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간행도서

푸른사상 2020. 12. 17. 16:29

분류--문학(산문)

 

거기에 있을 때

 

설성제 지음푸른산문선 2146×200×12 mm22416,000

ISBN 9788991918870 03810 | 2020.12.22

 

 

■ 도서 소개

 

우리 인생의 보이지 않는 퍼즐 한 조각

 

설성제 수필가의 네 번째 산문집 『거기에 있을 때』가 푸른생각의 <푸른산문선 2>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사건과 존재들을 진솔한 어조로 그려낸다. 숨 가쁜 도시 속에서 한가로이 유목적 삶을 살아가는 저자의 풍부한 감수성과 유려한 문체가 돋보이는 수필집이다.

 

 

■ 작가 소개

 

설성제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2003년 「푸른 서랍」으로 예술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수필집으로 『바람의 발자국』 『압화』 『소만에 부치다』가 있다. 현재 울산문인협회, 한국에세이포럼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E-mail : sungjea0511@hanmail.net)

 

 

■ 목차

 

■ 책머리에

 

제1부 무심히, 그리고 유심히

밥 / 착지 / 눈은 내리고 /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 노파를 기다리며 / 동네 어귀에 달린 단추 / 리허설 / 꽃밭에 가고 싶다 / 구별된 자리 / 자줏빛 동침 / 시간 벌기

 

제2부 너뿐이야!

도둑놈의지팡이 / 머물고 싶은 풍경 / 세상 밖의 꽃 / 무름의 힘 / 모퉁이의 향기 / 이팝꽃 피어

 

제3부 그런 섬 하나

아껴둔 섬 / 강 끝에서 / 품 / 비키니와 양산 / 다크호스 / 길 위의 식사 / 뒷골목을 찍다 / 발자크와 함께 / 양탕국

 

제4부 자꾸자꾸 불러보고 싶은

자화상 / 손톱 / 감출 수 없는 / 짐 / 손맛 / 흰 도깨비들 / 깨어진 무지개 / 메아리 / 싸가지 고 님과 구지기이(求知其二) 손님 / 장미와 거절 / 알

 

발문 : 깊은 응시, 그 애련으로 피어난 감응 - 이서원

 

 

■ 출판사 리뷰

 

설성제 수필가의 산문집 『거기에 있을 때』는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사건과 존재들을 응시하며 내면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숨 가쁜 도시의 중심에서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한가로이 유목적 사유를 즐기는 저자의 모습이 담긴 글에는 포근한 햇살이 머문다. 저자는 살아온 날들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삶을 관조하고 성찰하면서 은은하고도 진솔하게 그려낸다. 그 속에 담겨있는 저자의 담백하면서도 유려한 문체와 풍부한 감수성과 상상력이 담긴 편편의 글들은 더욱 이 책을 돋보이게 한다.

살아 계신 아버지가 미리 찍어둔 영정사진을 보며 지나친 보정을 가한 사진사를 나무라게 되는 딸의 속내는 어떤 것이었을까. 실제와 다르게 보이는 아버지의 사진이 영혼 없는 자화상으로 남겨지는 것 같아 저자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아버지가 살아온 회한과 성찰, 삶의 궤적을 담은 사진으로 남겨졌으면 하는 저자의 마음은 결국 진실한 글을 쓰고 싶다는 또 다른 속내가 아닐까. 집에서 키우던 닭을 잡아 배를 가른 날, 마지막까지 알을 배어 고소한 알을 남긴 닭처럼 저자 또한 알 낳기를 멈추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딱딱한 알 껍질 안에 들어있는 따뜻하고 반들반들하고 고소한 고영양의 알, 설성제 수필가의 글이 그러하다.

 

 

■ 추천의 글

 

그녀의 가슴에 들어오는 풍경은 진경(眞景)이다

밀려드는 세상과 사건들에 경계심과 두려움 따위는 없다.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따라가다 보면 일상의 껍질 안에 놓인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마음이 맹그럽게 드러난다. 힘겨운 사연들의 뼈에서 살을 발라내는 에린 이야기와 아직 벗겨내지 못하고 아물지 않은 상처도 어찌 품고 가야 하는지 보게 한다.

일상으로 달려드는 자극과 반응, 그 사이에 서서 삶을 은은하고 진솔하게 풀어간다. 글은 자신을 해체하는 작업이며, 고통을 수반하는 노동이다. 없는(虛) 것에서 보아내는 있음(有)의 진실을 찾아 나서는 길에 그녀가 저만치 서 있다. 따사로운 풍경, 힘겨운 푸념들이 녹아 맑고 달달한 우물이 되었다. 편편의 글에는 봄날의 포근한 햇살도, 도시 생활의 고단함도, 분주함 속에 여백을 길어내는 지혜도 머문다. 숨 가쁘게 때론 한가롭게 유목적 삶을 살아가는 작가의 매력이 사뭇 눈부시다.

─ 이종인(울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목사)

 

깊은 응시, 그 애련으로 피어난 감응

설성제 수필가의 네 번째 작품집을 출간한다. 2003년 등단 이래 십여 년 동안 오리 궁둥이 들이밀듯 글의 언저리에서 관망만 한 그녀였다. 그런데 등단 꼭 십 년이 되던 2013년에 이르러 첫 수필집 『바람의 발자국』을 발간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조차 빠져나가지 못하는 강한 천체인 블랙홀의 수필에 빠져들고 말았다.

