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13 2022년 06월

13

전원생활의 즐거움 연못 청소

손바닥만한 연못을 파서 물을 흐르게 하니 소박한 즐거움이 있다 초청하지 않아도 수생식물들이 자라고 개구리며 물벌레들이 함께 공생한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감정이 순화되고 사유는 깊어진다 오늘 아침에는 부유물이나 침전물을 건져내는 용구의 헐거워진 조임을 단단히 묶은 후에 연못을 청소한다 유입되는 수량이 많지 않아 연못은 녹조류가 많이 생기고 바람에 날려온 낙엽들로 깔끔하지 않다 그래서 용구로 연못을 휘휘 저으며 녹조류나 침전물을 끌어낸다 지금 연못은 대혼란 상태다 청명한 하늘빛을 품은 수면은 가라앉았던 이끼와 흙들로 분탕질한듯이 온통 흙탕물이다 평온하던 개구리들이 난리통을 피하려 피신하기 바쁘고 가라앉아 고요하던 물벌레들이 용구에 떠올려진다 그러나 스스로 물속으로 걸어갈 것이다 지금 연못은 큰 변화의 소용..

11 2022년 06월

11

전원생활의 즐거움 기운생동하는 초여름

싱그런 초여름날 아침이다 TV를 끄고 창문을 활짝 연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를 잠시라도 멀리하며 자연과 소통하려 마음의 문을 연다 창문 앞 단풍나무는 며칠 전과는 환연하게 다르게 푸르러지고 성장세가 강하다 뻐꾹새 소리가 청아하게 빈 하늘에 새로운 파동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새는 한 가지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이번에는 딱다구리가 또르르 또르르 나무를 쪼는 소리가 스님의 목탁소리처럼 들린다 하늘은 비어있는듯 하지만 기가 충만하다 나와 새와 나무는 모두 기운을 가지고 생동하며 살아가는 생명체들이다 중국의 기철학자 장제는 태허는 음양을 낳는 기의 본체이고 가시적인 형상은 기의 이합집산에 의한 일시적인 형상이라 하였다 서양의 원자론적 우주관과 달리 동양의 원기론에서 사물은 유기적인 기의 연속적인 생명작용이라 한다 ..

02 2022년 06월

02

전원생활의 즐거움 물 주는 기쁨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아침마다 과수와 채소에 물을 준다 물뿌리개를 기울여 뿌리는 물이 마른 땅을 흠뻑 적시고 나는 뿌듯한 기쁨과 묘한 쾌감을 누린다 자동으로 급수하는 시설로서는 누릴 수 없어 나는 오로지 수동식 물뿌리개로 일을 한다 이 물주기가 일상화되어 팔뚝에 탄력이 늘고 사유가 깊어진다 수분을 갈구하는 농작물 뿌리로 스며드는 물은 생명수를 살포하는 증여의 기쁨이다 물줄기를 잎으로 듬뿍 받고 흘러내린 물이 뿌리로 스미는 이 행위는 혜택을 베푸는 시혜의 기쁨이다 내 작은 수고가 저들에게는 은혜가 된다 그래서 한 방울의 물도 옆으로 흐르지 않도록 집중하며 정성을 다한다 그런데 흙이 말라 파삭파삭하여 일기 예보로 비 소식을 기다린다 비를 넓게 뿌리며 보편적 시혜자인 대자연이야말로 진정한 주인이요 시혜자란 ..

31 2022년 05월

31

전원생활의 즐거움 으아리 은하계

뜰에 많은 종류의 화목들이 자라고 있다 그 각각이 고유하고 독특한 점들을 가지고 있어 차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맘 때 내 감성을 자극하는 꽃이 작은으아리다 낱낱의 꽃들이 화려하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작고 하얀 꽃에다 단순하다 그런데 한 달여만에 이들이 이루는 덤불이 마치 자치구라 불릴 정도로 확장세가 경이로워서다 겨울에는 있는듯 없는듯 하다가 4월에 연둣빛 순이 쑤욱 정수리를 내밀며 여기저기 몇군데서 솟아오르더니 연약해 보이는 가지에 많은 마디들마다 섬세한 촉수로 영역을 확장하며 세를 불리는 것이 경탄스럽다 매일 많이 다니는 입구에 내 눈길을 끌며 기쁨으로 이끄는 으아리 덤불에서 앙증스런 하얀 꽃들이 무수히 피어나온다 오늘 덤불에 이름 하나를 지어준다 으아리 은하계! 하얀 별이 반짝인다

