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정온 선생 유적지 모리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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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벗,지인과 함께)

2011. 4. 20.

 

 

나는 어려서 부터 동네 남서쪽 봉우리에 있는 모리를 바라보며 살았다.

선친께서는 동계 선생과 정희량의 지난 역사를 나에게 이야기 해 주었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오늘 따뜻한 봄날 친구들과 함께 가까운 모리재를 갔다.

 

모리재는 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강선대에서 2킬로 산중에 있는 동계 정온 선생유적지이다.

어린 시절부터 어렴풋이나마 동계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자란 터라 관심이 많은 곳이다.

만고의 충신인 선생께서 인조가 항복을 하는 삼전도 굴욕을 당하자 자결을 시도하고 망국의 치욕으로 은거했던 곳이다.

그는 철저하게 은둔하고자 동리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아무개 마을이라는 뜻의 모리라는 익명을 스스로 지은 것인가?

 

지금은 후손 한 분이 직계 조상의 덕을 기리며 유적을 잘 돌보고 있었다. 

 

동계 선생은 당시 이 고을의 뛰어난 정치인이자 문인이었다. 진양정씨 세거지인 농산 문중의 기록인 농산세헌에 보면

몇몇 기록들이 있다.

 

동계선생의 조부인 휘 정숙 어른은 진양정씨 가계의 휘 순 어른의 셋째 사위이다.

진양정씨 문중의 만월당 휘 종주 어른(휘 손 어른의 증손)과 동계 선생은 서너살 차이로 동계선생이 연상인데

서로 가까운 곳에 살면서 의형제의 교분을 가지고 살았다.

농산에 만월당은 휘 종주 어른이 세운 집인데 그곳에 동계선생이 지은 만월당기가 판각되어 있다.

동계 선생이 제주도 대정에 귀양을 갔을 때 만월당 어른이 사람이 보내서 기문을 보내 달라고 하자

매우 기뻐하며 아름다운 글을 보내주었던 것이다.

 

참고로 당시의 이 고을에서 존경받는 지식인으로 은진 임씨 문중의 갈천 임훈 선생이 있는데

그 분은 진양정씨 문중의 팔완당 정몽서 어른과 내외종 간이다.

 

즉 정 순 어른의 부인이 갈천 어른의 고모이다. 

현재 갈계 은진 임씨 문중에서 추앙하는 갈천 임훈 선생과

첨모당 임 운선생의 부친인 임득번 어른과 남매가 되는 분이 정 순 어른의 부인이다.

언뜻 보면 복잡한 것 같아도 당시 이 고을에 영향력 있는 문인들이 서로 긴밀한 혈연적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 황산 신씨 문중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     

 

 

 

 

사당으로 지은 집인데 지금은 따로 제사를 모시지 않고 다른 곳에서 제향을 올린다고 했다.

 

 

구소는 비둘기 둥지라는 뜻이다. 동계 선생께서 73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말년 3년간을 머문 집인데 나무 몇개를 구해서 서카래를 만들었는데 비둘기 둥지 같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선생이 쓴 모리구소기라는 책에 그의 절절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남한산성에서 내여 온 후 늙고 병든 몸으로 세상에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 몸으로 모리에서 마지막 생을 살아가는 충신의 처연한 심정이 곳곳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