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DI 소식/전문가칼럼

KISDI 2021. 3. 16. 10:34

곽동균

방송미디어연구본부
연구위원

 

지난 2018년 12월, 유럽연합(EU)은 주문형비디오(VOD)서비스 사업자들에게 유럽에서 제작된 영상물을 30% 이상 의무적으로 포함시키도록 하는 내용(이른바 VOD 쿼터제) 등이 담긴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 지침(Audiovisual Media Service Directives, AVMSD)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EU 회원국들은 지난해 9월19일까지 VOD 쿼터제 등이 포함된 지침 수정사항을 반영한 개별 국가내의 입법조치를 완료해야만 했다. 비록 코로나19의 대확산이 겹치면서 상당수 회원국들이 시한내에 입법화 조치를 완료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VOD서비스에도 일정 비율 이상의 콘텐트는 현지 제작물로 제공하도록 한 조치를 이미 프랑스나 독일 등 주요국들은 시행 중이어서 국내에서도 관련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일부에서 나오는 것 같다.

 

사실 쿼터제(Quota regulations)는 그리 낯선 개념은 아니다. ‘수입물량 할당제’ 또는 ‘최소시장 접근 보장제’의 의미로 사용되는 쿼터제는 대체로 자국내 특정산업의 보호가 목적임이 잘 알려져 있다. 문화산업에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운영 중인 ‘스크린 쿼터제’가 대표적인 사례이지만, 방송서비스에도 특정 국가의 방송프로그램이 전체 편성시간의 일정량을 넘지 못하거나, 국내 프로그램이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은 포함되도록 하는 규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상당수 국가에서 시행 중인 규제방식이다.

 

이미 방송서비스에 대해서는 이런 형태의 유럽제작물 쿼터제를 시행해오고 있던 EU가 이번에 VOD서비스에도 이 규제를 확대한 것은 다분히 넷플릭스(Netflix)로 대표되는 글로벌 OTT(over the top)기반 서비스들의 확산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상당수 EU 국가들에서 가장 많은 가입자를 확보한 VOD서비스는 넷플릭스로 나타나고 있는데, EU 회원국들 중에서 그나마 콘텐트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되던 프랑스에서도 넷플릭스는 서비스 개시 3년 만인 2016년 이래 계속 VOD 1위 사업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EU가 미국 방송영상제작물의 유럽 방송서비스 시장내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게 현행 AVMSD의 원형 격인 ‘국경없는 TV(TV without Frontiers) 지침’이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EU가 VOD 부문에도 쿼터제를 도입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문제는 EU가 도입한 이 제도가 지금 우리나라에도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이제는 더이상 낯선 용어가 아닌 OTT 기반의 영상서비스 확산 추세를 감안할 때, EU의 VOD 쿼터제는 결국 우리에게는 OTT 동영상서비스에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과 등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주요 인기차트 상위권을 다 국내 콘텐트가 차지하고 있는 OTT 동영상서비스에까지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은 과잉규제 논란을 피할 길이 없을 듯하다. 영상시장에서 쿼터제라는 것은 자국 영상콘텐트의 최소 생존 요건을 보장해서 문화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아니었던가? 지금 우리 영상콘텐트가 쿼터제의 도움없이는 우리 소비자들을 만나기 어려운 상황인가에 대한 실증적 판단 없이, 다른 나라가 도입했다고 우리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국내 시장에서 VOD 쿼터제의 도입 필요성을 판단하는데 있어 스크린 쿼터제만큼 유용한 사례도 많지 않을 것 같다. 이 제도가 우리 영화의 오늘을 있게 만든 주역 중 하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편이나, 지금도 필요한 제도인가 하는 것은 사람들마다 생각이 같지 않은 것도 따지고 보면, 그만큼 우리 영화의 경쟁력이 커진 이유 때문 아닌가? 실제로 코로나19 확산 직전이던 2019년 한국영화의 관객 점유율은 51%로, 9년 연속 50%를 넘어섰을 정도였다. 또 이런 규제가 없는 OTT기반 유통에서도 넷플릭스의 Top10 콘텐트 목록 공개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 ‘승리호’, ‘살아있다’, ‘반도’ 등과 같은 이미 아시아권 전역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는 현실은, 역설적이지만 ‘우리 영화는 쿼터제 없으면 존립이 어렵다’는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게 한다.

 

방송 콘텐트는 또 어떠한가? 반한(反韓)을 넘어 혐한(嫌韓)정서까지 보도되곤 하는 일본에서조차 ‘사랑의 불시착’을 비롯한 우리 방송 콘텐트는 넷플릭스 일본 Top10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곤 할 정도 아닌가? 이처럼 한류의 주역이기도 한 우리 영상콘텐트의 위상을 감안했을 때 과연 VOD 쿼터제 도입이 얼마나 합리화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다만,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국내에서는 우리 콘텐트가 충분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고, 쿼터제 도입 없이도 OTT기반 서비스들을 통해 충분히 소비되고 있다고 필자는 알고 있지만, 이런 필자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데이터를 적어도 우리 업체들로부터는 공식적으로 구할 수 없다는 점은 반드시 지적될 필요가 있다. KISDI가 지난 2018년부터 OTT 동영상 콘텐트의 유통과 소비에 대한 실태라도 파악해보려고 사업을 진행 중이나, 안타깝게도 아직은 넷플릭스는 물론, 국내 OTT기반 사업자들로부터 그 어떤 협조도 받지 못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최소한 월간 단위 정도라도, 그리고 시청량 기준으로 최소한 인기콘텐트 50위 정도의 목록이라도 공개하거나, 연구목적 제한사용 조건으로라도 제출해 줄 것을 여러 업체들에게 간청해 보았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외면당했다. 서비스에 정기적으로 접속해서 일일이 인기콘텐트 목록을 수기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일부 자료라도 정리해오고 있지만, 이런 방식은 지속성도 떨어지고, 데이터 신뢰성도 담보하기 힘들다.

 

VOD 쿼터제의 국내 도입에 대해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OTT 플랫폼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이런 기초자료의 연구목적으로의 공개조차 불가하다는 식의 태도까지 이해해주기는 어렵다. 쿼터제 도입 없이 주요 OTT 동영상서비스들이 어떤 콘텐트를 국내시장에 제공 중인지 어떻게 파악할 것이며, 국내 콘텐트가 충분히 이용되고 있는지 무슨 수로 입증할 수 있느냐는 VOD 쿼터제 도입 찬성론자들의 주장에 필자와 같은 도입 불필요론자조차 선뜻 논박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금처럼 계속되는 것은 우리 OTT 동영상서비스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업체들의 전향적인 자세변화와 정책 당국의 노력을 통해 우리에게 맞는 지혜로운 타협책을 속히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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