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묵유거(禪墨幽居)

소소한 일상적 삶을 사유의 장독에서 삭혀낸 낭만적인 글과 이야기

29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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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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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은유의 미

은유는 거간꾼이요 중매쟁이다 전혀 닮은 구석이라곤 없는 둘 사이에서 얼토당토 않을 것 같은 꼬투리 하나를 잡아다리를 놓는다 궁합을 맞추려 사돈의 팔촌까지 끌어오는가 하면 키를 늘리고 살을 찌우고 앉히고 눕히며 성형에 화장을 하다 절묘하게 결합한다 마침내 둘 사이에 아름다운 인연이 생겨난다 은유는 전혀 이질적인 두 개념, 관념이 결합하는 비유다 서로의 공통점이 감추어지거나 가려져 있어 암유라고도 한다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유사성을 찾아내는 것은 탁월한 창의의 선물이다 펄럭이는 깃발에서 삶의 소리없는 아우성을 읽는 시인의 탁월함이다 은유는 세계를 연결하고 확장한다 하나의 개념이 보조 개념으로 의미를 확장한다 어머니가 기도와 눈물과 떡으로 연결되고 짝을 이루며 원래의 의미를 확장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은..

09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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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단원의 그림 감상- 타작

타작은 벼농사의 많은 작업 공정의 최종적 공정이고 결실의 축제다 농사를 직접 지어본 경험이 없는 이들은 타작으로 알곡이 쌓이는 기쁨이 얼마나 큰 가를 피상적으로 이해할 뿐이다 절대 빈곤으로 식솔들이 굶주림을 피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쌀이야말로 구원의 선물도 같은 것이었다 단원의 그림을 보노라니 예전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논 12마지기에 밭 500평 정도로 농사를 지은 부모님이라 농경 사회의 추억을 반추하기에 충분하다 아버지는 문전옥답에서 베어놓은 볏단을 좁은 논길을 거쳐 지게로 져다 날랐다 그 때는 발로 밟아서 탈곡기(우리는 공상이라 불렀다)를 돌리고 볏단의 알곡을 털었다 단원의 그림 속에는 공동노동을 하는 농부들의 협업과정이 잘 드러난다 개상이나 벼훑이를 이용하여 알곡을 분리한다 농부들의 노출된 몸에..

07 2021년 02월

07

청곡의 글방 풍속화 - 길쌈하는 여인

길쌈은 어린 시절 자주 목격하였던 정겨운 풍경이다 우리 고향마을은 60년대 중반까지도 삼농사와 삼베를 짰었다 거창의 삼베일소리는 지역의 뜻있는 인사에 의해 민속놀이로 전승되고 있다 당시의 아련한 추억을 회상해 본다 출렁거리는 삼밭의 삼잎, 삼곶에서 쪄낸 삼 내음, 껍질을 벗겨낸 하얀 지릅대기(삼 몸통의 방언), 삼잎을 삼는 여인의 하얀 허벅지, 삼실을 길게 늘여 풀먹이는 장면, 베틀에 앉은 여인의 자태 등이 기억의 심연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그림 속, 베틀에 앉은 아낙의 뒤에 손주를 업은 시모가 지켜보고 있다 며느리의 일손을 바라보며 틀림없이 도움말을 건넬 것이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가르침이라 여길 것이고 며느리 입장에서는 잔소리로 여길 것이다 전통 사회는 인간관계의 상하 주종적이고 수직적 질서를 중시하..

06 2021년 02월

06

청곡의 글방 바둑과 무협지 - 바둑대회 우승기념

한 시절 탐독했었던 무협지 소설을 빼닮은 바둑 시합이 벌어진다 무림계를 주름 잡으려는 각 문파의 고수들이 중원의 모처에 결집해서 최고수를 가리는 무술대회처럼….. 바둑판을 무림의 결투와 연상하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이런 식의 사유는 단조로운 세상을 상상으로 이끌어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바둑계의 고수들이 천하 제일의 타이틀을 쟁취하는 시합을 한다 세상의 이목을 집중 시키자면 어마어마한 상이 따라야 하는 법이다 부와 명예가 걸린 대회에 출전한 기사들은 놀랍게도 미소년들이다 각 문파가 심혈을 기울여 조련한 천재들은 뛰어난 두뇌와 공부로 오로지 이 분야에만 올인하는 무서운 집념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의 최고의 스승은 인공지능이다 능히 바둑의 신(바신)이다 바신은 모든 상상이 불가할 정도의 바를 속도로..

03 2021년 02월

03

청곡의 글방 고양이 습격 사건

한 농가에서 발생한 순간적 장면을 포착한 김홍도의 풍속화에 미소와 함께 눈길이 한참 머문다 누가 보아도 분명한 스토리가 숨김없이 노출되어 있다 고양이가 병아리를 낚아채 간다 주인 부부의 당황스러운 동작이 절묘하고 어미 닭이 벼슬을 세우고 고양이를 쫒는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런 예기치 않은 상황을 그리지 않는다 농가의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그려 안락하고 풍요한 소망을 반영할 것이다 단원의 예술가로서의 출중한 안목과 대담함이 드러난다 화가나 주인의 일반적인 소망을 그리는 게 아니라 삶에서 발생한 하나의 파편 같은 삶의 순간에 주목하는 기발함이 놀랍다 일상적인 삶에서 파악하기 어려운 삶의 결이 의외적 상황에서 여실히 드러나기도 한다 고양이의 습격으로 평화가 깨지고 긴장이 조성된다 평소에 점잖기만 하던 주인..

02 2021년 02월

02

청곡의 글방 돌의 꿈

돌들이 꿈을 꾼다 억겁 시간의 족쇄에 갇힌 차갑고 무겁고 질긴 몸뚱아리에서 훌훌 벗어나고 싶어 무엇인가 되고 싶어 어디론가 가고 싶어 하나의 의미이고 싶어 간절한 소망이 꿈이 된다 나무가 되어 온 몸에서 열병처럼 반점이 돋아나더니 이윽고 파릇파릇한 움이 생겨나고 마침내 옆구리에서 가지가 자라 활개를 펼치니 이번에는 새가 되어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한 친구에게서 돌 한 개를 선물로 받는다 전신이 새까만 오석, 한 쪽이 깨어져 벌어져 있고 오랜 세월로 상처가 아물어 매끈하다 마치 포효하는 듯, 입을 크게 벌려 무언가를 외치는 듯 의미를 부여하며 눈 가까운 곳에 둔다 볼 때마다 그 의미는 반복되거나 수정되리라 돌 하나가 여전히 꿈에 취해 있다

31 2021년 01월

31

청곡의 글방 수석 한 점을 감상하며

어떤 계기로 수석 좌대를 검색하다가 명석 한 점을 보게 된다 뱀 두 마리가 로맨스를 즐기는듯한 문양이 어찌나 사실적인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살모사의 삼각형 머리 모양과 구불구불한 몸통과 비늘까지 실물과 유사해 손으로 돌을 잡기가 망설여질 정도다 수석 애호가인 친구에게 카톡으로 한담을 전하니 이미 본 명석인데 너무나 생생해서 깊은 맛이 아쉽다고 한다 역시 수석 애호가의 뚜렷한 주관과 심미안에 박수를 보낸다며 재미있어 한다 나는 열정적인 탐석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수석을 좋아하지 말란 법은 아니리라 이럴 때는 슬쩍 끼어들어 장황설을 늘어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흔하디 흔한 돌을 미적 대상으로 승격 시켜 수석 애호라는 장르를 만들어 낸 것은 놀랍다 수석은 우연적인 자연현상으로 생긴 돌이 인간의 미의식으로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