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식탁 엿보기

(로얄)쁘리 2011. 8. 2. 22:57

엔돌핀술이야기,우리의 애물단지 술에 대한 이야기를 흉부외과 전문의가 들려드립니다.
 

아마 소주라는 말만큼 우리 국민의 정서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단어도 찾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오징어를 거칠게 찢어 먹어가며 ‘카~’ 하고 들이키는 한 잔의 소주는 오래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의 애환과 삶의 질곡을 대변해 주는 상징이 되어 왔습니다.

막걸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민주인 소주는 고려 시대에 몽골족의 원나라를 통해 들어 왔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당시의 소주와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소주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원래 소주는 소줏고리라는 전통 단식증류기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는 이 소줏고리는 비록 그 생산성은 현저히 떨어지지만 원 재료의 향과 풍미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사실 근대화 이전의 우리나라 실정으로는 오래 동안 소줏고리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일제 강점기 때 사정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이미 서양식 연속증류기가 도입되어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고농도의 알코올을 대량 생산하는 방법이 널리 채택되고  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단순하고 복합미가 없는 저급품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연속증류기에 의해 생산된 알코올은 오히려 산뜻한 맛에 불순물이 없는 첨단 제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95% 고농도 알코올 주정에 물을 섞어 희석시킨 새로운 형태의 소주가 등장한 것도 바로 이런 배경 아래였습니다. 일제 강점 하에 있었던 우리나라도 자연히 그 새로운 추세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치며 희석식 소주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서게 된 것은 1965년 삼학에서 만든 30도의 희석식 소주가 등장하면서 부터였습니다. 당시에는 만성적인 식량 부족 때문에 쌀을 원료로 하는 술의 제조를 1964년 12월 제정된 양곡관리법에 의해 정부 차원에서 금지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쌀을 증류해서 만들어야 하는 증류식 소주를 만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옥수수나 고구마를 사용하여 만든 주정을 바탕으로 한 희석식 소주가 점점 대표적인 국민주로 자리 잡아 가게 된 것입니다. 사실상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소주는 희석식 소주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당시 30도 소주는 지금의 소주에 비해 도수가 매우 높은데다 거친 맛 때문에 한잔 쭉 들이키면 저절로  ‘카~’ 하는 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쨌든 그때는 소주의 전성시대로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수백여 개의 소주공장에서 저마다 각각의 상표를 붙여 소주를 팔았습니다. 특히 ‘진로’ ‘명성’ ‘삼학’ 등 3대 브랜드는 1960년대∼197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 시절 소주야 말로 생계유지조차 힘들었던 서민 애주가들에게는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73년에 8년 만에 희석식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25도로 낮추어졌습니다. 이 25도 소주는 이후 오래 동안 우리나라 소주의 표준 알코올 도수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또 이 해에는 과거의 소주공장 난립에서 ‘1도(道) 1사(社)’ 제도가 시행되면서 소주 상표는 보해, 금복주, 대선, 선양, 경월 등 10가지로 줄게 되었습니다. 이 제도는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지금은 사라졌지만 아직까지도 판매에 적지 않은 심리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윽고 1998년(일부 지방 소주를 기준으로 할 때 1996년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무려 25년 동안 소주 도수의 표준으로 인식되던 25도 소주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경제성장과 함께 건강을 중시하게 된 사회풍조와 여성 음주인구의 증가 추세에 맞추어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23도 소주가 출시하게  된 것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저도화 경쟁은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23도 소주가 출시 된지 얼마 되지 않아 2000년-2001년에 걸쳐 22도 소주가 등장하더니 2004년에는 21도까지 도수를 낮춘 제품들이 등장하였습니다.

드디어 2006년 2월에는 20도의 두산 처음처럼과 20.1도의 진로 참이슬이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20도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면서 저도화를 지속하더니(사진1), 마침내 그 해 8월에는 20도 아래의 19.8도 참이슬 후레쉬가 전격적으로 출시되게 됩니다. 이후 대부분의 지방 소주업체도 이러한 추세에 가세하여 심지어 16.9도 제품(대선소주의 씨유, 무학소주의 좋은데이) 까지 선보입니다(사진2).

 

이후 다시 약간 높은 도수의 소주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도 있으나 아직까지 저도화의 전반적인 추세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아무튼 소주의 저도화 바람은 애주가의 입장에서 전혀 상반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소주 특유의 맛이 없어졌다.>, <소주로 애환을 달랠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는 부정적인 반응에서부터 <아무래도 건강에는 좋은 것 같다.>, <술이 약한 사람도 쉽게 어울릴 기회를 준다.> 는 등의 긍정적인 평가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던 싫으나 좋으나 앞으로도 오래 동안 우리와 함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 애물단지의 장래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흉부외과 김원곤 교수
서울대학교병원 흉부외과 교수로 정맥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심혈관외과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연구는 물론 왕성한 집필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영어, 일본어, 중국어, 불어, 스페인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한 `외국어의 달인` 입니다. 꾸준한 운동을 통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몸짱` 교수이기도 한 김원곤 교수의 또 다른 취미는 `미니어쳐 술 모으기`.  미니어처 술만 무려 1,500여병을 수집하였다 하니, 그가 들려주는 술 이야기에 더욱 귀기울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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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메기의 추억 . . .
글쓴이 : (로얄)쁘리스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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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좋은글 감사 합니다.
시인 김정래

쁘리님~~

오늘 아침은 제법 가을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창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서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입추(立秋)도 며칠 안 남았네요
봄이 오기 전에는 노오란 개나리가 그리웠는데
가을이 온다니 팔랑이며 떨어지는 노오란 은행잎이 보고 싶어지네요
오늘도 행복 가득하게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커피 한잔 두고 갑니다
~정래~
마시면 왜? 머리가 아퍼?
아 와 서울대 자산 홍보가 어렵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