내처 『압화』 『소만에 부치다』, 뒤이어 이번 『거기에 있을 때』까지 약 7년에 걸쳐 네 번째 수필집을 출간하니, 이것은 문단에서 보아 빛에 가까운 속도라 할 만하다. 이 정도의 열정이라면 가히 수필과는 천애지기(天涯知己)라 하겠다. 이미 홍억선 한국수필문학관장은 그를 “오로지 흰색과 검은색만의 조합으로 한없이 사유의 깊이를 만들어가는 내면의 풍경을 그려내는” 수필가라고 평했다. 이충호 평론가 또한 “깊은 생각과 은유적인 표현, 거기에 감성이 배어 있는 글은 시에 근접한 면모까지를 보여준다.”고 했다.(중략)

설성제 수필가는 온전히 대상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합일에서만 글을 쓰는 진실의 작가다. 그래서일까. 편편마다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는 동시에 그 사유적 의미가 궁극적인 것, 즉 구경(究竟)을 찾아 나서려는 성찰과 맞닿아 있다.

- 이서원(시인·수필가) 발문 중에서

 

 

■ 작가의 말 중에서

  

해거름에 어슬렁거렸다. 낙엽 타는 냄새가 자욱했다. 그러고 보니 그날 낮에는 초가 되어가는 낙과(落果) 냄새와 마른 풀냄새를 맡았다. 아스라해져가는 기억의 망사에 다시 뜨개코를 걸듯 냄새를 붙잡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발은 늘 공중부양 상태. 그 마른 풀냄새가 올이 풀린 채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따라잡지 못했다. 저녁 골목, 타는 낙엽 냄새에 불러도 대답 않던 기억들이 울컥, 울컥했다.

애면글면하다 보잘것없는 자식 넷을 낳았다. 아팠고, 고통스러웠고, 벅찼다. 이번 넷째는 낙엽을 태우는 연기처럼 매캐하고 쓸쓸하다. 요나의 다시스행 고래 뱃속 같다. 요나와 달리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의무와 책임을 지고 여기까지 왔다.

가까스로 걷은 기억들을 펼치고 만지고 다듬어 나뭇잎 같은 옷을 입혔다. 볕과 바람에 마르고 찢길 줄 알면서도 옷을 입혀야 하는 일이 나의 소명임을 이제야 알겠다.

문학의 지경을 넓혀보리라 꿈꾸었던 날들, 어느새 반환점을 돈 듯한 이 시간. 이제는 넓히는 일보다 깊어지는 일을 남겨뒀다는 사실에 다시, 또 다시다. 나를 더 비워야 한다면 기꺼이 그리하리라. 섣부른 약속이라도 해놓고 새 힘을 불러본다.

 

 

■ 작품 속으로

  

강도 제각각 오고가는 배와 발길에 의해 저마다의 분위기가 다르다. 무역선을 실어 바다같이 웅장해 보이는 엘베강이 있는가 하면, 공업과 생태가 함께 공존하는 태화강도 있고, 흐르면서 자연을 살리는 데 힘을 다하는 샛강들도 많다.

딸이 울산에 함께 있을 때는 서로 바빴다. 그래서 둘이 같이 강에 나가본 적이 없다. 항상 따로따로 강을 좋아했다. 딸이 귀국할 때면 나와 같이 바라본 이국의 강을 마음에 품어 올 것이다. 멈춤이 없는 강, 생명을 낳고 기르는 강, 뿐만 아니라 삶의 방향을 생각하게 하고, 정신을 성숙시키며 순리를 따라 흐르는 사유의 강을 품어 오리라.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흘러가는 잉여의 세월이 아님을 알게 되리라. 흐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며 살아 있다는 것은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기에 그저 시냇물 같았던 딸이 이제 강이 되어 바다로 열방으로 나아가리라 꿈꾸어본다.

(「강 끝에서」, 99~100쪽)

 

카메라 기법의 하나인지 아니면 포토샵 프로그램의 기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와 다르게 보이는 아버지의 사진이 영혼 없는 자화상으로 남겨지는 것 같아 싫었다. 세계적인 화가들의 자화상과 범인(凡人)인 아버지의 사진 한 장을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만 화가들의 깊은 고뇌와 비애가 스민 자화상처럼 사진 속 내 아버지도 분명 아버지가 걸어오신 궤적이 스며 있는 사진으로 남겨지면 좋겠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한과 성찰, 그리고 자애가 밴 모습으로 말이다. 지금 아버지는 자신의 영정사진이 젊어 보인다고 자랑하시는 것은 아니다. 미리 준비해놓았다고 알리는 것이라 나는 애꿎은 사진사를 자꾸만 나무란다.

훗날, 그날이 되어 친척들과 지인들이 아버지를 들여다볼 때 그동안 보아왔던 아버지의 모습과 이 영정사진이 그들 뇌리에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아버지를 달래듯하며 다시 사진을 찍길 원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귀찮다며 발뺌을 하셨다.

(「자화상」, 147쪽)

 

나!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나도 우리 집 닭처럼 그냥 이리저리 다니며 열심히 벌레를 잡아먹었다. 내 안에 무엇이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것이 어디로 가서 누구의 밥 속에 들어가는지 모른 채 마당을 쪼며 살아왔다. 되돌아보니 아이들은 장성하여 제 길을 찾아가고, 이럭저럭 해왔던 일들도 자리를 잡아 또 다른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알을 낳는 것이 당연한 듯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녀석이 잡히던 당일까지 알을 낳았듯 나도 그날까지 알 낳기를 멈추지 않고 싶다. 따끈하고 반들반들하고 고소한 알, 내가 먹는 하잘것없는 벌레들과 곡식 몇 알이 내 안에서 고영양을 지닌 알이 되길. 누군가의 밥 속으로 들어가 살과 피 되길 바란다. 나는 알 수 없지만 알이 또 부화해서 알을 낳을 것이라 기대도 하면서.

(「알」, 206~2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