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간행도서

푸른사상 2020. 12. 30. 17:16

분류--문학()

 

물소의 춤

 

강현숙 지음|푸른사상 시선 139|128×205×9 mm|152쪽|9,500원

ISBN 979-11-308-1753-8 03810 | 2020.12.29

 

 

■ 도서 소개

 

삶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고통의 심연

 

강현숙 시인의 첫 시집 『물소의 춤』이 <푸른사상 시선 139>로 출간되었다. 결핍과 단절로 가득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깊은 세계 인식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시인은 부정적인 세계의 모습을 역설과 반어적인 표현으로써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 시인 소개

 

강현숙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자랐다. 부산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울산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2013년 『시안』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여름 소나무, 우물, 대나무숲, 겨울 빈 논, 마당의 한 그루 감나무 아래 평상, 여름밤 달빛 들어오는 창가에 자리 잡은 잠 등을 추억의 열쇠로 지니고 있다.

(E-mail : seabird1125@hanmail.net)

 

 

■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사막의 장미 / 돌의 꽃 / 건선 / 박제된 초록 / 계절 없는 꽃 / 여자의 시간을 그리다 / 부도(浮屠)의 숲 / 외눈박이 새, 비익조 / 외눈박이 새·2 / 달의 공전 / 돌의 감옥 / 물고기 천국 / 정박한 말 / 물소의 춤 / 낙동강 오리알 / 에덴동산,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 거대한 북해

 

제2부

둥근 그늘 / 봄날 적인 / 어항 속 금붕어가 타이탄아룸을 먹어치운다 / 봄 산, 죽은 잠 / 죽은 잠, 단풍 같은 잠 / 봄날의 압화 / 달무덤 / 연(蓮) / 물의 들판 / 망해사(望海寺) / 원소처럼 / 나이테, 죽은 잠 / 동물적인 시간 / 흰빛의 감옥 / 황룡사지

 

제3부

예정된 살구의 맛 / 산티아고 가는 길 / 원시림을 묻다 / 달빛 새장 / 세잔의 사과 / 공중누각 / 잔혹 동화 / 사과의 공간 / 달의 침묵 / 사이 / 불모지 / 은행나무 아래 식탁 / 설산행(雪山行) / 무궁화 몇 송이 피어났다 / 꽃이 피다 말고 그냥 숨 넘어가고 / 돌, 꽃비 내리는

 

제4부

플라스틱 여관 / 뫼비우스의 띠 / 죽은 잠 / 낯선 장소 / 기울어진 지구에서 / 에볼라 / 침울한 와해(瓦解) / 팝아트 / 야생동물보호구역 / 새 / 수족관 / 마당의 장례식 / 제라늄은 밖을 보는가 / 달무리 진 지붕 위로 / 광활한,

 

■ 작품 해설:정박한 말의 서사와 아이러니의 상상력 - 박남희

 

 

■ 시인의 말

 

시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가며 이 세계와 함께 낡아가기를 원한다.

심각하지 않게 살기를 원하고 그저 그런 듯이 죽기를 원한다.

시와 더불어 쓸모없음을 지향하고 무용지물이 되기를 원한다.

무미건조한 시를 추구한다.

 

 

■ 작품 세계

  

강현숙 시인의 시들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중심 이미지는 돌과 달과 물이다. 달과 물이 시인의 여성성을 대변해주고 역동적인 삶을 표상해주는 긍정적인 이미지들이라면, 돌은 죽음과 단절의 서사와 연결되어 그런 것들을 허물기 위한 반어적 이미지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시인의 시에서 삭막함과 죽음을 상징하는 ‘사막’ 이미지와 생명과 사랑을 상징하는 ‘장미’ 이미지가 대비를 이루고 있는 것과도 흡사하다. 강현숙 시인의 시들을 읽다 보면 결핍과 단절, 또는 죽음을 상징하는 이미지들과 생명과 소통을 의미하는 이미지가 산재해 있다. 그런데 시인의 상상력에는 유토피아적인 것보다 디스토피아적인 것이 훨씬 많이 있다. 이러한 상상력을 부정의 상상력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이와 유사한 의식이 시인의 시에 내재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중략)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강현숙 시인의 시는 디스토피아적 삶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에서 파생된 고통의 서사가 중심이 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이러한 고통의 서사를 견인주의적 삶의 태도나 체념 쪽으로 밀어놓지 않고, 자신의 시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서 개성적 시로 심화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시가 돋보이는 것은 어긋나고 빗겨나가는 현실을 역설과 반어를 통한 아이러니의 상상력으로 구조화해서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시인의 상상력은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열린 지평을 지향하는 비정형의 언술을 통한 열린 상상력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선보이는 첫 시집이 강현숙 시인이 펼쳐나갈 앞으로의 시적 여정에 많은 기대를 갖게 해준다.

