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신간도서

푸른사상 2021. 4. 2. 14:43

 

분류--문학()

 

그림자 골목

 

정병호 지음|푸른시인선 21|131×216×9 mm|144쪽|10,000원

ISBN 978-89-91918-91-7 03810 | 2021.3.30

 

 

■ 도서 소개

 

어둠의 틈을 건널 수 있는 불을 밝히는 꽃

 

정병호 시인의 시집 『그림자 골목』이 <푸른시인선 21>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그리움과 절망으로 가득한 내면을 바라보며 그 상처의 근원을 찾는 과정에서 과거를 다시 만난다. 그리하여 시의 저변에 흐르는 치유되기 힘든 상처를 내면에서 피는 한 송이의 꽃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어둠의 틈을 건넌다.

 

 

■ 시인 소개

 

정병호

1958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1969년부터 경기도 안성에 뿌리를 내리고 생활하고 있다. 2004년 『한울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으로 『약국 가는 길』이 있다.

(E-mail: pt-gc0027@hanmail.net)

 

 

■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모과 / 칼과 도마 / 원추리 / 배롱나무 풍경 / 진달래를 보다 / 손톱 / 개복숭아꽃 / 거미의 길 / 자화상 / 나목(裸木) / 아버지의 길 / 두레박 / 낙타처럼 걷는다 / 망초꽃 / 심장 / 오후만 있던 일요일 / 연탄재 / 덫 / 백목련 / 할미꽃

 

제2부

거울을 들여다보며 / 경계의 고집 / 그림자 골목 / 꽃병 / 상강(霜降) / 치통 / Indian summer / 살아남은 자의 슬픔 / 달맞이꽃 / 부석(浮石) / 무서운 눈 / 베지밀 / 삼길포에 가다 / 아내의 화장 / 못 찾겠다 꾀꼬리 / 쉽게 쓰인 시 / 불혹(不惑)

 

제3부

양배추 꽃 / 춘곤(春困) / 삼손을 꿈꾸다 / 점심으로 설렁탕을 먹었다 / 부처꽃 / 가을비 / 각시붓꽃 / 개나리 / 거짓말 / 꼴값 / 대박 / 공갈빵 / 소가 묻는다 / 말복이 이야기 / 봄 / 오징어 뼈 / 쇠똥구리 / 첫눈 / 풍경을 찍는다 / 코뿔소

 

제4부

각인 / 도토리를 줍다 / 먹이사슬 / 풍경이 지나갔다 / 47번 사물함 / 개양귀비 / 겨울비 / 김영수 / 꽃은 틈을 건너간다 / 돼지의 눈 / 능소화 / 앵초 / 외면 / 일식(日蝕) / 죄 없는 자의 손에 들려진 / 제일 쓸쓸한 남자 이야기 / 틈 / 하지불안 증후군

 

■ 작품 해설 상처 속에서 핀 꽃 ― 전기철

 

 

■ 시인의 말

 

모감주나무의 열매로 염주를 만든다.

 

초여름에 펴야 할 꽃이 가을에 필 때도 있다.

기약 없이 꽃을 피우는 건

자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다.

 

내게 있어 시가 그렇다.

가을에 핀 모감주나무 꽃이다.

 

 

■ 작품 세계

  

정병호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자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 시라고 했다. 여기에서 치유는 2차적인 문제이다. 치유는 승화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상처를 드러내 보여주지 않으면 치유나 승화란 없다. 따라서 시집 『그림자 골목』 전편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정서는 상처다. 그 상처는 때론 ‘슬픔’으로, 때론 ‘그리움’, 혹은 ‘울음’이나 ‘고독’으로 나타난다.(중략)

정병호 시인의 시적 출발점은 상처다. 그의 상처는 내면의 어둠에서 온다. “가만히 자기를 들여다보면”(「배롱나무 풍경」) 보이는 풍경들, ‘숨겨진 그림자’나 ‘방치된 그리움’, 혹은 ‘슬픔으로 충혈된 구멍’들이 보인다. 주체의 내면에서 보이는 이러한 어둠 속 그림자는 생에 모순을 불러들인다. “진달래는 쓸쓸해서 피”(「진달래를 보다」)고, 첫눈은 “슬프도록 그리”(「손톱」)우며, “삼복더위에도 식은땀을 흘리며”(「점심으로 설렁탕을 먹었다」), “길 없는 길”(「낙타처럼 걷는다」)을 간다. 이러한 모순어법은 내면의 상처로 인한 정상적인 인식의 불가능함에서 온다.

이에 시인은 그 치유하기 힘든 상처의 근원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거기에서 만난 장면들이 자신의 과거, 에피소드다. 그 사실의 사건은 주로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아내나 지인들의 삶이다. 이들을 통해서 그의 상처는 객관화되고 사회적 상상력으로 고양된다. 그와 함께 꽃이라는 모티프를 찾아내 그 상처를 치유한다. 그리고 그 상처의 치유 과정이 시를 낳는다. 병적일 정도로 상처에 몰입되어 있던 주체는 객관화되고, 그 객관화는 어둠의 ‘틈’을 건널 수 있는 불을 밝히는 꽃을 만나면서 시로 피어나 스스로를 치유한다.

- 전기철(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모과

 

슬픔은

숨겨진 그림자의 어두운 얼굴

 

내 그리움은

간이역 주차장에 방치되어 있다.

 

젊은 날에

나를 감동케 한 페이지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살기 위해 살고 있다는 말처럼

이 고독은

너무 참을 만해서 견디기 힘들다

 

스마일마스크를 쓰고

 

나는,

울고 있다

 

 

개복숭아꽃

 

그녀의 남편은 겨우내 피똥(血便)을 쌌다. 큰 병원을 들락거렸지만, 차도가 없었다. 죽음처럼, 기저귀 틈새로 피똥이 삐져나와, 새로 기저귀를 채우고, 피똥 묻은 이불을 세탁기에 돌려놓고, 여기저기 묻은 피똥을 닦는 일로 그녀의 겨울이 갔다. 남편이 물에 젖은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아이처럼 배시시 웃을 땐 하루라도 빨리 죽어주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화장터 가는 길,

그의 피똥처럼 붉은

개복숭아꽃이

낮의 빛으로 어둠의 깊이를 재고 있다.

 

어둠을 밟고 가는 모든 곳에서

저 스스로 빛이 되고 있었다.

딱딱한 슬픔은 부드러워지고

눈물로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붉은 죄가

기억의 문을 열고

활짝 피었다.

 

세상이 눈부시게 밝아졌다.

 

 

그림자 골목

 

길은,

나른한 고양이 수염처럼 아득하다.

 

일상에 불룩하게

괄호가 하나 삽입되었고,

이 괄호 속에는

끝나지 않은 책임이 들어 있다.

 

많은 이름들이

나를.

그림자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몸에서 가장 먼 발끝,

내려다보는 자리가

벼랑이다.

 

풍경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간격

골목길 마지막 집의 백열등 노란 빛이

캄캄한 바다의 등대처럼

먹먹한 내 가슴에서 깜박거린다.

 

잃어버린 열쇠 꾸러미를

가로등 아래서 찾고 있다.

그림자가 나를,

보고 있다

 

고통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