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24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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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교학상장

토란씨를 묻어두고 싹을 기다린다 올해는 좀 늦다 싶어서 안달이 난다 흙이 굳어서 그러려나 싶어 살짝 파보니 토란 정수리가 송곳처럼 뾰죽하다 밭을 어슬렁거리며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을 안하는 것도 아니다 노동과 유희 사이를 오가며 한가롭다 밭은 농산물을 생산하기도 하지만 여러 씨앗들이 발아하며 자라고 꽃을 피우는 생명의 땅이며 사람과 농작물이 상호작용을 하며 교감하는 만남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리고 밭은 내가 나를 가르치고 배우는 학습의 현장이기도 하다 순간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이 떠오른다 나는 때때로 나를 가르친다 가르치는 직업으로 반평생을 살았지만 돌아보니 허사라 부끄럽기 짝이 없다 가르치던 고약한 버릇이 남아 있지만 받아줄 사람이 없으니 자신을 가르치게 된다 그래서 나는 학생이 ..

22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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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광장에 홀로 앉아

거창군청사 광장에 지금 내가 있다 홀연히 떠오르는 생각 하나를 잡아본다 산다는 것은 시공의 좌표에서의 이동이다 나의 하루하루를 점 하나로 표시하고 하나의 축은 공간으로 또 하나의 축은 시간으로 설정해 본다 무수히 많은 점들이 내 인생의 좌표에 찍혀있다 이 좌표는 수학 시간에 칠판에 그리는 평면상의 좌표가 아닌 3차원의 좌표다 중고등학교 시절 6년의 좌표를 거슬러 오르는 피드백은 사유의 힘이다 그러나 이미 찍힌 좌표가 변경되는 것은 아니며 다만 기억으로 회상해 볼 뿐이다 까만 교복을 입은 소년의 내가 이 거리를 지나간다 자취를 하며 고달픈 생활을 하지만 꿈을 키우는 시절이기에 고단할 뿐 슬프지 않았던 시절을 회고하는 초로의 내가 말없이 홀로 앉아 있다 예전과 현재의 차이와 동일함을 견주어 본다 어떤 것은 ..

28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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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북상 임시 헬스장

자주 애용하는 헬스장이 임시로 이전을 했다 아주 오래 전에 면사무소 본관으로 사용했던 건물은 역사적 유물로 보존하고 새 건물이 건립될 때까지 소정의 구보건소 건물로 옮긴 것이다 채 열명도 사용하지 않는데도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 애쓰는 면사무소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이런 시설이 있는데도 주민들이 사용하지 않는 걸 보면 딱하기만 하다 농삿일에 바빠서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굳이 운동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일하는 것과 운동의 차이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장기 출타가 아니면 매일 운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7km 거리를 오가야 하지만 운동을 위한 작은 수고라는 긍정적 마인드를 가진다 기구가 많은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것은 갖추어져 있어 하루에 2시간 정도를..

28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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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윤여정에게 박수를

윤여정의 목소리는 탁한 저음이라 청아한 소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여성 배우로서는 작잖은 흠결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빼어난 몸매와 미모를 갖춘 것도 아니고 홀몸으로서 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어떤 배역도 사양하지 않았던 눈물겨운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가 오스카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었으니 국민적 경사요 만인의 심금을 울린다 역시 세계 최고의 오스카상은 배우의 진정한 자질을 선별하는 눈이 있다 화려한 미모와 청아한 목소리나 대중들의 인기가 주된 평가 기준은 아님이 확실하다 시상식에서 배우 윤여정의 유머가 화제다 상투적인 소감이 아니라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표현 그리고 유머러스한 소감이 딱딱한 분위기를 깨고 신선한 느낌과 따스한 인간애가 스며나왔다 유머는 순간순간 솟아나오는 재치와 즐..

