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동계 정온 선생이 쓴 만월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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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정씨 문중기록

2010. 11. 4.

 

만월당 선조가 살았던 농산리에서 십리 아랫 마을에 있는

위천에 가면 동계 정 온선생의 종택에는 지금도 숙일 줄 모르는 처마와 당당한 기둥을 볼 수 있지요. 

 

오늘 모처럼 동계 선생의 문집을 읽으며

당시의 역사를 생각하며 선생의 대쪽 같은 선비 정신에 흠뻑 젖다가

만월당에  관련된 동계문집을 읽다가 흥에 겨워 아내에게 낭송을 하다가 몇 자 옮겨 적습니다.

 

동계 선생이 44세이던 해에 10년동안 제주도에 귀양을 갑니다. 정인홍에게 서한을 보내 영창대군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했다가 대군이 죽임을 당하자 정 항의 목을 베고 대군의 위호를 추복하라고 주장합니다. 결국 광해군의 미움을 받은 것이죠.

 

선생이 위리안치되어 있을 때 정종주(자는 찬보, 호는 만월당) 선조께서 서찰을 보내 만월당을 지었으니  형에게 기문을 보내달라고 청합니다.   시를 지어 부쳐 주면 판각을 하여 걸어두겠다는 부탁입니다. 선생은 매우 기뻐합니다

 

 귀양살이 하며 얻은 병들이 일순간 사라지고 마음이 온화해지면서

병든 학이 조롱에서 벗아난듯 하다고 합니다.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듯 하다고 합니다.

(이 귀절에서 위리안치의 고통을 시문으로 숭화 시키는 선생의 고상한 문학적 품격이 보입니다.

숨이 막히는 메타포입니다. 자신은 병든 학이요, 위라안치는 조롱입니다. 병든 학이 하늘 높이 날아오른 감격입니다.)

 

 국역과 원문의 시를 읽으며 선생의 선비의 꿋꿋한 지조와 풍류에 감탄에 감탄을 금하지 못합니다.  

 

 집은 높고 텅 비었으니 달이 떠서 비추는구나.

못이 맑고 깊으니 달이 나와서 빛나는구나.

(보름달을 맞아 들이기 위해 기둥을 높이고 텅 비었다고 합니다. 비우면 찬다는 도가적 역설입니다. 이 논리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자연에 대한 관조는, 버리고 비우는 텅 빈 마음의 거울 안에서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만월당 마당에는 원래 못이 있었고 못 앞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었습니다.

은행나무는 제가 어린 시절에 이미 고목이 되어 허물어지고 있었지요.

달빛을 음미하기 위해 선인들은 하늘의 달 뿐 아니라 물속에서 달을 띄웁니다. 이 얼마나 멋진 풍류입니까?)

 

참고로 만월당이 있는 여기가 요즘은 월성계곡으로 더 알려져 있답니다.

달월 별성 즉 달과 별이 빛나는 골짜기랍니다.

 

달이 집을 사랑하는가

집이 달을 사랑하는가

무심히 서로 만나서 이 밤을 함께 하노라

(이 귀절에서 시인과 자연은 극적인 클라이막스에 이릅니다.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없는 물아동체의 경지입니다.

집은 바로 만월당 찬보 아우이자 자신입니다.

사랑하는 아우와 사랑하는 자연이 하나로 동화됩니다.

아무런 사심없이 최고의 환타지아를 연상케 하는 귀절입니다.) 

 

 

 

 만월당 본 건물입니다.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최근에 보수를 완료했습니다.

 

팔완당과 만월당이라는 편액이 나란하게 걸려 있습니다..

팔완당(이름은 몽서, 호는 팔완당) 선조는 만월당(이름은 종주 호는 만월당) 선조의 조부입니다.   

 동계 정온 선생이 제주도에서 보낸  친필 서찰을 판각한  만월당기입니다.

위에서 이 글을 제 나름대로 음미했습니다.

 만월당 중건에 관한 기록입니다.

 

 만월당 정문입니다.

  만월당 마당에 정용 의사 비문이 있습니다.의사는 만월당 선조의 숙부랍니다

만월당 선조의 친형님 두분(익주, 광주)은 숙부와 함께 진주성 전투에서 장열하게 전사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