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박가네)

세상을 후회없이 살다 간 성실했던 한 인간으로, 사는데 있어서는 냉정했었지만 그래도 정을 알고 나눴던 한 인간이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고 남고 싶습니다. 늘 사랑입니다.

* 정지용시인의 향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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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사랑

2020. 10. 3.

추석에 귀향을 못하는 이들에게 / 유자효(시인)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이 시는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 정지용 시인이 모교인 휘문고보의 교비생으로 일본 교토 동지사대에

유학하기 두 달 전인 1923년 3월, 고향 충북 옥천에 대한 그리움을 쓴 것입니다.

스물두 살 때의 작품입니다. 그후 27년 정지용의 생애는 모국의 수난사 그대로였습니다.

마침내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1988년 3월 31일, 한국 문학의 큰 숙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가려온 이름, 시인 정지용이 해금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개인의 이름으로 하는 단체 ‘지용회’(초대회장 방용구)는

5월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제1회 지용제를 열었습니다.

참석자들의 눈물 속에 열린 지용제 역시 개인의 이름으로 하는 첫 축제였습니다.

그러나 40년 가까운 세월은 길었습니다. 잊혀진 이름 정지용을 어떻게 대중에게 알리느냐가 임무로 대두되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노래로 불려지는 것이라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정지용의 시는 일제강점기 때 독일 유학을 한 작곡가 채동선에 의해 여덟 편이 작곡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고향’이 널리 불렸으나 지용이 사라지면서 그 곡에 다른 가사가 붙여져 불리고 있었습니다.

외교관 출신의 변 훈 작곡가가 ‘향수’에 곡을 붙였으나 클래식풍으로, 대중화되기에는 어렵다는 평이었습니다.

이때 나선 분이 KBS 음악 PD 신광철과 가수 이동원입니다.

이 씨는 해금 이후 『지용시집』(깊은샘 간)을 읽으며 노래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고 합니다.

두 분이 주목한 시는 ‘향수’였습니다. 그래서 인기 작곡가 김희갑 선생을 찾아가 작곡을 부탁했습니다.

김 선생은 시가 길어 듀엣으로 부르는 게 좋겠다는 구상을 했습니다. 그때 떠올린 성악가가 박인수 테너였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귀국한 박인수 서울대 교수와 이동원 씨가 절정의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씨로부터 시를 받은 박 교수는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가수까지 정해졌는데 문제는 작곡이었습니다.

시의 한 글자도 고치면 안된다는 지용회의 까다로운 요청에 곡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고심을 거듭하던 작곡가에게 신광철 PD가 조언합니다.

1981년에 발표돼 당시 한국에서도 히트한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 덴버의 클래식과 팝 크로스오버인

‘Perhaps Love’처럼 만들어 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영감의 불이 켜졌고, 김희갑 선생은 박인수 테너와 이동원 가수에 어울리는 곡을 만들었습니다.

작곡 의뢰 10개월 만이었습니다.

‘Perhaps Love’는 세계 최초의 탈 장르 곡이며, ‘향수’는 한국 최초의 탈 장르 곡이 됩니다.

그리고 ‘향수’는 세 개의 곡을 가진 시가 되었습니다.

1989년 10월,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정지용 흉상 건립을 위한 박인수·이동원 조인트 콘서트에서 이 곡이 초연되었습니다.

이어 음반으로 제작되고 KBS 열린음악회에서 박 교수와 이 씨가 함께 노래하자 클래식계에서 야단이 났습니다.

‘서울대학 교수가 통기타 가수와 함께 노래한다’는 비난이었다고 합니다.

국립 오페라단에서는 차기 단장으로 내정돼 있던 박 교수를 제명하기에 이릅니다.

박 교수는 이때 받은 충격의 여파로 지병을 얻게 됩니다.

박인수와 이동원이 함께 부른 ‘향수’가 우리 음악계에 미친 영향은 실로 큽니다.

‘향수’는 국민 가곡이 되었으며, 이후 클래식과 대중음악이 협연 되기 시작했습니다.

정지용의 ‘향수’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우리 음악계의 변화도 이끈 명시(名詩)인 것입니다.

1990년 5월 13일, 제3회 지용제에서 옥천에 정지용 흉상(박병욱 조각)이 제막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시인의 흉상이 세워지기도 처음이었습니다. 지용제의 얼굴은 정지용문학상입니다.

제2회 지용제에서 지용이 ‘문장’에 추천한 박두진 시인이 ‘서한체’란 시로 스승의 이름으로 된 상의

최초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해마다 5월 옥천에서 성대하게 베풀어지던 지용제는 올해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10월로 연기돼 조촐하게 열립니다.

올해로 32회가 되는 정지용 문학상의 수상 작품은 장석남 시인의 ‘목도장’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정지용 시인에게 금관 문화훈장을 추서했습니다.

파란 많은 대시인을 모국이 품에 안아 칭찬한 것입니다.

한국인의 귀소 본능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지만, 올 추석은 사상 최저의 귀향률을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팬데믹은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사연 많은 노래 ‘향수’를 듣고 불러보며 마음을 달래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