― 박남희(시인·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수면은 무심하나 심연은 격류다. 정적의 동굴 속 ‘피 흘리는 들소’의 가쁜 심장이다. 꺼진 바닥에 두 발은 버둥거리지만 얼굴은 짐짓 무표정이다. 그래서 시인의 시에 들어가는 길은 해 질 녘 산책로 같지만 들어서면 나올 길을 잃어버린다.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미로다. 황홀해서도 아니고 따듯해서도 아니다. 마른침을 삼키며 그 ‘결핍’의 미로에 빨려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핍을 말하지 않기 위해/휘황한 날개로 날아가는 새/고단하다고 말하지 않으려/상상의 집을 허무는 새”가 날아가는 곳은 “생존을 위한 한 마리 짐승의 살덩어리”로 존재하는 닫힌 세계다. 그곳에 “밤마다 머리 위로 죽은 달이 뜨고 지”면서 하나의 신화가 완성되는 것을 우리는 고통스럽게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희망 따위가 발붙일 수 없는 그곳에 의외의 출구가 발견되는데, 금세 휘발될 것만 같은 존재의 흩어짐을 간신히 붙들고 있던 바로 그 ‘결핍과 허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박탈과 상실의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를 비워낸 결핍과 허기라는 사실 때문에 그 심연의 격류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시인이 통치하는 감각의 세계가 그만큼 넓고 황홀하다는 것도 뒤늦게 발견하게 된다.

― 백무산(시인)

 

 

■ 시집 속으로

 

돌의 꽃

 

돌에서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돌이 바람과 햇빛을 들이고 돌 속 황금빛 문이 열리며 아

이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돌의 입 가득 흰 꽃들이

무진장 피어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단단한 돌무덤 아래 잡힌 잠들

 

돌의 구름, 돌의 안개, 돌의 꿈, 돌의 번개, 돌의 태양, 돌의 정령, 돌의 심장에서 오래 갇혀버린 꽃

 

돌의 기슭에서 떠도는 오랜 전설

바람과 구름을 잉태한 여자의 젖은 탯줄과 돌무덤 밖으로 길게 퍼져 나가는 검은 버섯 무리들, 돌의 비문들

 

돌이 돌을 가두고 돌을 두드리고

돌이 폐허를 묻고 돌이 폐허를 어루만질 때

 

돌 틈으로부터 돌꽃이 필 때

돌이 새 울음을 울 때

 

 

정박한 말

 

슬픔의 고백 때문에 찾아간 곳이었습니다 말이 없었습니다 응답도 없었습니다 고백이 있었던가요 아무것도 보질 못했습니다 세상을 멀리 두고 침묵 앞에서 그 무엇도 듣질 못했습니다 새긴다는 말에 집착하지 말기로 했습니다 평생 들은 소리, ‘적요라는 말 한마디 들었습니다 입을 다물었습니다

 

수많은 말, 불안한 여운, 말을 쪼이고 새기는 일로 태어난 말의 파편들을 한 시절 흘려보냈구나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정박한 말을 아시는지요 슬픈 말이란 묶인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하룻밤 항구에 묶여 떠돌던 언어를 보셨는지요 스러져가버릴 흔적 없을 사람의 말을 아시는지요 말이 머무를 집, 정박한 배 한 척을 보신 적 있는지요

 

여윈 말들아, 소리들아

거기 그리 정박해 있어라

거기 그리 바위에 새겨진 채로 매달려 있어라, 흩날리듯

동토 위로 얼어붙은 변명 같은 세월이,

새기고 새긴 언 말이 박혀 캄캄절벽을 이루는 절경이 되었습니다

 

 

물소의 춤

 

동굴 벽에 물소를 그려 넣었지요 작살을 맞고 붉은 살점이 사라지고 흰 뼈로 남아 벽에 추상으로 남을 때까지 추는 물소의 춤입니다 해 진 거리로 일렁거리는 춤의 동작, 머리에 돋은 두 뿔이 동굴 벽을 선명하게 받들었습니다 살아온 것이 없으며 살아갈 것이 없을 순간에서 멈춥니다 가슴에 박힌 못처럼 육신을 붙들어 매고 물소의 춤을 춥니다 스며들고 번지고 색을 입히는 몸의 동작들이 흐릅니다 중력으로 붙들린 자세가 유일한 생존의 동작인가요 사랑이란, 순정이란 허울이 넘실거리는 벽에 비치는 그림자들의 춤 앞에서 멈춥니다 죽을 만한 고통이란 있는 것이겠지요 몸이 잊어버린 고통이란 고통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지상에서의 하룻밤이었습니다 하필 왜 물소냐고 물었습니다 구체적인 날이 흘러가야 했으니까요 가끔은 땅을 짚지 않은 채로 추는 춤을 쫓습니다 별도 뜨질 않고 강물이 흐르질 않는, 어둠의 격렬한 파동을 몸이 기억합니다 그리워하는 것들을 부릅니다 바깥을 감싸며 일렁거리며 흘러가는 연둣빛 물결을 그리워합니다 거기 눈 덮인 땅이 있었다지요 그림자로 박힌 물소들이 살았다지요 물소들의 환상이 있었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