21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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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버스 안에서

읍에 가는 버스 뒷자리에 앉으니 여러 뒷 모습들이 보인다 5일장을 보러 가는 노인들, 천원짜리 지폐를 꼭 쥔 채 버스 문턱을 겨우 오르며 끙 소리를 토한다 윤기라곤 없는 머리칼들이 찔레덤불처럼 엉켜있다 새떼들이 다니는 길 아래에는 채 감추지못한 은발이 드러난다 푸른 봄날에는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돌려보머 한참이나 매무새를 가다듬었을 오래 전의 마른 추억을 회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참 속절없는 세월이다 내 한 몸 건사한다면 마른 빗질 몇 번만으로도 가지런하련만 지친 삶에 그만한 여유조차 부족한 것을….. 뒷 좌석에 앉은 내가 기력이 쇠하여 문이 가까운 좌석에 앉고 내 뒷꼭지를 누군가 보며 지금의 나같은 생각을 하겠지 이제 버스가 시장입구에 모두를 내려두고 떠난다

14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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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어느 응수의 멋진 말 한마디

매받이꾼 한 사람의 매 사냥이 방송에 소개된다 야생의 매를 길들여 사냥하게 하는 겨울철 놀이인데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응수(鹰手)의 한 마디 말에서 매사냥의 품격과 멋이 풍겨져 온다 매사냥은 경계를 즐기는 것이란다 사람과 자연(새)의 경계, 야생과 순치의 경계인 것이다 사냥의 욕구를 유발하기 위해 먹이를 조절하는 법이며 사냥을 한 후 바로 사냥감을 빼앗지 않고 조금 먹을 수 있게 하는 보상이라든가 매가 야생으로 날아가거나 주인에게 돌아오는 그런 경계를 즐긴다고 한다 매는 사냥을 하는 로봇이나 드론 같은 기계가 아니란 것이다 매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존중하면서 사람과 새와의 신뢰와 교감을 통해 사냥의 전리품를 얻기도 하는 것이다 매 사냥이 새를 포획하는 무자비한 사냥이나 사람..

08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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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소 싸움

이중섭의 황소 그림을 오래 본다 황소의 당당한 기세를 역동적으로 표현한 그림을 판자에 새기면서 까지 그림을 감상한다 그러다 소싸움에 까지 사유가 확장된다 코뚜레에 꿰어져 아이의 고삐줄에도 거역하는 일이 없이 온순하기만 한 소다 쟁기를 끌며 큰 눈을 껌뻑 거리며 집안 일을 돕던 소를 예전에는 확대된 가족이나 식솔처럼 여기곤 했다 어린 시절 마을의 친구들은 소꼴을 베어와서 쇠죽을 끓이는 일과 산에 방목하고 해질 녘에 데려오는 일로 밥값을 톡톡히 했다 소는 농가의 노동력이요 동반자요 살림 밑천이었다 그런 순하디 순한 소도 서로 다툴 때가 있다 황소는 수컷의 본능적 패권 의식을 가지나보다 황소끼리 서로 노려보다가 분기탱천하여 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머리를 맞대고 뿔로 공격하머 육중한 몸으로 밀어붇인다 밀리지 ..

07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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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밝은 불꽃처럼

낮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달이 뜬다 천지가 밝은 까닭이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야 이루어지는 우주의 자명한 이치다 찬란한 햇빛과 은은한 달빛이 교차되고 상호 보완하면서 우주 만물이 생성되고 변화해 간다 해와 달이 품은 상생의 이치다 해와 달이 조합된 밝을 명자에 담긴 우주적 의미다 내 이름을 밝은 불꽃인 명섭(明燮) 으로지은 것은 선친의 의뢰를 받은 운명이다 밝음과 뜨거움으로 살라는 운명인가 보다 환하기만 한 대낮에도 하늘 어딘가에서 빛을 잃은 달을 볼 수 있어야할 것이다 어두운 달빛이 은은한 밤에도 곧 떠오를 태양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밝은 눈이란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것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가려지거나 잠재되거나 은유된 것들을 볼 수 있는 높은 안목일 것이다 그리고 뜨거운 불꽃을 내며 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