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사상 미디어서평

푸른사상 2021. 2. 23. 09:24

 

[신작시집] 남도 방언으로 담아낸 역사와 민중

'목포의 시인' 최기종 시인
시집 '목포, 에말이요' 출간
박화성 '하수도 공사' 매개
역사 통해 현재 인식 주목

한반도 서남부에 자리한 목포는 군산과 함께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의 거점이었다.

그래서 목포 역사는 우리 현대사의 질곡과 민중의식이 스며 있다.

최기종 시인은 '목포의 시인'이라 불린다.

그가 최근 신작시집 '목포, 에말이요'(푸른사상刊)을 펴냈다.

이번 시집은 목포를 배경으로 남도 특유의 토속적인 방언과 더불어 민중들의 정서, 풍습, 전통 등을 정감 있게 담아냈다.

그의 목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은 박화성의 '하수도 공사'에서 나타난 역사의식과 민중의식에서 비롯됐다. '하수도 공사'는 1년 동안 일해온 3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청부업자 중정 대리(中井 代理)의 농락으로 4개월 동안 삯을 받지 못하자 경찰서에 몰려가 항의하는 내용이다.

목포 사투리로 '에말이요∼'란 말"의 뜻은 "내 말 좀 들어보라"는 뜻이다. "여보세요"에 해당하는 방언이다.

'에말이요'의 언어 사회적 가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목포라는 지역에서 사용하는 방언인 만큼 국어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민중들의 친밀감도 느껴진다. 결국 화자는 "에말이요"란 방언을 연결고리로 삼고 목포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에게 목포는 생소한 땅이었다.

그 이유는 목포에서 태어나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교직을 떠난 후에도 목포를 등지지 못했다.

목포에서 살아온 세월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귄 벗들이 수두룩허고 거리거리 골목골목이 산도 바다도 섬들도 자신을 붙잡았다.

그는 1980년대 중반 목포에 들어와서 6월 항쟁을 겪었고 전교조 활동을 펼치다 해직돼 거리의 교사로 살아야 했다. 그는 90년대 복직 후 그리운 아이들과 2002 월드컵 때 아이들과 거리응원도 펼치고 압해도와 가거도에서 교편생활을 이어가며 목포 사람으로 살고 있다.

"개항기에 일제가 들어와서는/ 목포 바다를 이따만 하게 막아서는/ 요리조리 신작로를 내고 지들 거류지를 맹글었어//거그 항구도 앉히고 세관도 앉히고/ 유곽이며 동척, 은행, 백화점도 앉히고/ 핵교도 전보국도 무역상도 사교장도 앉히고/ 네모반듯한 지들 집들도 즐비허게 지어댔지/ 그러고 유달산 입구에 지들 영사관도 앉혔는디/ 목포항까지 뻔히 내다뵈는 명당자리였어/ 거그 거리를 혼마치라고 불렀는디/ 양품점, 양장점, 모자점 같은 상가들이 들어차/낮이고 밤이고 북적거렸지"('목포 옛길' 중 일부)

이렇듯 각각의 시편에는 목포에 대한 추억과 향수, 역사 의식이 녹아 있다.

맹문재 안양대 교수는 "시인이 역사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과거의 역사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인식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시문학이 아무리 소외되는 시대라고 할지라도 시인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는데, 최기종 시인의 목포 시편들이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최기종 시인은 1956년 전북 부안군 동진면 당봉리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문학과와 목포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1985년 목포에 정착, 항도여중, 청호중, 제일여고, 목포공고, 목상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은퇴, 현재 남악에서 살고 있다. 지난 92년 교육문예창작회지에 '이 땅의 헤엄 못 치는 선생이 되어'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으로 '나무 위의 여자' '만다라화' '어머니 나라' 등이 있다. 목포작가회의 지부장, 전남민예총 이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목포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으로 있다. 

무등일보, "[신작시집] 남도 방언으로 담아낸 역사와 민중", 최민석기자, 2021.02.22

링크 : moodeungilbo.co.kr/detail/K4YzjP/641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