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박가네)

세상을 후회없이 살다 간 성실했던 한 인간으로, 사는데 있어서는 냉정했었지만 그래도 정을 알고 나눴던 한 인간이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고 남고 싶습니다. 늘 사랑입니다.

[스크랩] 경기 광주 태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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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기의 작은 산

2010.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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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 644m 경기 광주시 도척면 추곡리
운영자 01-23 20:59 | HIT : 1,811


경기도 광주시 남쪽 끝에 자리한 도척면은 백제 온조왕이 한강유역에 도읍을 정하려 이곳을 탐사할 때, 자로 재고 또 재고 해서 도척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곳이다. 도척면 북서쪽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산이 대화산(644m)이다 이 대화산이 무슨 이유인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태화산으로 불리고 있다. 조선 영조 때의 조선고지도와 청구도, 팔도군현지도, 광주부읍지, 광주목지에는 대해산, 해동지도에는 대화산으로 기록되었다.


정수산으로 기록된 것도 있는데 이는 이웃의 용인시 양지면 '정수리'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한강의 남쪽에선 양평과 여주 경계에 있는 양자산(709.5m) 다음으로 높은 산인 태화산은 경기 남부에서 아름답기로 이름난 산이다.태화산 산행들머리는 유정저수지다. 관광낚시터로 관리되는 저수지 주변은 전원주택과 식당이 들어서서 시끌벅적하다. 버스정거장 이름이 '작은 안나의 집'. 버스정거장에 '태화산 등산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바우산골로 들어간다.바우산골은 바위성골이라고도 한다. 한자로 암성곡이라고도 한다지만 이는 일본식 이름이 아니겠는가. 바우산골에 갖가지 바위들이 있다. 관바위, 수리바위, 병풍바위, 상사바위, 조춤바위 등 다섯 개의 바위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고 바우산골이다.바우산골에는 절간도 있다. 조계종 소속의 비구니 사찰, 오래되지 않은 절간이다. 산골짜기에 많던 물푸레나무로 도끼자루를 만들어 팔던 음씨 성을 가진 목수가 살던 집터에 지었다는 은곡사, 은곡사 가는 길은 포장도로다. 소나무와 조림된 잣나무숲이 절마당까지 이어진다. 잘 가꾸어진 들꽃들이 활짝 피었다. 늦게 핀 우리나라 토종인 왕벚꽃도 나무 한그루를 뒤덮었다.정상 쪽으로 소나무숲을 가로질러 나간다. 최근 도척면에서 다듬은 산길을 따라 태화산을 오른다. 밤나무와 참나무가 섞인 산길이 하늘을 가린다. 간밤에 내린 봄비로 융단을 깔아놓은 듯 폭신폭신한 산비탈에 싱그러운 바람이 날린다. 산길 따라 오르기를 10여분, 샘터에 닿는다. 커다란 고로쇠나무 밑에서 솟는 샘은 이가 시리도록 차다. 두어 모금 마시고도 한기를 느낀다. 긴 나무의자를 만들어 놓아 쉬기도 좋다. 샘터가 있는 삼거리로 오른쪽은 정상과 612.8m봉 사이의 안부로 오르는 길이며 왼쪽은 병풍바위를 거쳐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병풍바위 오름길은 된비알로 엄청난 크기의 바위들이 늘어서 있다. 아랫부분의 바위를 돌아 중간쯤 오르면 암릉 등반을 해도 좋을 만한 바윗길이 이어진다. 전망 또한 좋다. 샘터에서 병풍바위까지 바위로 이어져 바우산골을 빛내고 있는 곳. 바우산골에 바우(바위)가 많다는 것은 모두 이쪽 비탈을 보고 하는 말일테다.암벽등반도 하는가. 벼랑곡대기에서 삼각볼트를 박고 슬링(줄)을 둘렀다. 높이가 20m즘 되어 보이는 벼랑. 밧줄을 가져왔으면 내려가 볼텐데, 아쉽다.병풍바위 오름길은 최근에 도척면에서 산길을 정비하면서 바윗길 옆으로 새롭게 길을 만들고 밧줄을 설치했다. 안전을 위함이겠지만 된비알에 무리하게 길을 냈다. 머지않아 엄청난 훼손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병풍바위 위에 섰다. 늙은 소나무가 그림을 그린 바윗길에 철쭉도 꽃 피우고 있는곳. 태화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올라온 바우산골은 물론 유정저수지 너머 광주와 이천의 벌판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오르지 않고는 볼 수 없는 너른 세상, 하늘을 날지 않고는 내려다 볼 수 없는 속세, 인간과 동물이 어울려 사는 지구 마을의 한 모퉁이가 저기가 아닌가."철쭉나무가 엄청나군요. 진달래나무도 많고, 철죽꽃이 피기 시작하는 걸까요, 이미 꽃이 피고 진 것일까요." "글쎄요? 철쭉꽃이 필 때인데, 꽃망울이 안 뵈네."키큰 산철쭉나무가 빼곡히 산길에 이어진다. 참나무보다 철쭉이 더 많아 보인다. 이렇게 좋은 산에서 '철쭉축제'는 왜 안하는 걸까. 철쭉꽃이 안 피는  철쭉나무도 있나? 철쭉나무는 '작은 안나의 집'에서 오르는 길(삼거리)을 지나 동봉까지 이어진다. 엄청난 철쭉나무 군락지다.동봉(600m)에서 남쪽으로 조망도 좋다. 이곳이 나라의 땅을 이동통신사의 송신소에 빼앗기고 태화산 정상 역할을 하는 곳이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곳, 서너 평 되는 죽은 자의 산소 자리 같은 곳이다.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헬기장이 있다. 남쪽과 북쪽으로만 트인 곳, 발 아래 추곡리의 저수지 전원마을이 가깝게 보이고 뒤로 용인시의 회색건물이 열병을 하고 있다.돌아보기도 싫은 북쪽으로 산꼭대기에 흉측스러운 건물이 들어섰다. 못된 문명이 침범하여 정상을 차지하고, 정상석은 뽑혀 헬기장 구석에 쳐박혔다. 하얀 대리석에 세로로 '태화산 泰華山'. 철조망도 둘러쳤다. 그리고 뾰족한 쇠꼬챙이를 세워 하늘님의 '똥꼬'를 지르고 있다.정상 바로 아래 암자가 있다 한다. 암자로 내려가는 길이 어딘가. 산불이 나서 타버린 앙상한 나무가 듬성듬성 자리한 산비탈을 흝었다. 야생화가 한창이다. 앉은뱅이 붓꽃이 함초롬히 핀 된비알을 조심조심 내려와 안부에 섰다. 추곡리 노인정 앞으로 내려가는 길을 버리고 조립식 주택이 있는 왼쪽으로 내려갔다.천길 바위 벼랑 밑에 자리한 암자, 백련암. 고려 때 일련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암자로, 을축(1925)년 대홍수 때 매몰, 광복 후에 새로 세웠다는 절간이다.옛날 암자 근처에 대화약수라는 샘물이 있어서 장군수라고도 불렀다. 지금의 백련암은 볼품없는 암자로 사람사는 주택이나 다름없다. 조립식으로 엉성하게 지은 산집과 그 옆의 샘물도 대화약수가 맞는지도 모른다. 을축년 대홍수 때 산사태가 나서 매몰된 후에 새로 다듬었다는 샘물이다.어찌됐거나 시원한 샘물을 대화약수로 알고, 장군샘으로 알고 목을 축이고 암자를 떴다. 구불구불, 된비알로 쏟아지기를 200여m, 글이 새겨진 바위 앞에서 멈췄다. 김병수 대감이 약수 마시고 병이 나은 기념으로 썼다는 '大華水石'(대화수석)이 새겨진 바위는 하얀 차돌바위다. 길 가에 있다.마을로 이어진 시멘트포장길이, 속세로 이어지는 길이, 무릎에 고통을 줄 때쯤, 잘 다듬어진 가족묘지를 지나면서도, 고고한 자태로 잔디밭을 지키는 잘 생긴 소나무를 보면서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 하나.대화산이 왜 태화산이 되었을까. 정수산이 아닌, 대해산도 아닌, 태화산. 혹시 이것도 왜놈들의 소행? 우리는 언제쯤, 왜놈들이 왜곡시킨, 멋대로 지어 지도에 적어놓은, 우리의 땅의 이름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안재홍)

