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중파조 시향을 올리며 종인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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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정씨 문중기록

2010. 11. 25.

진양정씨 은열공파는 진경 할아버님을 중시조로 모시고 있는데 중시조께서는 세 분의 손자를 두셨지요.

맏이는 유, 중간은 손, 막내는 근입니다. 우리 중파 종친회는 정 손 할아버님의 직계입니다.

중파의 제일 큰 집은 거창 농산 문중이며 남해 문중과 전주,익산 문중 그리고 고령 문중으로 나누어진답니다.

 

2010년 1월 20일(토요일) 효우사에서 파조이신 종부시승공 선조님에 대한 시제를 올리고 모두 함께 찍은 사진이랍니다.

모두 45분이 참석하여 제사를 지내고 종친회의를 하며 오붓하고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답니다.

이런 사진 자료나 사이버상의 글 한마디도 우리 문중의 살아있는 기록이 될 것이기 때문에

저는 조심스럽게, 기쁜 마음으로 자료들을 정리해 두려고 합니다. 

 

사당에는 효우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답니다.

효성과 우애있는 선조를 모신 사당입니다.

 

고려 공민왕 때 왜적이 하동군에 침입을 하자 진주 사람 정임덕이 일찍이 이 고을 수자리를 살다가 마침 병이 났는데

그의 아들 유와 손이 아버지를 부축하고 피해 달아났다.

적이 뒤쫒아 오므로 유가 두서너명을 쏘아 죽이니 적이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였다.

갑자기 적 한 명이 칼을 휘두르며 뛰어와서 임덕의 뺨을 찌르므로 손이 몸으로

가로막고 적 4명의 목을 베었으나 마침내 적에게 죽고 말았다. 일이 조정에 알려지니 유를 조부시승에 임명하였다.

(고려사절요 제29권22쪽, 고려31대공민왕22년(1373년) 3월 난의 기록)

 

 

선조가 얼마나 벼슬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귀한 덕행으로 모든 이들에게 모범이 되어 역사 속에 살아있는 분들에게서

우리는 진정한 후손으로서 자아정체감을 가지고 조상을 섬기게 됩니다. 

 

훌륭한 선조를 모신 후손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입니다.

 

 멀리서 바쁘신 중에서도, 연로하신 분들까지도 제사에 참석하시고

문중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니 종친회가 잘 운영됩니다. 

 

  전주익산 문중의 어른들께서 주련을 모두 설치하시고

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계시는군요.

 시제 : 선조 판도판서 임덕공의 아들 형제분이 왜적을 방어하고 아버지의 죽음을 벗아나게 한 옛 사적을 추모하며 느껴 읊음

 

주련은 기둥이나 벽 따위에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글귀로 주로 한시의 귀절이랍니다.

본 주련의 글귀는 만회당 정현교님( 종부시승 손공의 15세손인 익산문중 종인)께서 1715년 을미년에 쓰신 글을

서각가인 종인 정재은님(백파, 함안거주)께서 글을 쓰고 서각을 하였습니다.

 

  

 본 주련은 성재(재현) 어른의 큰 뜻과 노고로 제작되었습니다. 

 

익산문중의 종인이신 재현님께서 효우사 주련 설치와 관련하여 역사적 기록들과 주련에 담긴 깊은 교훈을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사당 내부에 걸린 효우행실도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습니다.

 참으로 존경하는 분이고 배워야할 것이 많은 분입니다.

전주 익산문중의 오랜 세계 논쟁을 철저하게 고증하여 해결하고 족보를 편찬하여 고유제를 올리기도 하였답니다.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신 분인데 차후로도 좋은 말씀이나 기록들을 소중하게 모아두었다가

문중의 자료로 활용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사를 지내고 음복을 하는 모습들입니다.

우리 중파 종친회는 어느 문중못지 않게 깊은 정이 오가는 좋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