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06 2021년 05월

06

전원생활의 즐거움 호밀밭에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분다 바람은 매우 가볍고 충동적이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제 몸을 갖지 않는다 바람은 그저 욕망대로 움직인다 차분하지도 않고 끈기와 참을성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위엄 따위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 바람은 기운이고 기세다 바람은 도미노 게임을 즐기는 유희다 호밀들이 도미노처럼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다 가늘고 긴 허리 탓으로 일부는 넘어져 일어나지 못한다 오늘은 바람의 장난기가 심하다 바람은 크고 강한 것보다는 길고 연약한 것들을 데리고 흔들며 제 위력을 행사한다 뒤에 선 바람이 앞에 선 바람을 떠밀자 앞 바람이 쓰러지고 그 바람에 또 앞에 선 바람이 쓰러지고 드디어 호밀의 등을 밀어 쓰러지고 또 다른 호밀이 쓰러진다 그 바람이 마침내 닫힌 문을 통과하여 바라보는 내 앞가슴을 밀어 내가 쓰러진다

06 2021년 05월

06

전원생활의 즐거움 상추밭에서

상추 키가 손톱만큼 자라는 중이다 밭이래봤자 반평도 안되지만 단촐한 식구에게는 과분할만큼이다 보름 전쯤 상추가 씨를 뿌렸는데 머리를 내밀고 올라온 상추가 대견스럽다 그러나 상추와 함께 머리를 내민 풀들이 대지의 공유권을 내세우며 함께 자라고 있다 봄볕은 공평하게 내리쬐는 것이며 대지는 자비로워 차별하지 않는다며 당당히 가슴을 펴고 있다 밀집모자를 쓴 사람 하나가 이어폰을 꽂은 채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쪼그려 앉아 풀을 뽑는다 상추가 아닌 풀들을 뽑아내는 것은 이 밭을 상추 전용지로 계획하기 때문이다 차별하며 솎아내는데 엄지와 검지가 절묘하게 협력을 한다 작업하는 중장비의 코끼리 집게처럼 강력한 힘으로 머리통을 찝어 올린다 방금 명아주 연약한 풀들이 저항 한 번 못하고 뿌리 채 뽑혀나간다 자연은 간택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