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박가네)

세상을 후회없이 살다 간 성실했던 한 인간으로, 사는데 있어서는 냉정했었지만 그래도 정을 알고 나눴던 한 인간이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고 남고 싶습니다. 늘 사랑입니다.

* 명사들의 애송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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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사랑

2020. 10. 5.

명사들의 애송시

 

나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서울대 문리대 분수 가에서 오수를 즐기며, 공자님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깨웠다. 대학 2년 선배인 장기홍 형이다.

 

동생! 이 시를 읽어 보게나!

 

내가 가장 감명을 받는 시는, 형의 장인인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 가졌는가?

 

함석헌 선생의 시 /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리 길 나서서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나를 세상이 다 버려도

마음이 외로울 때면

‘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주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가라앉을 때

구명대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귀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세상의 빛을 위해

저 사람만은 살려두소, 라고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머리 흔들 그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당일 측근들과의 모임에서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를 읊었다.

 

노태우는 이육사의 ‘청포도’와 홍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애송했다.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하늘을 꿈꾸며 알알이 들어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오면서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듬뿍 적셔도 좋으련만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김영삼은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노무현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대학 2학년 때였다. 서울대 동기동창 김지하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서울대학 본부 옆 느티나무에 시에 그림을 곁들여 시화전을 열었다.

 

고관대작에게는 삽살개가 서민에게는 맹견이더라!

 

김지하는 학림다방에서 오적 담시를 자주 암송했다. 담시(譚詩)란? 자유로운 형식의 짧은 서사시다.

 

박근혜을 비롯해 상당수 정치인들은 윤동주의 ‘서시’

 

서청원과 정몽준도 서시를 애송했다고 한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백기완은 어릴 때 고향 구월산 밑 과수원집의 머슴할멈이 자주 읊조리던 작자미상의 시 ‘왱왱 찌꿍’

 

문재인 대통령은 사고로 숨진 여성운동가이자 시인인 고정희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를 자주 읊었다고 한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디든 못 가랴

/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

/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늘

 

허주의 아침산책