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박가네)

세상을 후회없이 살다 간 성실했던 한 인간으로, 사는데 있어서는 냉정했었지만 그래도 정을 알고 나눴던 한 인간이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고 남고 싶습니다. 늘 사랑입니다.

[스크랩] 유치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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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유치환)의 시세계

2012.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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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하는 것이 행복할까요, 받는 것이 행복할까요? 보통사람들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합니다. 누구에게나 사랑을 듬뿍 받는 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겠지요. 하지만 짝사랑이나 외사랑을 해 본 사람은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청마 유치환도 그의 ‘시 - 행복’에서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유치환의 ‘행복’을 감상하면서 그에 얽힌 이야기를 회상하고자 합니다.

 

 

                                

                                                                                  자필로 쓴 행복

 

행복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연한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이 시는 1953년 ‘문예’지에 실려 있던 시입니다. 시인은 어느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나 봅니다. 1950년대는 인터넷은 물론 전화도 아주 부유한 계층 이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우체국은 사랑하는 사람, 그리운 이에게 소식을 전하고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을 한 가득 안고 와서 그리운 이에게 보냅니다. 저마다 사연들을 다르지만 보내는 사람의 표정은 활짝 핀 꽃처럼 한없이 밝습니다. 세파에 시달리는 사람들일수록 그들의 사랑은 더 절박하고 더없이 아름답고 애틋합니다. 다른 이들처럼 시인도 우체국에 와서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지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했다는 것만으로 진정으로 행복하였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시에 등장하는 통영 중앙동 우체국 앞

 

   이 시는 유치환의 사랑의 고백입니다. 유치환은 1908년에 거제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5년간 만주에 건너가 생활하다가 광복과 함께 통영으로 돌아와 통영여중에서 국어선생을 하였습니다. 그때 가사선생을 하던 시조시인 정운 이영도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서른여덟의 유부남이었고 이영도 시인은 시집을 가서 스물한 살에 남편과 사별을 하고 딸을 하나 키우고 있는 스물아홉의 청상과부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사회에서는 더욱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청마는 1947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연서를 보냅니다. 그러기를 3년, 마침내 정운의 마음도 움직였으나, 떳떳하지 못한 둘의 만남은 거북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청마는 1967년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무려 20여년을 한결같이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편지 중 한국전쟁 이전 것은 전쟁 중에 소실되고, 그 이후에 보관하고 있던 것만 5,000여통에 이른다고 합니다. ‘주간한국’에서 이 소식을 듣고 그중 200통을 간추려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서간집을 1967년에 발간하였습

니다.

 

 

                                               

                                                                                            이영도 시인

 

 

그중 편지 몇 편을 소개합니다.

 

정향!

당신 그린 세월이 이렇게 소리없이 밀려오고 끝이 없습니다. 깊은 사랑이란 이렇게 슬프고도 어진 선물입니까?

당신, 나의 당신!

그리울 때는 어쩌면 죽을 상히 못 견디겠습니다만 갈 앉으면 외려 더욱 반갑고 향그럽습니다. 정향! 당신 만을 끝내 높게 맑게 외롭게 있어 주십시오.

귀한 정향! 당신의 그 높고 외롭고 정함이 이내 나를 빛나게 합니다.

이미 당신을 부르시는 종소리 울려 난 다음 바깥에서는 빗소리 들리고 창이 밝아 옵니다. 궂은 날씨 같은 세상에서 내 비록 남루하고 부끄러운 허울일지언정 내 앞에는 빛나는 당신이 언제나 자리하고 눈 떠 계시니 어찌 끝내도록 내사 슬프겠습니까? 스스로 알 듯도 합니다. 어제 황혼 무렵, 산에서 내려오며 꺾어 온 한 송이 항가새꽃. 당신의 붉은 정성, 내게로 향한 당신의 붉은 정성인양 나의 책상 머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진정 참된 사랑을 가졌으므로 나는 다시 어질게 느껴집니다.

-세월이 갑니다. 그리운 세월이 갑니다.

바람이 호면을 가늘은 살을 끼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세월은 우리의 목숨위를 스치고 갑니다.