▲ 1코스
백련암 입구⇒백련암⇒태화산정상⇒시어골삼거리⇒미역산약수터⇒은곡사길


 대중교통
서울 동서울터미널⇒곤지암까지 좌석버스
곤지암⇒추곡리행 버스, 작은안나의 집(양로원) 
 도로정보
중부고속도로 곤지암나들목⇒곤지암⇒용인 98번 국도⇒ 도척면사무소우회전, 유정저수지

저수지 근처에 숲속의 산장(031-764-7792)은 민박과 식당을 겸하고 있다. 농원가든(798-4151)에서는 닭백숙과 영양탕이 일품이다. 은곡사 입구에 있는 목부방은 산채정식집으로 1인분 13,000원.

▲  백련암
고려 1325년 일련선사에 의하여 창건(고려 충국왕 12년). 처음 절 이름은 일련암으로 1387년(우왕 13년)에 해안이 중건하고, 일련선사의 부도와 3층석탑을 건립한 후 백련암으로 개칭. 3층석탑은 1925년 을축년 홍수 때 산사태로 매몰되었다. 도척면 추곡리 산 25번지에 있다. 백련암 부도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3호로 지정되었다. 방형의 지대석 위에 놓여 있는 높이 1.75m, 넓이 98cm의 석종형 부도로 조선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 가래실마을
서판서가 피난 와서 사는 동안에 가래나무를 많이 심었다 하여 가래실, 한자로는 추곡(楸谷)이며 추곡리 노인정이 있는 마을이다. 산신제단은 서판서가 피난 왔던 약 350년 전부터 마을의 수호를 위하여 산신제를 올리는 터로 말치고개 맞은편 산 중턱에서 2년마다 음력 10월 초순에 산신제를 올린다.천주교회터 1880년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박해 때, 산간지대로 신자들이 피하면서 생겼던 터. 6.25전쟁 중에 불타 빈 터만 남아 있다.




정상사진
산행지도

출처 : 행복한 산쟁이 !
글쓴이 : 이무기 원글보기
메모 : 태화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