25 2022년 05월

25

전원생활의 즐거움 작약 - 뜰의 영화

오월의 기운이 무르익어가는 뜰의 앞쪽 한 켠에 내 시선을 확 끄는 꽃이 피고있다 작약! 분홍 꽃받침이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안쪽에는 하얀 꽃잎들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복주머니처럼 풍성하고 현란한 꽃이 이 뜰을 영화롭게 만든다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절세 가인이 여기에 오셨구나 유혹의 눈길을 보내며 나를 새 희망으로 가슴 설레게 하는구나 작약은 뭇꽃들의 부러움과 질시를 받지만 우쭐대지 않으며 때가 되면 그 풍성한 잎을 떨구고 찬란한 색을 허물지 그 옆에 있는 미스김라일락도 무늬둥글레도 삼색조팝도 그 화려함을 부러운듯 바라보고 있다 언뜻 연상되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예전에 마을의 축제인 풍물패들의 고깔에 이런 꽃이 피었겠구나 온갖 세파의 시름을 잊고 즐거움을 누려보자며 신명을 돋우는 풍물패들의 모자가 되었던 꽃이..

24 2022년 05월

24

전원생활의 즐거움 쪽파씨를 갈무리하며

쪽파씨를 갈무리한다 한 달 전에 꽃대가 올라오고 잎줄기가 비실비실 마르며 쓰러지는 때에 캔 쪽파씨를 그늘에 말려두었다가 이제 손질한다 지난 해에 늦여름에 친구가 가져다 준 쪽파씨를 심고 가꾸어 틈틈이 뽑아먹었는데 쪽파의 세대 교체 시기가 된 것이다 가위로 마른 줄기를 자르며 바싹 마른 실뿌리를 만져보며 풍성한 사유에 잠긴다 시장에서 사고 파는 문제가 아니라 더 높은 생산성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음식의 재료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다 세대교체라는 막중한 대업의 과정을 음미하고 깨닫는 것이다 여러 해동안 밭에 파를 심었지만 이번처럼 파의 번식에 대해 깊이 생각해 적이 없었다 5월이 되니 잎줄기가가 마르고 쓰러지고 꽃대가 올라오는 이런 과정들이 파씨에 내재된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 시기와 온도는 지역별로 다를 수..

23 2022년 05월

23

전원생활의 즐거움 함박꽃이 피고 지고

함박꽃(산목련)이 개화한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을 찬미찬송하는 꽃 중에서 정장을 갖춘 미의 사절이고 할까 그러나 영화나 영광은 다 누릴 때가 있는 법이려니...... 이미 져서 누렇게 퇴색된 것과 아직 몽우리로 돌돌 뭉쳐있는 꽃도 있다 꽃이 진다고 아쉬워하지 않으며 갓 피어난다고 으쓱거리지 않으며 순리에 순응하는 꽃을 보고 배운다 함박꽃이 피는 때가 한 나무 안에서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함박꽃은 완전한 정장으로 갈아입은 신사와 숙녀의 느낌이 난다 간편하게 옷을 걸치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법식에 맞게 차려입은 중후한 느낌이 난다 사람들은 한창 핀 꽃에만 카메라를 집중 시키지만 나는 개화의 시초부터 낙화까지 전 과정을 사유한다 피어있는 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꽃은 지기 때문에 아름답다

20 2022년 05월

20

전원생활의 즐거움 찔레꽃이 피어나고

우리 집 담 너머 황무지에 찔레꽃이 일가를 이루더니 꽃을 피운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아저씨 이 땅 주인이세요? 아니, 주인은 멀리 계시단다 여기에 언제나 오신대요? 당분간은 오시지 않을 것 같구나 안심하렴 살았다 실은 땅 주인이 오면 우리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니까요 찔레는 사람들에게 박대를 받는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온 몸을 가시로 무장하고 있는데다 큰 덤불로 일대를 점령해 버리니 혐오 수종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찔레꽃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조금씩이나마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있다 척박하고 외진 곳에서 억척스레 살아가는 강인한 생명력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때문이다 나도 지난 겨울에 근처에서 손목만한 크기의 찔레 나무를 큰 화분에 옮겨 심었다 찔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