정향!

그렇지 않습니까?

나의 귀한 정향! 안녕!

1952년 6월 26일 청마

 

사랑하는 정향!

바람은 그칠 생각 없이 나의 밖에서 울고만 있습니다. 나의 방 창문들을 와서 흔들곤 합니다. 어쩌면 어두운 저 나무가, 바람이, 나의 마음 같기도 하고

유리창을 와서 흔드는 이가 정향, 당신인가도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이리다.

주께 애통히 간구하는 당신의 마음이 저렇게 정작 내게까지 와서는 들리는 것일 것입니다.

나의 귀한 정향, 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은 세상에 있게 됩니까?

울지 않는 하느님의 마련이십니까?

정향! 고독하게도 입을 여민 정향!

종시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우시면서 귀로 들으시지 않으려고 눈 감고 계십니까?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리길입니까? 끝내 만리길의 세상입니까?

정향!

차라리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 죄값으로 사망에의 길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아예 당신과는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유치환으로부터 이영도 여사에게

사랑한 정향!

정말 고운 달밤이었습니다.

같이 어디까지나 지향없이 걷고 싶었습니다. 어찌하여 나는 와 버려야 하는 겝니까? 그러나 어저께는 내게 과분한 날이었군요. 세 차례나 당신을 볼 수있었으니 -- 일어나니 세시 반, 달은 넘어가고 없고 미륵산 조용한 그림자 위에 또렸한 별 한개가 보입니다. 저 별이 당신이 아닙니까? 내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나를 지켜 비쳐 주고만 있을 당신의 애정,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한 정향!

오늘 내 안에서 무엇이 귀한들 당신만 하리까. 진정 당신의 고운 눈을 볼 때마다 와락 껴안고 싶은 무한히 고운 안타까움입니다. 무엄합니까?

나의 귀한 정향, 아아, 어느 하늘,

어느 세상에서 반드시 내가 당신의 반려가 되고 당신이 나의 반려가 될 날이 있을 것을 우리는 기약하여 좋겠습니까? 그리하여 그날에사 하루에 한시고 떠남없이 당신 곁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내가 생각하고, 당신이 보는 것을 내가 볼 수 있겠습니까?

나의 애달픈이여. 이렇게 곱고도 마음 아프게 하는 이여. 헛된 세월은 헛되게 흘러 갑니다. 아무 짝에도 보랍없는 세월이 흘러 갑니다. 이 헛된 흐름 가운데서 어디서 나를 부르는 나의 소리가 자꾸만 들려 옵니다. 들려 옵니다.

- 당신의 청마 -

1952년 7월 1일

 

청마의 끈질긴 구애에 마음을 움직인 정향이지만, 어디까지 마음으로만 사랑해야 했던 그녀도 1954년 청저집에 ‘무제Ⅰ’로 청마에 대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窓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청마는 정지용의 시에 감동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31년에 ‘문예월간’에 ‘정적’을 발표하면서 시인의 길로 들어섭니다. 초기 대표작 ‘깃발’을 비롯하여 53편을 수록한 ‘청마시초’를 발간하였고, ‘생명의 서’ 등을 잇달아 발표하였습니다. 청마의 시에는 현실 극복과 허무, 의지를 주제로 하는 작품이 많아 의지의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나약하고 흔들리기 쉬운 성격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을 시를 통해 갈구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1942년 2월 6일자 만선일보에 기고한, 친일성이 농후한 산문이 2007년 10월 발견되는 등 그의 친일논란이 있습니다.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낀 시인의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대목입니다.

 

   청마와 정향의 안타까운 사랑은 20여년이나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어떤 이는 그래봐야 불륜이 아니냐고 다그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나 그런 사랑을 한 번 해보고 싶고, 그런 사랑을 한 번 받고 싶은 것도 사실입니다. 청마는 정말 행복했을 것입니다. 때로는 안타깝고 때론 힘들었겠지만 사랑을 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을 것입니다.

 

 

  유치환 생가

출처 : 思惟-문득 생각하기
글쓴이 : 좋은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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