 수확물이 함께 모아지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다 작은 것이지만 모두의 공유물이라는 점이다 이 놀이판에서는 사적 소유가 아닌 공동생산에 공동분배라는 유토피아 방식이 적용된다
이 자연스러운 모임은 원시공산사회와 빼닮은 원초적인 삶의 기쁨이 생겨난다

사유재산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욕망의 블랙홀이 돈이 아니던가!
이 로맨틱하고 성스러운 나들이의 체험 과정은 모두 무시하고 수확물을 얼마치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는 무자비한 평가는 실존의 많은 기쁨을 빼앗아 간다

이런저런 나물들을 깨끗이 씻고 다듬는 정성어린 손길들이며 오물조물 나물을 무치는 솜씨는 이 임시 공동체의 모성역을 기쁘게 자임하는 소녀들의 몫이다
머슴아들은 그런 정경을 바로보며 작은 심부름에도 잽싸게 행하는 착한 아이가 된다

마침내 상 위에 오르는 접시 둘, 한 쪽에는 밥수건쟁이와 망태쟁이들은 뒤섞은 나물무침인데 습쓰름한 맛이고 다른 한 쪽은 내시랭이 나물무침이다
나중에 된장찌개에는 내시랭이가 듬뿍 들어가 구수한 풍미를 돋운다
다른 반찬은 조연 배우에 불과할 뿐이라 오늘의 주연급은 단연 나물 무침이다

한 잔 먹세 한 잔을 먹세 소줏잔이 오가며 젓가락들이 부지런히 오가는 나물무침이다

"이 나물 중국산이지?"
"그렇소 뒷산에서 방금 수입한 싱싱한 중국산이오"라며 흥겨운 대꾸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